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필름사진 이야기

필름사진 16비트로 자가스캔해서 보정하기 - TIFF말고 DNG

나그네_즈브즈 2020. 12. 8. 10:04

디지털이 표한할 수 있는 색의 가짓수에는 아무리 많아도 한계가 있다. 사진이 물리/화학적으로만 표현되는 필름에서는 그 나타날 수 있는 색의 개수가 무한대이다. 현상한 필름이나 인화된 사진을 디지털로 스캔하는 순간 무한에서 유한으로의 색 손실이 발생한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다. 스캔파일의 색 심도를 최대한 높게 유지하는 걸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디지털에서 표현되는 색의 가짓수는 2의 거듭제곱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R, G, B 각각이 256가지의 계조로 표현되면 2의 8제곱이니까 8비트라고 얘기하는 식이다. JPEG 라는 디지털 이미지 압축방식은 8비트 색표현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비교적 익숙한 디지털 카메라센서에서는 압축되지 않은 원본 기준으로 12비트(R 4,096단계 * G 4,096단계 * B 4,096단계)가 최소, 14비트(R 16,384단계 * G 16,384단계 * B 16,384단계)가 기본이다. 아무리 많아도 4,398,046,511,104개의 색상보다 더 표현할 수는 없다. 

 

플러스텍의 필름전용스캐너, 옵틱필름 8100으로 스캔하는 모습.
미리보기 스캔만 한 뒤 범위를 조정해주고, 파일형식을 골라줘야 한다. 16비트는 TIFF, NDG, JP2가 가능하다.



촬영한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면 편리하기는 하다. 그분들도 워낙 바쁘다보니, 스캔 유틸리티가 가지고 있는 필름 종류별 기본설정으로 해서 한꺼번에 JPEG 파일을 만든다. 나만의 시선이나 느낌을 담아낼 수 없다는 점과, 네거티브필름 특유의 디테일하고 섬세한 명부 색 표현이 8비트 속으로 뭉뚱그려진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내가 직접 필름을 스캔하면, 16비트 심도의 원본 사진을 저장해두고 내가 원하는 느낌으로 보정하는 게 가능해진다.

 

스캔 유틸리티 중 하나인 실버패스트에서는 TIFF와 DNG, JP2 등의 형식으로 16비트 스캔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것도 몰라서 TIFF로 냅다 스캔을 했다. A3 출력할 정도로 크기를 설정했더니 파일 하나가 25MB나 됐다. 기대에 부풀어서 라이트룸에 올렸다. 디지털 카메라의 RAW파일이 아닌 경우는 처음이었다. 원본이 네거티브이니까 유튜브에서 본 대로 우상향인 톤커브를 반대로 뒤집고, 하얀색이라야 하는 지점에다가 화이트밸런스 스포이트를 찍으면!

 

안된다. 어째서? 이게 아닌가. 지금 보이는 톤커브는 RGB가 짬뽕된 것인데, 이걸 빨강/초록/파랑 따로따로 만져줘야 하는 걸까? 그래도 안된다. 일주일 동안 별짓을 다해봤는데, 그래도 안된다. 절대 안된다. 흐흐흐흐. 멘탈이 뿌서져 나갔다. 밤에 잠도 잘 못잤다.

 

TIFF 원본(위 좌우)은 라이트룸에서 아무리 만져도 실패. DNG 원본(아래 좌우)은 톤커브를 뒤집고 화이트밸런스를 맞추면 된다. 신기방기!



그렇지만 결국 해결했다. 실버패스트에서 스캔하는 파일 형식을 DNG로 해봤다. 사실 이미지 포맷에 대해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순수 무식쟁이다.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 해봤는데, DNG는 라이트룸에서 잘 된다! 왜 되는지는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다. 역시 난, 무식해. 크하핫. 그런데 파일의 속성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탭으로 가면, 비트수준은 48비트(R, G, B 각각 16비트니까)가 맞지만 파일은 25MB나 되는데 픽셀 수나 DPI가 너무 작다는 게 찜찜했다. 이미지 뷰어로 열어봐도 사진이 코딱지만하다. 

 

구글링을 해봤다. DNG는 압축되지 않은 이미지의 모든 데이터는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조그만 미리보기를 달고 다닌다고 한다. 사용자가 뷰어로 열었을 때 보는 것은 이 미리보기 샘플이라고. 아, 다행이다. 조금은 유식해졌다. ㅋㅋㅋㅋㅋ 이제는 라이트룸에서 뽀샵을 아주 약간만 해주자. 기울기를 잡고 화이트밸런스, 톤커브 등을 건드려만 주는 정도로. 보정이 끝난 사진은 16비트 TIFF로 저장할 수도 있고, 8비트 JPEG으로 해서 휴대폰에 담을 수도 있다. 

 

48비트인 건 만족. DNG 포맷은 작은 크기의 미리보기를 원본 데이터에 달고 다닌다.



아직도 TIFF는 라이트룸에서 왜 저 모양인지 모른다. 다만 내가 겪었던 인고의 시간을, 이렇게 짧은 글[?]로 요약해 공개한다는 생색을 내고 싶을 뿐이다, 헤헷. 아무튼 요렇게 해서 내가 찍은 필름에 나만의 느낌을 입혀 출산한 사진들이 지난번 '늦여름의 장성동' 포스팅(atticus262.tistory.com/66)이었다.

 

찍는대로 모아두고 있는 필름 두세 롤과는 별개로, 아내의 어린 시절이 담긴 필름들을 처갓집에서 공수해왔다. 주말에나 퇴근하고 심심할 때마다, 쉬엄쉬엄 스캔하며 작업하면 재미있고 보람될 것 같다. 블로그엔 올리지 못해 슬프겠지만.

 

자가현상은 약품처리 같은 문제들이 남지만, 자가스캔은 쉽고 깔끔하고 재미있고 번거롭다. 사진 취미의 새로운 재미다.

 

 

완성한 나만의 사진. 왼쪽이 스캔유틸리티가 기본으로 해주는 JPEG, 오른쪽이 내가 직접 만진 JPEG이다. 다른 느낌도 물론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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