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촬영과 보정 연구

알고 보는 빛 01 - 딱딱하거나 부드럽거나

나그네_즈브즈 2020. 10. 10. 23:09

photo는 빛, graph는 그림이다.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 데도 다 이유는 있다. 필름이 도화지, 렌즈가 붓이라면 빛은 물감이다. 사람들은 카메라와 렌즈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다. 돈을 쓰는 문제도 그렇지만, 흔히 '사진을 배운다'고 할 때에도 주로 기계 장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논점이 집중돼 있다.

빛에 대해서도 탐구해보자. 모델을 찍고 출사를 떠나는 등 처음에는 피사체를 따라 프레임을 만들지만, 어느 시점에는 빛을 보고 셔터를 누르게 되는 때도 있다. 알고보면 빛도 달리 보인다.

오늘 알아볼 빛의 성질은 딱딱하냐 부드럽냐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에 따라서 촬영자는 같은 피사체라도 그 느낌을 변주해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빛이 손으로 만져지는 것도 아닌데, 무슨 기준으로 딱딱하고 부드러운지를 가늠한단 말일까? 빛이 만드는 그림자에 따라서다. 그림자도 자세히 보면 경계선에 그라데이션이 느껴진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경계선을 가진 그림자는 딱딱한 빛이 만든다. 이런 빛 환경에서는 컨트라스트도 강한(경조) 경우가 많다. 그림자는 짙고, 빛을 받은 자리는 상대적으로 훨씬 밝게 느껴진다.

부드러운 빛은 반대로, 연하고 경계선이 부드럽게 흩어지는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컨트라스트도 그리 강하지 않다(연조).

이렇듯 경조와 연조를 만들어내는 빛의 성질은 몇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원리 상으로 보면 대개는 광원의 수와 거리가 큰 갈래라고 할 수 있다. 광원이 많고 피사체와 가까울수록 빛은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든다.

 원칙적으로 하나의 빛은 하나의 그림자를 만든다. 이 그림자는 완전한 검은색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빛은 모든 곳에 색을 입히지만 피사체에 가려진 부분에는 논의 중인 이 유일한 빛 외에는 어떤 빛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두번째 그림처럼 조금 다른 위치에 광원 하나를 추가해본다면 어떨까. 빛이 하니였을 땐 빛이 닿거나 닿지 않는, 단 두 종류의 명암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 종류의 명암이 표현될 수 있다. 그림자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어떤 빛도 닿지 않는다. 피사체와 아무 상관없는 먼 곳은 지금도 빛을 받아 환하다. 그런데 그림자 A에서도 일부는 새로운 광원의 빛을 받아서 완전한 어둠은 피할 수 있다. 관점을 바꾸면 그림자B에서도 덜 어두운 자리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처음의 날카롭고 어두웠던 그림자는 새로 생긴 빛에 의해 한단계 흐리멍덩한 경계를 갖게 된 것이다.

빛이 세 개, 네 개로 늘면 완전한 검은 그림자에서 가장 밝은 영역으로 가는 경계의 그라데이션은 점차 그 계조를 더하게 된다. 즉,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게 된다.

빛의 면적이 넓고 피사체가 그에 비해 작아질 때에도 광원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그림자를 비추는 점 광원의 각도가 다양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그림자의 경계선은 더 풍부한 계조를 가지고 부드럽게 두 영역을 가르게 된다.

화장실이 셀카의 성지가 될 수 있는 데에는 아마도 그 조명이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든다는 특징도 한몫을 담당하는 듯하다. 광원이 그리 많은 곳은 아니지만, 대부분 반사율이 높은 내장재들이 피사체에 비해 아주아주 넓다란 반사면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벽면보다 조금[?] 더 큰 광원도 있다. 태양 아래에서도 우리 얼굴은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까? 우리 주변 1억5천만 km 안에서 그만한 커다란 광원은 더 찾을 수 없는데. 기대와는 달리 태양은 기본적으로 아주 딱딱한 그림자를 만드는 빛이다. 왜 그럴까.

광원에서 뻗어나온 빛은 직진하지만, 피사체 경계선을 만날 때 미세하게 회절이 일어난다. 빨간색 광선처럼 경로가 살짝 휜다는 뜻이다.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조금 말이 안되는 비유지만, 피사체를 아주 가까이 지나는 운 나쁜 광자는 피사체의 질량에 의한 '당기는 힘(만유인력)'을 받는다고 이해해버리자.

 

어쨌든 이 불쌍한 소수의 광자는 경로가 다소 수정됐고, 이후에는 별다른 방해요소 없이 직진한 끝에 어두컴컴하던 그림자의 경계선 근처로 떨어질 예정이다. 이 때 도착지까지의 남은 여정이 짧다면, 직진하던 다른 광선과의 이격이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피사체와 그림자가 생기는 면이 멀다면? 피사체 경계에서 회절이 발생한 이후의 경로가 길어질수록 오차는 누적된다. 그러면 이런 일부의 회절 광선들이 닿는 부분이 넓어지는 효과가 일어난다. 즉, 중간 톤을 가진 '그라데이션' 영역이 넓어져 그림자가 부드러워지는 결과를 만든다.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빛이 여러 개거나 크고 피사체가 작고 서로 가깝고 스크린이 멀면 부드러운 그림자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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