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장사처럼 주식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한다. 문제는, 사는 가격은 현재시제이지만 파는 가격은 미래시제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내 관심종목이 오를지 떨어질지 100% 알 수는 없다. 꼭 내가 들어가면 그때부터 떨어지기는 하더라만. 그런다고 떨어지길 빌자니 나만 두고 저 혼자 날아가버릴 것 같기도 해 신경이 쓰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야속한 시간만 흐른다.
그럴 때 내가 써먹는 제일 마음편한 방법이 있다. 그 종목에 할애하기로 마음먹었던 돈의 절반만 투입하는 것이다. 사실은 언제나 그렇게 하는 편이다. 말했다시피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마음은 편하다. 50%만 실은 채로 주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면 100% 비중을 넣지 못한 게 속이 쓰릴까? 아니다. 절반이라도 태워보냈으니 나는 실패하지 않은 셈이다. 만약 그 시점부터 주가가 고꾸라지면? 보다 저렴해진 가격에서 종목을 줍줍하면 된다. 진작부터 더 기다렸다가 이 가격에서 몽땅 살 걸, 하는 후회가 들까? 비싼 지점에서 왕창 샀을 때보다 평균단가는 내려갔으니까, 이 경우에도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 우산장수 아들과 짚신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마음과도 다르지 않다. 맑아도 걱정 비가 와도 걱정일 수 있지만, 마음만 뒤집어먹으면 해가 떠도 기쁘고 빗줄기도 예쁘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파는 게 아까우면 오랜 시간 성공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발바닥과 머리 꼭대기 둘 중 하나만 맞히기도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기회비용 저런 기회비용에 일일이 스트레스 받고, 다른 투자자들을 경쟁상대로 삼아 1등하려면 달리기도 전에 조급함에 걸려 넘어진다.
반도체 공급부족이 언제나 해결될지, 2차전지의 화재 이슈는 누가 떠안게 될지는 모른다. 경기민감주가 기세를 이어갈지 기술주가 배턴을 이어받을지 알 수 없다. 새로 만든 약, 최근 런칭된 게임, 다음주 개봉하는 영화가 대박을 터뜨릴지 아닐지도 미지수다. 그런 걸 100% 맞히는 사람은 없다. 업계나 기업의 내부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고 미국 시장이 '나홀로 질주'를 이어갈지, 중국과 신흥시장이 수출 수혜를 입게될지 오리무중이다. 원자재가 재미를 볼지 차라리 채권선물이 괜찮을지, 아니면 팬데믹 이후 쉼없이 달려온 시장의 모습이 기분좋은 과열인지 위험한 버블인지도 모두가 수수께끼다.
잘 모르겠을 때는 그냥 '절반만' 투자하면 된다. 업종에 분산하고, 시장에 분산하며, 자산을 배분하고, 현금을 남겨두면 된다. 두더지처럼 튀어오르는 업종을 딱딱 맞히고, 글로벌 거시경제 지표도 귀신같이 짚으며, 시장의 고점과 저점을 틀림없이 찍어내는 사람은 없다. 그러지 못하는 기회비용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투자의 최대 과제는 '1등'이 아닌 '생존'이기에, 모두를 이기는 것보다 더욱 우선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길은 언제나 갈라져 있기만 하고, 내 노트에는 정답이 들어있지 않다. 나는 그래서 투자와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가급적이면 '절반만' 한다. 절반만 사고 절반만 팔고 절반만 믿으며 절반은 의심한다.
처음 달러를 환전했던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금방이라도 부자가 될 것처럼 기뻤고,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흡족하게 든든했다. 세계 시가총액 1위인 애플만 보유하다가 경기민감주인 J.P.모건 체이스와 인프라투자 ETF를 함께 매수했을 때에도 똑같았다. 목표했던 3,500원에 원익큐브가 귀신같이 도달해 1/3만 팔았을 때에도 불확실한 미래가 기뻤다. 저평가 소외주뿐이었던 포트폴리오에 처음으로 주도주인 현대차를 담았던 기억도 비슷하다. 제조업 ETF와도 같았던 계좌에 네이버와 카카오를 매수한 오늘도 기분이 정말 상쾌하다. 그것도 심지어 목표금액의 60%만 채웠다. 아직 현금도 전체 투자금액의 50%쯤 가지고 있다. 내일이라도 부자가 될 것만 같다. 시장이 당장 크게 꺾인다고 해도 걱정이 없다.
나는, 다른 투자자들도 이 행복과 여유를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그것들도 역시 1등하거나 독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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