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진가/작업노트 4

a7R3와 포크트랜더 녹턴 50mm F1.2로 담은 4월

오랜만에 사진으로 포스팅을 올린다. 봄이 왔고, 나는 드디어 포크트랜더 녹턴 50mm F1.2 E마운트 렌즈를 샀고, 다이얼을 돌려서 셔터 누르는 게 재미있고. 그게 전부다. 주말에 아내를 따라 대구에 다녀온 김에 벚꽃도 찍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에도 사진 동호회 사람들과 벚꽃을 찍었다. 남들 다 찍는 사진이라도, 새삼 좋았다. 사진기를 처음 샀을 때의 설렘이었다. 돌이켜 보면, 사진기를 처음 샀을 때 우리 동네 골목길을 찍으러 다녔다. 뭘 찍을지 몰라서였다. 이번에 다시 동네를 걸어봤다. 공기만큼이나 익숙한 이 모습들을 마주할 날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느낌이 달랐다. 사진은 똑같지만. 4월의 초록빛을 좋아하게 됐다. 연둣빛보다 그윽하지만 초록보다는 상처받기 쉬운, 그런 기분 좋은 ..

[주제작업] 사진적 소재 후보 1 : 저녁밥상

사진은 이미지로 된 언어다. 시각을 통해 뜻이 전달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차라리 보여주는 편이 효과적인 것들일수록 사진적 소재이기 쉽다. 주홍빛 보랏빛으로 노을진 저녁하늘이나 가슴 먹먹해지는 은하수, 고혹적인 모델의 아름다움! 이런 것들은 제아무리 그럴듯하게 설명하더라도 차라리 보여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고 확실한 표현의 대상이다. 기왕이면 누가 보더라도 주목할 만한 소재이면 좋다. 그러나 반드시 반드시! 거기에 가장 먼저 끌린 사람은 나여야 한다. 그래서 호미곶의 일출, 황령산의 은하수, 경주나 진해의 벚꽃은 모두 탈락이다. 그 소재에서 내가 먼저 시각적 매력을 발견하고, 나만의 감정과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사진으로 표현된 언어를 읽고 사람들이 '정말 그렇구나!'하며 함께 주목하고 매력을 느끼는..

셀프주의 / 연말 사진 시상식 / 내가 뽑은 2020년 최고의 순간들 AWARDS

2020년이 만 하루 남았습니다. 평년처럼 다사다난했지만 유난히도 올해는 아마 '코로나19의 해'로 선명하게 기억될 것만 같습니다. 건강과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로서는 감사하게도, 이 보잘 것없는 사진 글방을 시작하게 된 한해였기도 합니다. 혼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꿈만 같기도 합니다. 연말이면 텔리비전에는 각종 시상식이 가득합니다. 보는 사람은 재미없어도 만드는 사람은 땔감으로 더없이 훌륭한 콘텐츠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많이 남긴 것은 없지만, 저도 그래서 올해 찍은 사진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다름 아니라 제가 속해 있는 사진 동호회에서 '2020년 최고의 순간'이라는 주제로 역시 시상식 이벤트를 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출품은 하나만..

비둘기 20201129

일요일 오후 사무실에서 잔업을 마친 뒤 집에 가는 길이었다. 절집처럼 조용한 주말 오후 거리의 낮잠을 누군가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회사 근처 공원이 소란스러웠다. 열 살을 갓 넘겼을까 싶은 여자아이 둘의 목소리였다. 학원가방을 메고, 과자 봉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푸드덕거리는 한 떼의 비둘기 속에서였다. 비둘기는 내게 있어선 중요한 소재다. 내가 인간에 대해 가지는 혐오가 그들에게서 어렴풋이 보인다. 게다가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평화의 새라서 그럼지 경계심이 적어, 대단한 망원렌즈가 아니고서도 찍을 수 있다. 다행히 내 어깨에는 카메라가 걸려있었다. 체면차리듯 눈치를 보는 표독스러운 눈, 반질반질한 대가리, 털이 돋아 닭발보다 300배 징그러운 발, 좀처럼 쓸 일 없어 보이는 날개. 영릭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