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촬영과 보정 연구

표현이 뭐길래 3/4 - 조리개와 아웃포커싱

나그네_즈브즈 2020. 9. 17. 15:21

노출, 즉 사진의 밝기를 결정하는 세 요소는 제각각 부수적인 효과를 동반한다. 이 효과를 이용해 촬영자는 자신만의 의도를 촬영된 결과물에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예술가는 아닐지라도, 취미 사진가에게도 충분한 재미거리를 안겨주는 요소이기도 하니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다.

<복습>
조리개는 렌즈의 가장자리를 가린다. 22, 16, 11, 8, 5.6, 4, 2.8, 2, … 숫자가 작을수록 빛을 덜 가려서 사진은 밝게 찍힌다.

<효과>

조리개가 밝아지면, 원경-중경-근경의 초점 맞는 깊이가 얕아지고, 아웃포커싱 되기가 쉽다. 조리개가 닫힐수록, 빛이 갈라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조리개를 끝까지 조이거나 열면 선예도가 떨어진다. 최고 화질은 5.6~8에서 얻어진다.

 

서진기를 들고 자동이든 수동이든 피사체에 초점을 맞출 때, 촬상면(카메라 내부에거 상이 맺히는 필름이나 센서)에서 초점을 맞춘 지점까지의 거리가 a라고 치자. 거리 a만큼 떨어진 가상의 구면 위에 있는 모든 지점은 다 초점이 선명하게 맞을 텐데, 사실은 이보다 약간 가깝거나 먼 공간의 피사체들도 초점이 잘 맞은 상을 맺게 된다. 공간 상의 그 깊이가, 조리개에 따라 변한다.

 

 

검은 색 점선에다가 초점을 맞췄다. 점선 앞뒤의 영역에서도 초점은 맞는다. 

 

조리개 값이 작아지면(열리면) 초점이 맞는 범위가 빨간색 괄호처럼 좁아진다. 초점을 맞춰둔 모델의 근처는 선명하게 찍히지만 그 영역의 깊이보다 가깝거나 멀리 있는 피사체는 초점이 맞지 않아서 뿌옇게 흐려진다(Out of Focus). 반대로 조리개 값이 커지면(렌즈를 많이 가리면) 파란색 괄호처럼 초점을 겨냥한 거리보다 꽤 가깝거나 멀리 있는 피사체도 초점이 맞은 선명한 상을 맺는다(Pan Focus).

조리개는 렌즈 안에 있다. 하나의 렌즈에서도 조리개를 조이거나 열 수 있다. 이 범위는 렌즈마다 다른데, 보통은 가장 많이 열었을 때의 조리개값을 '최대 개방 조리개'라는 스펙으로 표기한다. 어떤 렌즈는 3.5가 최대개방인데, 다른 건 1.4까지 열리기도 한다.

 

 

밝고 배경흐림이 잘된 사진. 많은 일반인들이 '예쁘다'고 말하는 사진의 속성이다. ISO나 셔터속도는 노출이 확보되면 노이즈가 끼거나 흔들리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지만 조리개는 반대다. 사진 경험이 많지 않은 동안에는, 초점이 뿌옇게 날라간 사진만을 맹목적으로 좋아한다. 조리개를 끝까지 열어버리면 화질이 구려지지만, 이런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그 시류[?]에 맞추어 최대 개방 조리개가 밝은 렌즈일수록 선호도가 높고, 당연히 비싸다 ㅋㅋ

 

흐리고 뿌연 사진이 좋아서 비싼 게 아니라, 사실은 그런 렌즈는 선택의 폭이 더 넓어서 비싼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택의 폭이다. 셔터스피드를 늘이거나 줄이며 표현의 수단으로 삼듯이, 얼마나 깊은 영역에 초점을 맞게 할 것인지 역시도 조리개를 조절함으로써 촬영자가 선택할 수 있다. 촬영자는 의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조리개를 선택 '해야 한다'.

 

초점을 의도적으로 흐려서 원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지 않고 주인공만 드러낼 수도 있다. 프레임 구석구석을 모두 선명하게 찍어서 여러 피사체들의 표정으로 이야기에 참여하도록 할 수도 있다.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많은 경우에 이 정도가 기본이지만, 조리개에서는 한 가지 효과가 더 파생된다. 조이면 조일수록 빛이 선명하게 갈라져 보이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래서 야경을 찍을 때 조리개를 13 이상으로 닫는 경우가 많다. 빛이 선명하고 날카롭게 갈라질수록 멋짐 뿜뿜!

 

아쉽게도, 배경흐림도 잘되면서 빛도 찌릿하게 갈라지는 렌즈는 굉장히 드물다. 이건 물리적으로 완전히 반대쪽의 극단이라서, 사실 둘 다 잘되면 설계에 실패한 렌즈 취급을 받는다. 내 경험으로는 최대 개방이 1.4인 아웃포커스 용 렌즈들은 5.6에서 선예도가 가장 좋고 16까지 조리개가 조여지는데, 한 스탑만 열어도 빛갈라짐이 흐리멍덩하다. 최대 개방 2.8의 렌즈부터는 F8에서 가장 선예도가 훌륭하고, 빛갈라짐을 찍을 때 22까지도 조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조리개를 끝까지 조여버리면 빛의 회절로 인해 선예도가 나빠진다. 이 '선예도 훼손'이 심하지 않은 렌즈도 좋은 평을 받게 된다. 보통은 16에서 더 조이지 않고 참는다. 이 긴 글을 요약하면 아래 표처럼 될 것이다.

 

조리개 값 1.4 ~ 2.8 5.6 ~ 8 16 ~ 22
노출 밝다   어둡다
표현효과 아웃포커스 팬포커스 빛갈라짐
화질 화면 가운데만 좋은 화질 구석구석 최고 화질 나쁜 화질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