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카메라와 렌즈와 기타 장비

GEAR시나리오/01 여자친구 인생샷 찍어줄 카메라/렌즈 추천

나그네_즈브즈 2020. 12. 11. 15:44

여자친구 찍어줄 건데 카메라하고 렌즈 뭐 사야할까요? - GEAR시나리오 시리즈는 사진 촬영의 상황과 용도를 제 맘대로 상상하고 가정해서, 그에 어울릴 것 같은 카메라와 렌즈를 이리저리 골라보는 연재입니다. 저는 이 연재에 등장하는 제품들의 제조사와 아무런 관련도 없고 편향도 없으며, 이 추천은 그야말로 '시나리오'에 불과한 개인적 의견임을 미리 밝힙니다. 

 

글쎄. 대답하기 전에 내가 되물어야 할 질문이 훨씬 많은데 말이지. 여윳돈이 얼마나 되는지, 야외에서 찍을 건지 실내에서 찍을 건지, 여자친구 얼굴이 갸름한지 넙대대한지, 셀카도 찍는지 아닌지, 여자친구를 찍어줄 때 말고 카메라의 주인이 누군지, 사진에 취미가 있는 김에 여자친구도 찍는 건지 찍사 노릇에 취미 없지만 사랑으로 찍어주는 건지 등등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그렇지만 저렇게 무턱대고 물어보는 사람은 많은 질문 받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내 맘대로 여러 버전을 추천할란다. 공통적으로 적용한 콘셉트가 있기는 하다. 가격은 최대한 저렴하면서, 눈AF 기능이 있어야 하고, 표준 화각이면서, 배경이 부드럽게 뭉개지는 게 가능한 옵션으로 가보려고 한다. 인물 촬영에서 가장 대중적인 85mm 언저리의 초점거리로 가지 않는 이유는 뒤에서도 설명하지만 두 가지다. 85mm를 사두면 인물사진 말고는 달리 찍을 게 별로 없고, 애매하게 멀리서 찍으면 얼굴이 빵떡같이 찍힐 위험이 있다.

 

새제품은 포털 최저가 기준이다. 적당한 SD카드와 리더기, 추가배터리 가격을 포함해서 계산했다. 순서는 가격 오름차순.

 

 

RX100 m4

 

1. 소니 RX100 m4 (중고 약 50만 원,  새제품 약 70만 원 예상)

영화로 치면 터미네이터 2, 다이하드 4를 카메라에서는 터미네이터 마크2나 다이하드 마크4, 줄여서 터미네이터 m2 혹은 다이하드 m4라고도 쓴다. 그러니까 이 모델은 RX100시리즈의 4탄인 셈이다. 실제 사례로는, 친한 누나에게 추천해준 적이 있다. 아이들과 제주도 여행간다고 해서 골라줬다. 완벽한 성능을 포기하는 대신 휴대성을 고려하는 선택이 되겠다.

 

부피와 무게에서 압승이다. 특히, 작다는 게 추천 포인트. 아마추어 모델들은 사진에 찍히고 있다는 걸로 주변의 이목을 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성은 덤이다. 손목에 달랑달랑 걸고 다녀도 된다. 심지어 전원을 끄면 렌즈가 쏙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담배갑보다 약간 큰 정도가 된다. 카메라를 여친에게 눈뜨고 뺏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밖에는 저렴하고[?] 줌렌즈의 여러 초점거리를 활용할 수 있으며 셀카 액정이 되는 게 장점이다. 동영상 촬영도 4K에서 30분이나 된다. 데이트 브이로그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걸 추천받은 누나는 요즘 유튜빙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아웃포커스에서는 조금 밀리는 선택이다. 센서규격도 1인치로 작고, 최대개방조리개도 초점거리에 따라 조여지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이 크기에 큰 센서를 우겨넣을 수는 없다. 밝은 고정조리개도 마찬가지다. 불가능한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런 설계를 본 적이 없다. 카메라만 중고로 구입하면 40만원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a6000 + SEL35F18

 

2. 소니 a6000 + 소니 E 35mm f1.8 OSS (중고 약 30만+30만 원, 새제품 약 45만+38만 원 예상)

가격을 약간만 포기하면 성능은 훨씬 좋아질 수 있다. a6000은 눈인식 AF가 가능한 미러리스 중에서 가장 저렴하지만 셔터스피드 1/4000초, 최대연사 초당 11장, 하이브리드 AF를 갖춰 기본은 하는 녀석이다. 바디만 놓고 보면 RX100 m4보다도 저렴하면서 센서는 훨씬 크기 때문에, 배경흐림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게다가 소니의 크롭용 35mm f1.8 렌즈에는 손떨림방지 유닛까지 들어있다. 풀프레임 환산으로 52mm 정도의 화각을 갖게 되는 셈이다. 여친 화각으로 불리는 85mm 근처로 갈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85mm 화각의 범용성이 너무 떨어지고, 애매하게 먼 거리에서 인물을 잘못 찍으면 얼굴이 넙적하게 나올 수 있어서다. 차라리 50~60mm 렌즈로 가까이서 찍어서 얼굴형이 보다 갸름하게 나오게 하거나, 멀찌감치 물러서서 망원의 느낌이 약간 있는 '풍경 속 조그만 인물'을 찍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 범위의 초점거리는 적응하기도 쉽고 실내, 음식, 스냅을 찍어도 훌륭하다.

 

이 조합의 단점을 굳이 꼽자면, 화각을 바꿀 수 없는 단렌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a6000은 소니 크롭미러리스 초기모델이라 배터리 효율이 좋지 않으니 여유 배터리를 반드시 마련하는 게 좋다. 

 

 

 

 

캐논 EOS M50

 

 

 

시그마 C 30mm f1.4 DC DN

 

 

3. 캐논 EOS M50 + 시그마C 30mm f1.4 (중고 약 55만+30만 원, 새제품 약 60만+39만 원 예상)

캐논 M50도 훌륭한 카메라다. 정확한 통계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때 유튜버용 판매 1위를 유지하고 있었기도 하다. 역시 눈인식 AF가 빠르고 정확하며, 역시 갖출 건 다 갖췄다. 이 선택지의 최대 장점은 인물의 피부톤을 투명하게 잡아주는 캐논 특유의 색감과 셀카 찍을 때 구도를 확인할 수 있는 스위블 액정이다. APS-C 센서가 보여주는 화질도 물론 훌륭하다. 최근에 M50 m2가 출시됐기 때문에 중고가격이 더 내려갈 가능성이 높은 것도 장점이다.

 

시그마 contemporary 라인업의 30mm f1.4 렌즈도 더할 나위없다. 역시 풀프레임 환산 48mm로, 다양한 활용도와 상반신 촬영에서 얼굴을 갸름하게 덜 넓적하게 표현해주는 점에서 85mm 종류의 인물렌즈를 앞선다고 생각한다. 최대개방이 1.4라서 더 부드러운 아웃포커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 정도 조합만 돼도 가격은 상당히 비싸다. 그래도 여자친구를 사랑한다면야. 얼레리꼴레리. 여전히 배터리 용량이 충분치 않고, 단렌즈가 주는 고정된 화각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는 남는다. 사진 촬영에 서툴 때, 너무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줌렌즈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이 조합에는 손떨림방지가 없다. 참고만 하자. 

 

 

 

 

요즘 글감이 넉넉지 않아 고민 중이었는데, 그동안 망설였던 연재를 이렇게 불쑥 시작해버렸다. 얼마나 잘될지, 그보다 얼마나 꾸준히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재미로 하는 거니까. 사진장비 추천은 1. 하지 않는다, 2. 가급적 하지 않는다, 3. 함부로 하지 않는다 가 내 모토이지만. 어차피 포스팅 땔감으로 쓸 거면 차라리 아무도 내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가 부담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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