사진가/카메라와 렌즈와 기타 장비

GEAR시나리오/03 진지한 입문자에게 첫 카메라 추천

나그네_즈브즈 2020. 12. 25. 22:05

사진 배우고 싶은데 첫 카메라와 렌즈 추천해 주세요 - GEAR시나리오 시리즈는 사진 촬영의 상황과 용도를 제 맘대로 상상하고 가정해서, 그에 어울릴 것 같은 카메라와 렌즈를 이리저리 골라보는 연재입니다. 저는 이 연재에 등장하는 제품들의 제조사와 아무런 관련도 없고 편향도 없으며, 이 추천은 그야말로 '시나리오'에 불과한 개인적 의견임을 미리 밝힙니다. 

 

카메라를 추천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첫 카메라는 더 그렇다. 괜히 이 취미에 대한 첫인상이, 어떤 브랜드에 대해 갖게 될 느낌이, 내 의견에 따라 결정될까봐서다. 내 경험이 얕은 탓도 있다. 추천은 추천대로 하고, 차라리 내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첫 카메라를 사겠다는 그가 진지하다면 더 겁부터 난다. 그렇지만 시리즈 포스팅은 이어져야 하기에, 오늘도 별볼일 없는 글을 써본다. 우선, 항상 그랬듯, 총알은 넉넉지 않다는 걸 가정하자. 본인이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도 가정한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진보다는 월등히 좋아야 그가 이 취미를 유지하리라 믿겠다. 크롭센서 이상. '한 방'을 위한 단렌즈 하나에, 화각 익히기를 위한 줌렌즈도 하나 추가해보려고 한다. 

 

1. 후지필름 X-T20 (중35만) / 후지 XF 16-80mm F4 (중70만) / 7artisans 35mm f1.2 (중10만)

 

 

크롭 미러리스 조합 : X-T20 + 16-80mm F4 + 50mm F1.2(7artisans)

 

 

APS-C센서 미러리스다. 후지는 풀프레임 카메라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이쪽을 선택하면 풀프레임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비용과 고민이 사라진다. 

 

후지필름 제품을 사용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X-T20의 스펙과 가격을 보는 순간 매료됐다. 다소 어폐를 각오하면, 후지의 렌즈교환형 미러리스는 보급기 X-A 라인과 중급기 X-pro 라인, 그리고 플래그십의 X-T 라인으로 갈린다. T라인의 경우 1, 2, 3, 4로 갈수록 최신 기종이지만, 뒤에 0을 붙인 하위 모델들이 존재한다. 그러니 X-T20은 X-T의 두 번째인 X-T2의 보급형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하지만 1/8000초 셔터속도 지원, 하이브리드 AF, 4K영상 30프레임, 틸트형 터치스크린을 지원하고 로우패스필터가 제거된 센서가 탑재된 스펙으로 '역시 플래그십'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든다. 타사 풀프레임 센서에 이 스펙들을 넣으면 가뿐히 300만 원에 도달할 수 있다.

 

후지는 렌즈가 고급지고 비싸다. 후지의 자사 줌렌즈 값에 영혼을 갈아넣고, 저렴하지만 배경흐림이 미친 수동 표준단렌즈를 조합해 넣었다. 16-80mm이면 풀프레임으로 환산했을 때 24-120mm가 된다. 다양한 화각을 경험해보려면 이만한 게 없다고 판단했다. 배경이 몽글몽글 흐려진 아웃포커싱 스냅을 찍고 싶을 땐 단렌즈를 달아주자. 수동조작 전용이지만 미러리스니까 포커스 피킹(초점 맞은 부분의 경계를 표시해주는 기능)을 활용하면 괜찮다. 최대 개방이 F1.2라서 "크롭 센서는 아웃포커싱이 나빠요" 이런 소리 못하게 돼 있다.

 

게다가 이 조합, 바디도 렌즈도 모두 예쁘다.

 

 

2. 니콘 D750 (중65만) / 니코르 AF-S 24-120mm F4 (중40만) / 니코르 AF-S 50mm F1.8G (중13만)

 

 

풀프레임 DSLR 조합 : D750 + 24-120mm F4 + 50mm F1.8G

 

 

풀프레임 센서다. 이 조합의 강점 역시 '풀프레임으로 넘거갈 고민'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니콘은 센서 퀄리티로 우직하게 승부하는, DSLR의 전통적인 강자이다. 특히 D750은 지금도 사랑받는 불세출의 명기로 정평이 나 있다.

 

D750은 자잘한 잡기능보다 묵직한 핵심기능으로만 무장하고 있다. 현재에도 순위권에 드는 DR 넓은 센서도 그렇고, 니콘 특유의 그립감, 견고한 바디의 안정성, 풀프레임의 특권인 많은 다이얼과 버튼. 이런 건 숫자나 스펙으로 담아낼 수 없는 필살기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기본에 가장 충실한 바디라고 생각한다.

 

역시 풀프레임이라 이 조합에서는 바디가 제일 비싸다. 하지만 예전 DSLR의 렌즈들은 화질이 탁월하면서도 지금은 가격이 엄청나게 내려가 있어서, 괜찮은 조합이 가능하다. 제조사를 불문하고 보통 풀프레임 환산화각에서 고급 표준 줌렌즈를 논하게 되면 24-70mm F2.8, 24-105mm F4의 두 갈래로 나뉜다. 니콘의 24-120mm는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았던 줌렌즈 중 하나였다. 역시 뭘 찍어야 할지 모르겠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입문자로서는 다양한 초점거리를 경험해보는 데에 '좀 더 밝은 조리개'보다 '좀 더 다양한 화각'이 필요할 것 같았다.

 

대신 10만 원보다 조금 더한 가격에 조리개 밝은 표준단렌즈를 끼워넣으면 심도 표현에서의 부족함을 말끔히 메울 수 있다. 50mm 표준화각 대의 F1.8 단렌즈는, 역시 제조사를 불문하고 가장 저렴한 렌즈다. 그러나 이 레벨의 단렌즈는 모든 제조사에서 무조건 내놓기 때문에 화질에서도 티나게 밀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만드는 렌즈이기도 하다.

 

 

3. 캐논 EOS 800D (중45만) / 토키나 16-50mm F2.8 (중35만) / 시그마A 30mm F1.4 (중32만)

 

 

하이브리드(DSLR+미러리스) 조합 : 캐논 800D + 16-50mm F2.8(토키나) + A 30mm F1.4(시그마)

 

 

잘못하면 이 조합은 좀 애매할 수 있다. 센서는 니콘에 밀리고, 캐논 특유의 편의기능과 색감은 후지 미러리스에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미러리스와 DSLR의 장점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디카의 모습을 조금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조합의 비밀병기는 바디가 아니라 렌즈다.

 

캐논 DSLR은 풀프레임 바디인 5D 시리즈가 다 먹여 살렸지만, 등잔 밑 그늘에 가려진 800D는 실속있는 스펙으로 꽤 사랑을 받았다. 라이브뷰 모드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초점을 잡아내는 캐논만의 듀얼픽셀 AF 기술이 적용된 덕분에, 미러리스로 무게중심이 넘어가고 있는 2010년대 중후반의 과도기를 잘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DSLR의 최고 무기랄 수 있는 뷰파인더 초점포인트도 45개나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90D에서 정점에 다다른 하이브리드 디카(DSLR과 미러리스의 장점을 모아놓은 카메라)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캐논의 모델명을 읽을 땐 첫 자리의 숫자가 클수록 신세대 바디이고, 자릿수가 줄어들 수록 고스펙의 바디라고 알면 편하다. 800D는 80D(DIGIC6)보다 아래지만 출시 시기가 늦어 비교적 진보한 이미지 프로세서 DIGIC7을 탑재했고, 70D보다는 신세대라 그런지 뷰파인더 AF포인트 개수(19개 vs. 45개)가 월등히 많다는 게 강점이다.

 

토키나 렌즈는 잘 모르지만 16-80mm는 환산하면 25-80mm에 해당하고 특히 최대개방 조리개가 F2.8 고정이라는 게 큰 장점이다. 그보단 시그마의 아트 라인업 단렌즈를 맛볼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스크롤을 올려 비교해 봐라. 단렌즈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한 조합이다. 아트삼식이(A, 30, SIGma)라는 애칭의 이 렌즈는, 레전설이다. 시그마 아트라인업의 다른 렌즈들은 보통 지나치게 거대하고 무거워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아트삼식이는 휴대성과 화질을 모두 잡았다. 끝내준다.

 

 

오늘 포스팅은 유달리 좀 조심스러웠는데, 심혈을 기울이다보니 세 조합 모두 가격대가 비슷하게 형성된 것 같다. 특별히 모나지도, 그렇다고 어딘가 빠지지도 않게 화각도 채우고... 장점도 분산해서 조합이 잘 된 것 같다. 자신감이 생긴다!! (오 신이시여, 이 꿀추천 글을 진정 제가 썼단 말입니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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