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신 분들을 위한 결론 : B&H에서 사면 됩니다. (블로그 광고주가 슬퍼합니다. 대신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 헤헷)
현대 사회의 청년들, 20-30대의 모국어는 갬성입니다. 학교에서 배워 온 글짓기나 발표하기가 아닙니다. '그들의 언어는 이미지'라고 한다면 글쎄요, 표면적으로만 그럴듯합니다. 갬성만 있다면, 사실 우리는 그 메시지의 그릇이 사전적 의미의 언어이든 이미지이든 중요하지 않거든요.
갬성에 열광하는 청년들이 필름사진에 매료됐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유치원 출근도장(?)을 스마트폰으로 했대도 이상하지 않을 세대들입니다. 필름카메라라는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기계는, 인류의 봉인된 갬성에 노크를 한 듯합니다.
필름이 생소하고 그래서 끌리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필름은 비싸다'고 하시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2-3천 원 했겠죠. 현상소에 맡기는 금액도 천 원이나 이천 원, 그런 정도였을 것으로 어림잡아 봅니다. 이게 뭐가 비싸냐. 저도 그런 반응이긴 했는데, 물가상승률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맞아요 아버지. 필름은 비쌉니다. 한 통에 8-9천 원 하는 요즘 필름 가격을 알려드렸더니 깜짝 놀라십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가족들을 위해 벌어오신 그 많은 돈은 생각 안하시나 봅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경제가 많이 발전했고, 늦게나마 이제 필름 가격도 상당히 올랐으니, 다시 말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필름은 비싸지요. 그 가난함의 정서를, 신세대 필름 포토그래퍼들도 공감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갬성 아니면 안된다니까요.
계산을 해 봤습니다. 9천 원짜리 필름 한 통을 산다고 할게요. 저 같은 지방러는 이걸 다 찍으면 현상소에 필름을 택배로 맡겨야 합니다. 택배비 4천 원으로 잡겠습니다. 현상+스캔을 저렴하게 받으면 4천 원 정도 듭니다. 추억보다 돈이 더 아깝다면 여기서 "현상된 필름은 버려주세요"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돌려받는 택배비를 아낄 수 있그든요. 이렇게 필름 한 롤을 최대한 저렴하게 소비하면 17천 원이 듭니다. 한 롤에 보통 36장의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대략 필름사진 한 장에 500원 동전 하나가 사라진다는 계산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돈이 더 듭니다. 3천 원을 내고 '현상만' 하지만, 자가스캔을 하기 때문에 필름을 돌려받는 택배비가 3천 원 듭니다. 바보죠.)
비용을 아끼려면 세 가지 정도 방법이 있습니다. 현상할 필름을 모아서 보내면 택배비 단가가 내려갑니다. 저희 집 내무부장관께서는 6롤쯤 모아서 보내라고 하십니다. 세월이 아득합니다. 처음 찍은 사진은 왜 존재하는지도 까먹을 텐데요. 두 번째 방법은 더 극단적인데, 그럴 거면 필름사진을 안찍는 방법입니다. 논외로 하도록 하지요. 필름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포털사이트에 인기있는 몇몇 필름을 검색하면 최저가도 보통은 8천 원대입니다. 일반적인 135포맷 36장 기준입니다. 코닥부터 볼까요. 프로이미지100은 7,700원. 컬러플러스200이 7,360원. 골드200은 8,220원. 울트라맥스400이 8,890원입니다. 후지필름에서는 c200이 7,400원이고요. 기록용100이... 엥? 9,700원. x-tra 400 이 갑자기 12,000원입니다.
요즘은 진짜 짜증나는 게, 포털 쇼핑화면에 가격은 저렇게 써놓고도 막상 클릭해보면 내용이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프로이미지100 가격을 외부에 노출시켜놓고, 원하는 다른 필름을 고르려면 추가금을 내야 하거나 품절 상태입니다. 요약하면 결국, 필름은 정말 비싸다, 입니다.
가끔씩 중고장터에 유통기한 지난 필름이 저렴하게 나오기도 합니다. 유통기한 지난 필름으로 찍으면 색상도 틀어지고 컨트라스트가 잡히질 않습니다. 그것마저 갬성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저렴한 가격에 비해서 품질이 훨씬 저렴해서 저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해외에서 찾아보면 그나마 저렴한 편입니다.
그런데 해외사이트는 바다를 건너오는 만큼 배송비가 만만치 않죠. aliexpress, ebay, adorama 등에서도 필름 자체는 얼마든지 저렴한 걸 검색할 수 있지만 비싼 배송비를 고려해 50롤, 100롤을 주문하기는 어렵습니다. B&H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필름사진 동호회에서 놀다가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이 사이트는 필름도 물론 저렴하지만, 배송비가 말도 안되게 낮습니다. 저도 최근에야 처음으로 주문을 해 봤습니다.
코닥 울트라맥스400을 개당 5.99달러에 살 수 있습니다. 저는 10롤 주문했고, 배송비가 11달러 붙어서 총 71달러 정도 들었습니다. 환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개당 8천원을 살짝 넘기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요즘엔 달러가 약세라, 한 번 더 지를까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필름을 구하는 경로도 단점은 있습니다. 저처럼 운이 나쁜 경우에는 배송이 어마어마하게 지연됩니다. 보름 정도면 오겠거니 싶어서 접속해 봤더니, "backordered"라는 듣도보도 못한 배송상태가 표시되고 있었습니다. 구글링을 해봤더니 재고가 없어 배송이 지연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10월 초순에 주문했는데 11월 말에서야 이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판매자가 이제 포장을 시작했다고. 축하한다고. 제 인내심에 감사하다고 합니다. 이 필름, 심지어 아직 못받았습니다.
사모아 둔 필름도 아직 넉넉히 남아서, 여유있게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리스크를 감안해서, 필름을 완전 처음 구입하시는 분들은 B&H를 추천해드리지 않습니다. 일단, 본인 취향에 맞는 필름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입니다. 빠르게 구할 수 있는 데서 종류별로 1~2롤씩 사서 찍어봅니다. 하나하나 써보면서 취향을 저격해 주는 필름을 한 두 종류로 압축합니다. 이걸 B&H에서 주문하는 겁니다. 남은 필름을 천천히 즐기시고 현상 보내고 받아오는 동안 B&H의 배송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애초에 필름사진의 갬성이라는 언어는, 기다림의 시간이 주는 몫도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촬영한 사진을 당장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6장을 다 찍을 때까지 시간이 흘러야 하고, 택배가 가고, 내 차례의 현상스캔을 모두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의 연습이 되어 있다면 B&H도 도전해볼 만합니다. 보여주세요. 지름신의 능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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