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 껍데기에서 곡식으로, 화폐에서 다시 디지털 숫자로. 우리가 부를 측정하고 교환하는 방식이 지나온 여정에는 모두 그만한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 속에는 저장을 보다 편리하게 하려는 노력도 녹아 있는 것 같다. 돈은, 그 스스로 저장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투자는 돈을 저장하는 작업이다.
어렸을 때 배운 대로 저금통에 저장할 수도 있다. 물건 값은 오르는데 저금통 속 내 돈만 그대로인 게 싫다면, 이걸 당장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 주머니에 잠시 저장해두고 이자를 받는 것도 괜찮다. 은행 예금이나 채권 투자가 이런 방식의 저장 전략이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면 증권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을 사들일 수 있다. 돈의 가치는 주식과 건물로 그 모양을 바꾸어 저장되는 셈이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주식 투자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틈만 나면 차트를 들여다 보는 사람, 출퇴근하듯 매일 거래를 하는 사람,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떤 댓가라도 치르는 사람 등등. 감정 소비도 참 열심히들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조바심 내고, 떨어지면 불안하고, 올라가면 기뻐한다.
이상하다. 돈을 저장한다는 관점에서는 저금통이나 주식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저장'을 뭘 그렇게 열심히들 하는지 모르겠다. 저장은, 다시 필요가 있을 때까지 가만 놔둔다는 뜻일 텐데. 여기 어디에도 '열심히'가 끼어들 틈이 안보인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 게 물론 좋다. 위험자산의 리스크로부터 돈을 '안전하게' 저장한다는 절대적 성과로 보나, 다른 자산에 저장했을 기회비용보다 돈을 '더 효율적으로' 저장하겠다는 상대적 성과로 보나 연구는 필요하기도 하니까. 알겠는데, 알지만, 일부러라도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는 거다. 자신의 쪼그라든 멘탈을 어디 한번 낯설게도 대해보자는 거다.
다른 방식처럼 주식투자도, 돈을 저장하는 한 방식이다. 다시 필요해서 꺼내 쓸 때가 됐을 때 구매력이 보존되느냐가 중요하다. 1분 전보다 이 돈이 얼마나 줄었건 늘었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착해서 그렇다. 성실한 게 탈이다. 돈이 대신 일하게 하고 나는 편하고 싶은 게 투자라는 걸 하는 솔직한 마음일 텐데, 대충대충 띵가띵가 쉬엄쉬엄의 마음도 미리미리 연습해둘 필요가 있다.
잠시 MTS를 내던지자. 이게 뭐라고 그렇게 열심히들 했을까. 투자? 어디엔가 돈을 그냥 '가만 놔두는'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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