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는 빛, graph는 그림이다.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 데도 다 이유는 있다. 필름이 도화지, 렌즈가 붓이라면 빛은 물감이다. 사람들은 카메라와 렌즈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다. 돈을 쓰는 문제도 그렇지만, 흔히 '사진을 배운다'고 할 때에도 주로 기계 장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논점이 집중돼 있다.
빛에 대해서도 탐구해보자. 모델을 찍고 출사를 떠나는 등 처음에는 피사체를 따라 프레임을 만들지만, 어느 시점에는 빛을 보고 셔터를 누르게 되는 때도 있다. 알고보면 빛도 달리 보인다.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한 딱딱하고 부드러운 빛, 경조와 연조를 만드는 빛에 이어서 오늘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 또는 적용해보려고 한다. 내가 처음 사진을 배울 때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여름에 찍은 사진들은 맑고 쨍한 느낌이 드는데, 겨울에는 왜 희멀건 느낌이 날까요?"
내 기억으로는 그 때 선생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대답하셨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평소에 "대낮에 찍으면 그림자가 강하고, 해 뜰 때나 질 무렵에 찍으면 빛은 부드럽다"고 말씀해오셨던 걸 보면, 선생님은 아마 당신께서 답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셨던 것 같다.
휴대폰으로라도 사진을 찍어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한 여름, 한낮에 찍은 사진의 전형적인 색감이 있다. 그림자가 강하고 화사하게 밝으면서 에너지가 느껴지고 채도도 전체적으로 잘 느껴지는 그런 색감 말이다. 반대로 겨울에 찍은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추위가 느껴진다. 색감이 그야말로 창백하다. 차분하고, 연한 빛이 만들어내는 색감이다. 왜 다를까?
지난 포스팅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태양은 기본적으로 경조를 만드는 광원이다. 광면적은 어마어마하지만,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피사체의 그림자가 맺히는 온갖 스크린이 그 거리에 비해 너무도 가깝게 착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딱딱한 그림자가 생긴다.
이 광원은 지구의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약간의 방해를 받기는 한다. 대기권의 공기분자들에 의해 약간의 산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산란이 뭔지 모르겠다면 반사와 비슷하다고 얼버무려도 괜찮다.
주 광원인 태양이 대기를 통과하는 경로가 길어지면 더 많은 공기분자를 만나 더 많이 산란된다. 태양빛을 머금고 반사시키는 모든 공기분자들 하나하나가 아주 미세한 보조광원 역할을 하게 된다. 광원이 약해지고, 광원이 많아지며, 광원이 넓어지는 효과다. 그러면 약한 컨트라스트를 만드는 '부드러운 빛'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바로 일출이나 일몰 즈음에 매일 생기는 것이다. 혹시나 구름이 편평하게 깔린 흐린 날에는 태양빛이 극단적으로 부드러워지는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하늘의 구름 전체가 마치 호롱불을 머금은 창호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겨울에도 당연히 비슷한 일이 생긴다.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가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 있어서 생기는 자연 현상이다. 축이 기울어진 채로 자전과 공전을 하면, 태양의 궤적 자체가 상당히 달라진다. 과학 시간이 아니니 쉽게 말하자면, 겨울에는 여름보다 태양이 비스듬히 세상을 비춘다. (올 겨울 한낮에 확인 해보도록 하자) 태양이 비스듬히 대기권을 통과하면? 위에서 설명한 과정이 반복된다. 대기권을 지나는 경로가 더 길어지고, 더 많은 공기분자들을 만나고, 더 자주 더 많이 산란되고, 더 많은 미약한 보조광원들이 생겨나고, 컨트라스트가 약해지는 것이다.
번외로, 지구의 공전궤도는 정확한 원이 아니라 약간 찌그러진 타원이라서 겨울에는 태양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그런데 타원이 찌그러진 정도가 너무나도 조금이기 때문에 거리의 변화로 인한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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