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촬영과 보정 연구

알고 보는 빛 03 - 예쁜 역광사진 꿀팁

나그네_즈브즈 2020. 10. 26. 10:17

(제목이 너무 자극적인가? 괜히 양심에 찔리네)

 

photo는 빛, graph는 그림이다.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 데도 다 이유는 있다. 필름이 도화지, 렌즈가 붓이라면 빛은 물감이다. 사람들은 카메라와 렌즈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다. 돈을 쓰는 문제도 그렇지만, 흔히 '사진을 배운다'고 할 때에도 주로 기계 장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논점이 집중돼 있다.

빛에 대해서도 탐구해보자. 모델을 찍고 출사를 떠나는 등 처음에는 피사체를 따라 프레임을 만들지만, 어느 시점에는 빛을 보고 셔터를 누르게 되는 때도 있다. 알고보면 빛도 달리 보인다.

 

사진을 조금만 찍다보면 대략 '역광을 피하면 초보, 역광을 찾아다니면 고수' 이런 시덥잖은 프레이밍을 만나게 된다. 측광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흔히 역광을 피하는 경우는 있다. 나는 지금보다도 더 사진을 모르던 시절, '역광을 찍어야 고수지' 하면서 역광만 찾아다니는 멍청한 짓도 했었다. 진짜 고수는 역광이 필요할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면서 찍겠지.

 

그나저나 인스타그램이나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인물사진들을 보면, 역광에서 찍힌 사진이 예뻐보이기는 한다. 왜 그럴까? 역광사진, 어떻게 예쁘게 찍을까? 는 페이크다. 오늘 질문은 왜 역광사진은 예뻐보일까? 이거다. 요약부터 하자.

 

1. 림라이트와 할레이션을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2. 어두운 배경 앞이라야 림라이트가 돋보인다.
3. 조리개를 열고 프레임 경계에 광원이 걸리게 하자.

 

우선, 역광에서 사진을 찍는 게 쉽지는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여기서 말하는 역광은, 빛이 카메라를 향해 들이치는 상황과 피사체가 밝은 배경을 등지고 있는 경우를 아울러 일컫고 있다. 카메라가 측광을 하고 사용자가 노출보정을 하는 과정에서, 역광 프레이밍은 대체로 커다란 노출 차이를 만들게 된다. 밝은 부분은 너무 하얗고, 그걸 등진 피사체들은 너무 어둡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다. 하늘과 노을에 색이 드러나면 사람 얼굴이 시커멓게 된다. 인물을 살리면 하늘이 허옇게 떠버린다. 

 

여기서 피사체에 정노출로 스팟측광을 하거나, 오버노출로 평균측광을 하거나, 정노출로 평균측광해서 보정할 때 밝기를 맞추는 건 사진 좀 한다하는 사이에서는 기본 상식에 불과하다. 더 멋진 역광사진에는 분명 뭔가 있다.

 

잘 찍은 역광 사진이 예뻐보이는 이유는, 내 생각에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림라이트를 잘 만들어 낸 경우다. 피사체의 경계선에 역광에서 들어온 빛이 환한 테두리를 만든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빛나는 경계선을 림라이트라고 부른다. 이걸 왜들 그렇게 좋아하냐면, 내 생각에는, 배경으로부터 주 피사체를 분리시켜서 돋보이게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인물사진에서 배경흐림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고. 

림라이트에 의한 대비효과. 언제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배경이 어두워야 림라이트가 보인다.

아무튼 이 림라이트는 역광에서는 언제나 생기지만, 우리 눈에 언제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 눈은 대비를 통해서만 차이를 인지하고 사물을 볼 수 있다. 림라이트를 포함해서, 밝은 빛은 사진에서 '하얀 색'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림라이트가 희멀건 배경을 뒤로 하고 피사체를 둘러싸고 있어봤자(그림에서 가장 오른쪽), 우리 눈에는 그 하얀색이나 저 하얀색이나 다 똑같아서 구분도 잘 안되고 큰 감흥도 생기지 않는다. 배경이 어둡고 피사체도 어두워야 한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큰 대비가 없어서 피사체가 또렷이 드러나지 않는다(그림에서 가장 왼쪽). 여기에 한 줄기 역광에 의해 림라이트가 경계선을 만들면, 어두운 배경-밝은 테두리-어두운 피사체의 대비(그림의 가운데)를 통해 우리 눈은 그제서야 '아, 여기에 뭔가 있었구나'를 인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려면 배경과 피사체가 빛을 등지고, 그 역광이 배경과 피사체 사이로 들어오는 두 조건이 함께 성립해야 한다. 사이로 들어온다는 표현은 ▲배경에 가려지지 않아야 하고, ▲피사체에는 도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기만 하면 빛의 경로는 (역사광을 포함하는) 넓은 범주의 역광이기만 하면 된다. 

배경과 피사체가 모두 광원을 등지고 있다. 역광/역사광이 배경에 가려지지 않아야 한다.

둘째는 할레이션을 잘 만들어 낸 경우다. 광원이 프레임의 경계에 걸리면 그 근처가 하얗고 뿌옇게 흐려지는 현상이 생긴다. 선명하고 쨍한 사진을 만드는 데는 방해요소라 피하려고 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인물사진에 잘 써먹으면 신비로운 분위기와 뽀얀 피부톤을 연출할 수 있다. 광원이 프레임 경계에 걸리든, 다른 피사체 경계에 걸리든, 걸리기만 하면 된다. 이 때 (내 뇌피셜로는) 조리개가 조이면 빛갈라짐이 생기고, 조리개가 열려야 할레이션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러나 보통은 '인물사진 찍어야지'하고 마음 먹은 경우 배경흐림을 의도하기 때문에 조리개는 열려 있을 확률이 높다. (파란색 부분은 확실하지 않은 제 추측입니다. 그럴 일도 없지만 너무 철석같이 믿지는 마세요 ㅋㅋ)

 

사실 할레이션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없어 나중에 포스팅을 쓸까 했었다. 흐름상 역광 사진에 등장하게 됐는데, 뇌피셜로 막 떠든 것이니 너무 믿지는 말자. 또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댓글로 혼내주시기를 망설이지 말자.

구글이미지에 '할레이션'을 검색해보자. 광원이 프레임 경계에 걸려 있다. 어두운 배경 앞에 머리카락도 림라이트로 빛난다.

역광사진 포스팅을 쓰고 있자니 당장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 사실은 카메라가 없을 때에도, 눈으로 역광을 찍고 다니면 재미있다. 내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의 어깨에서 림라이트를 발견하고, 해의 위치를 내 눈꺼풀의 경계에 걸면서 할레이션을 만들면 재밌다. 내 얼굴도 까매진다.

 

그러나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사진을 일부러 역광으로 찍을 필요는 없다. 그건 경험으로 얻어지는 지혜겠지만, 역광이 더 예뻐보일 때도 있고, 사광이 만드는 그림자가 촬영자의 의도에 더 적절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결론은, 애매하게 '그때 그때 달라요'로 맺어야 욕을 먹지 않는 법이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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