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카메라와 렌즈와 기타 장비

첫 카메라/렌즈 구입할 때 조심할 것들, 중고거래 팁

나그네_즈브즈 2020. 12. 6. 19:30

1. 조심해야 하는 점은 세 가지입니다. 

 

시간에 쫓기며 사지 않기. 사진 동아리/동호회 들어가실 거죠? 사진기 없다고 인연을 자르는 곳이면 들어가지 않으시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문센이나 평생교육원에서 사진 강의 들으시죠? 수업 듣는 데에 카메라는 필요 없습니다. 원리만 잘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실습해보라고 숙제 내주겠죠? 숙제 잘 적어놨다가 나중에 해봐도 됩니다. 수료 안시켜준다 그러면 배째세요. 두 번 들으면 이해 더 잘되고, 그거 수료한다고 하버드대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연설 하는 거 아니니까요.

 

대개는 이렇게 절대적인 위치의 선생의 영향 속에서 카메라를 사는 건 비추입니다. 그 선생님에게 브랜드 취향이란 게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결국 그가 최신 카메라의 설정법이나 자세한 메뉴와 기능에 대해 알려줄 수 있고 렌즈 마다의 장단점을 소상하고도 객관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제조사는 많아봐야 한 두 브랜드에 불과합니다. 그의 취향과 경험이, 내가 잘 찍고 싶은 사진의 그것과 언제나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다양한 취향과 의견과 경험을 가진 조언들 속에서 절대자로 군림했던 첫 스승의 영향력이 희석되고 나면, 여러 선택지들을 비교적 치우침 없이 판단할 수 있으실 거예요. 이건 인터넷 공간에서 찾아보시게 될 리뷰와 후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꺼번에 떠맡듯이 사지 않기. '○○카메라' 같은 중고카메라 사이트에서는 이런 일이 많습니다. 홈페이지에 저렴한 가격으로 매물을 올려서 클릭을 일단 유도한 다음엔 필요하지도 않고 품질도 나쁜 삼각대, 카메라가방, 청소용품, 렌즈필터, 추가배터리, SD카드와 리더기 등등을 마치 사은품처럼 소개하며 엄청난 추가금을 챙깁니다. 제가 이런 극단적인 표현은 가급적 피하려고 애쓰는데요, 이런 케이스는 무조건 뒤로가기를 누르셔야 합니다. 필요한 것만 사도 드는 돈이 적지 않기에, 최대한 효율적인 선택만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런 곳에서 DSLR도 사고, 렌즈도 두어 개 샀습니다. 그 때 받은 청소용품은 아직 뜯지도 않은 채로 잠자고 있습니다. 그 갸냘프고 빈약한 삼각대를 세웠을 때 받은 충격은 여전히 트라우마처럼 생생합니다.

 

가방, 추천하지 않습니다. 카메라 한 대 렌즈 하나 구입하는 거라면, 그대로 메고 다니는 게 훨씬 편리하고 순간 대응도 빠릅니다. 삼각대는요, 고민 잘 하셔야 합니다. 이건 가성비가 없그든요. 적당히 타협하는 순간 노빠꾸입니다. 좋은 걸로 한 방에 가야 하니 좀 더 고민합시다. 렌즈필터는 보호용이지만, 화질에서 불리해져 저는 누가 정말 공짜로 주지 않는 이상 잘 안씁니다. SD카드도 제조사와 모델에 따라 미묘하게 성능이 다르기 때문에, 기왕이면 스스로 찾아보고 가성비를 잘 따져서 선택하시길 추천해드립니다. (제가 적어 본 포스팅이 있는데, 이 카드를 무조건 추천하는 게 아니라, 어떤 마인드와 방식으로 결정하는지 그 과정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SD카드 구매 이야기 ▼

https://atticus262.tistory.com/58

 

야금야금 등급 올리지 않기. 카메라 고르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자동차 사는 거랑 똑같습니다. 처음에는 '훌륭한' 똑딱이로 연습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데 좋은 똑딱이는 충분히 저렴하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 돈이면, 조금만 더 보태면, 렌즈교환형 크롭바디에 단렌즈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죠. 줌 렌즈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예산만 더 확보되면 단렌즈 두 개도 좋은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 금액이면, 중고 풀프레임도 넘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색해보고 기다려봐도 꼭 이럴 땐 매물이 안나옵니다. 차라리 새 제품을 지를까요? 새 제품 살 돈이면 고화소 바디도 중고로는 살 수 있을 텐데요. 정신 차립시다. 이러다보면 페라리도 사고 람보르기니도 사는 겁니다. 

 

용도와 예산을 확실히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카메라와 렌즈는 쓸 수 있는 예산의 70%만 활용해 구매합니다. 남은 돈으로는 필요한 액세서리도 사야하고, 여행 경비라든가 모델섭외라든가 사진을 찍는 과정에 지출합니다. 카메라 자체는 새 제품을 사시면 렌즈에 비해서는 감가가 심한 편입니다. 되파실 때 속 좀 쓰릴 거예요. 줌렌즈가 있어도 선호하는 초점거리 한 두개만 쓰게 되고, 단렌즈가 서너 개 있어도 90%는 하나로 찍습니다. 똑딱이도 단점이 있고, 풀프레임 고화소 카메라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뭘 골라도 휴대폰보다는 낫지요. 선택한 걸 잘 활용하고 즐기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게 좋습니다. 

 

2. 중고거래 팁도 별 거 없어요. 두 가지로 정리할게요.

 

인내심을 가져라 입니다. 사실은 저도 잘 못하는 거예요. 석 달동안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중고나라, 번개장터, 당근마켓 다 설치하고 키워드 알람 넣고, SLR클럽와 해당 브랜드 동호인들의 카페 게시판도 하루에 열 번씩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안 구해질 때는 정말 힘듭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죠? 네, 시간에 쫓겨 구매하시는 건 그래도 안됩니다. 

 

이 바닥에는 장터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꼭 내가 사려고 할 때는 매물이 없습니다. 팔려고 내놓으면 경쟁 매물은 엄청납니다. 두 경우 모두,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조바심이 나도, 알아본 시장 형성 가격과 계획했던 지출에 크게 어긋나면 "즐"하고 보냅니다. 원래 장사는 심리전이잖아요(저는 장알못임). 느긋하게 배째는 쪽이 한 푼이라도 먹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나마 SLR클럽의 중고장터가 동업자 의식이 있어서 그런지 저렴한 편입니다. 단순 게시판 형태라 UI가 조금 불편하긴 합니다.

 

사기는 예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방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가능하다면 직거래가 가장 좋기는 합니다(경북 포항에서 경기도 성남을 왕복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지방러는 어쩔 수 없이 택배거래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사기의 위험과 매순간 맞닥뜨려야 하지요.

 

저는 상대방 휴대전화 연락처를 확보하면, 일단 [더치트]라는 앱에서 최근 6개월 사이의 사기피해사례를 조회합니다. 내 주소록에 'ㄱㄱㄱa7r3 190만' 이런 식으로 연락처를 저장하고, 카카오톡 친구로 추가합니다. ㄱ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친구목록에서도 상단에 잘 보이고, 여러 판매자를 동시에 상대하게 되는 경우 조건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카카오톡으로 채팅을 하면서, 프로필 사진을 봅니다. 본인 얼굴이 나와 있거나,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드러난다거나, 가족들 사진 또는 아이 사진이 있으면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됩니다. 이게 없으면 저는, 주민번호 뒷자리를 가린 신분증 사진을 요구해서 받아둡니다. 이건 실례되는 투머치 요구가 아니거든요. 

 

또, 판매 게시글을 발견한 그 플랫폼에서의 거래이력도 확인합니다. 이때 단순히 판매완료가 많은 것은 위장일 수도 있습니다. 기왕이면 '****님께 판매완료' 하는 식으로 댓글이 달려있는 사람에게 믿음이 생깁니다. 서울 강변역이나 남대문 쪽에서 직거래 한다는 분은 업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사기꾼일리는 없지만, 저렴하게 내놓았을리도 없겠지요. 마지막 순간에 계좌번호를 받았을 때에도 [더치트] 앱으로 확인을 한번 더 해줍니다. 카카오뱅크 같은 계좌는 가급적 피합니다.

 

*   *   *

 

사진 동호회의 1년을 보면, 그 흐름이 계절을 탑니다. 이제 곧 겨울입니다. 날씨도 춥고, 나뭇가지도 앙상하고, 화이트밸런스도 괜히 차갑고, 왠만한 열정이 아니면 사진을 잘 안찍게 됩니다. 스쿠터도 겨울엔 판매가 많고 봄 되면 구매가 많다지요. 카메라와 렌즈의 중고거래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겨울에 뭘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ㅎㅎ). 이번 주말도 안전한 이불 속에서 아내 얼굴만 찍었는데, 아마 겨울 내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대단한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방구석 사진쟁이에 불과하기에, ㅎㅎㅎ, 이런 팁 따위 안써도 그만이지만 써도 그만인 것이 좋습니다.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놀러오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