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촬영과 보정 연구

노출보다 중요한 측광 1/3 - 측광이란

나그네_즈브즈 2020. 9. 10. 12:59

감도, 셔터속도, 조리개를 조절해서 사진을 찍는다. 노출이 적당한가? 너무 밝거나 어두우면 다른 시도를 해보기도 한다. 사람이 사진을 보고 밝기를 판단하는 것처럼, 사실은 사진기도 나름의 방법으로 노출을 가늠한다. 이 역할을 하는 단위를 노출계라고 하고, 그가 수행하는 역할은 '빛을 잰다'고 해서 측광이라 부른다.

 

셔터속도와 감도는 높아질수록, 조리개는 작아질수록 밝게 찍힌다. 이것만 외우면 끝나는 노출보다, 측광은 훨씬 중요하다. 찍는 행위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만 사진기라는 도구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첫 관문이기도 해서다. 측광 시리즈는 사실은 심혈을 기울여 포스팅해야 하는데, 이후에 소개하게 될 히스토그램, 컨트라스트, 비트심도, 다이나믹레인지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간략하게만 먼저 정리해두자.

 

늘 그랬듯이 결론부터. 사진기는 노출계가 0 EV를 가리킬 때 가장 적당한 밝기(적정 노출 또는 정노출이라고 부른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지금 내 카메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뷰파인더나 모니터에 보면

 

얼추 이렇게 생긴 그림이 있을 수 있다. DSLR은 이렇게 표시해주는 경우가 많고, 미러리스는 그냥 숫자 뒤에 EV를 써서 글자로만(ex, -1 EV) 나타내기도 하는 것 같다. 필카에서는 뷰파인더 안에 초록이나 붉은 색의 LED 램프로 존재하기도 하며 아날로그 바늘로 표현되는 기종도 있다. 아무튼 이 녀석이 노출계다. 0보다 큰 쪽을 가리키면 밝고 (-) 부호가 되면 어두운 노출이 된다.

 

좋았어. 그럼 적정 노출이 되게만 찍으면 된다 이건가? 땡. 틀린 이유를 알려주려면 장황하더라도 원리를 조금 설명해야 한다. 친절하게도 수업자료[?]를 미리 만들었으니 정성을 갸륵히 여겨 일단 봐주도록 하자

이제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사진기는 사실 색맹이다. 왼쪽 사진은 촬영자가 바라본 실제 장면이고, 오른쪽은 그걸 카메라가 바라본 대로 나타낸 것이다. 노출계가 밝기를 평가하는 과정을 흉내 내보도록 하겠다. 먼저, 빛을 기록하는 센서가 24화소(2400만 화소는 도저히 못 그리겠어서)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고, 각각의 화소는 0부터 7까지 8단계의 흑백을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자. 24화소 3비트(표현 가능한 색 단계가 8개, 2의 3제곱이라는 뜻) 센서인 셈이다.

사진기가 바라본 흑백의 세계를 가장 비슷하게 표현하도록 24개의 각 화소에 내가 직접 8개의 물감 중 하나씩을 칠해 넣었다. 오른쪽 가운데에 대문기둥이나 화면 양쪽의 관목은 상대적으로 어둡고, 세밀하지는 않지만 다른 부분도 저마다의 밝기로 데이터가 기록됐다. 안비슷해도 용서해라.

 

이제부터 우리의 사진기는 각 화소의 숫자들을 가지고 화면 전 영역에 걸쳐 평균을 계산한다.

(1+1+2+2+3+3+3+3+4+4+4+4+5+5+5+5+6+6+6+6+6+7+7+7)÷24 = 4.375 가 된다.

이렇게 평균된 단계의 회색이 반사율 18%의 회색이 되면 0 EV가 된다. 이건 안셀 아담스라는 분이 만들었다. 검은색부터 흰색까지의 무채색을 반사율에 따라 11단계로 나누고 가장 가운데에 오게 되는 5번 존의 반사율 18%가 적정 노출의 기준이라고 봤다. 위키피디아에 middle gray를 검색하면 기준에 따라 그 색깔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지만, 8비트 RGB에서 대략 124 근처의 명도를 가지는 회색이다.

 


내 수작업 측광의 결과는 256단계인 8비트로 치면 명도 127을 약간 넘기니까, 이 사진은 정노출보다 약간 밝은 정도인 셈이다. 실망할 이유는 아니다.

노출계의 가운데만 맞추면 사진이 끝나나? 에 대한 긴 대답 3부작은 오늘 이렇게 측광의 원리를 먼저 소개하는 정도로 마무리해야겠다. 이건 진짜 어려운 게 맞아서 입문자는 도망갈 수도 있다. 열심히 그려온 그림일랑 다 잊어도 좋으니 뒤로가기를 누르기 전에 두 가지만 기억하자.

1. 사진기도 지 나름 밝기를 판단하는데, 노출계가 0 EV일 때 적당한 밝기라고 생각한다.
2. 하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 적정노출이 언제나 정답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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