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촬영과 보정 연구

아웃포커싱 꿀팁, 초점거리 vs. 조리개? 착란원을 계산해보면

나그네_즈브즈 2020. 11. 3. 21:58

제목에 대한 정답. 아웃포커싱에는 초점거리보다 조리개가 중요하다(아~~주 약간). 대신 더 크게 기여하는 요소가 있다.

APS-C센서, 90mm f2.8, 갈대의 세로길이가 100mm 미만이었던 것 같다. 배경은 약 20m 떨어진 6차선 도로 건너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렌즈를 고를 때, "아웃포커싱 잘 되나요?"를 궁금해 한다. 나도 그랬다. 배경흐림, 흔히 말하는 아웃포커싱의 효과는 렌즈의 스펙 그밖에도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흔히 조언하기로는

 

초점거리가 길수록

조리개 값이 작을수록

피사체가 가까울수록

배경이 멀수록

촬상면이 클수록

 

이 다섯 가지 조건이 언급된다. 특히 나의 질문은, 이 조건들 각각의 비중이라든지 영향력이 어떻게 다른가에 관한 것이었다. 24-70mm f2.8의 최대망원 배경흐림과 24-105mm f4의 최대망원 배경흐림은 어떻게 다를까? 초점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나? 조리개의 제곱에 반비례하나? 장비의 스펙보다 촬영하는 거리의 기여도가 더 중요할까? 초점거리가 달라지면 촬영 거리도 달라지는데? 여기에 대답을 하려면 아무도 알려준 적 없는 아웃포커싱의 공식을 소개해야 한다. 

 

그 전에 결론을 얘기하자면, 약간의 차이지만, 센서의 크기가 가장 중요하다. 주 피사체가 작을수록, 촬상면에 맺는 상을 크게 할수록 배경은 더 흐려지기 때문이다. 이 비율이 n배가 되면 아웃포커싱의 효과는 n배가 넘는데(n의 제곱배 보다는 작다), 피사체가 똑같은 경우에는 구도를 유지하면서 상의 크기를 키우려면 센서가 커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렌즈의 초점거리와 조리개도 중요하다. 빛망울의 크기, 즉 경계선의 흐려진 두께는 조리개 값에 정확히 반비례한다. 초점거리에도 거의 비례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덜 중요하다. 

 

배경의 거리는 피사체 근처에서는 중요하다. 어느 정도 멀어지면 중요도가 떨어진다.

 

원래 하나의 점은, 렌즈를 통과해 크기가 없는 점으로 초점이 맞아야 한다. 이 점들로 이루어진 경계는 두께가 존재하지 않는 날카로운 선을 만든다. 그런데 이 점에서 나온 빛의 경로가 정확한 초점의 상을 맺지 못하면, 경계가 흐리멍덩한 원으로 보이게 된다. 이걸 착란원이라고 한다. 이 흐릿한 동그라미들로 경계가 이루어지면 선이 날카롭지 않고 흐려보이게 되는 것이다. 착란원의 크기가 크면 '더' 흐려보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아웃포커싱의 지표를 삼을 수 있다.

 

촬상면에 상으로 맺히는 착란원의 크기는 다음 공식에 따라 계산될 수 있다.

 

c = (f/RN) * |x| / [f(R+1)+x]

(c:착란원크기, f:초점거리, N:조리개값, R:피사체크기/이미지크기, x:피사체~배경)

크게, 분수 * 분수 형태의 공식이다.

 

착란원의 크기는 R에 대략 반비례한다. c의 역수를 보면, 이 관계의 지수가 1보다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 R은 분모에 두 번이나 들어가 있어서 영향력이 가장 크다. R을 작게 해야 착란원이 커진다(그래프에서 왼쪽 방향). R을 n배 늘이면, 계산 결과는 그보다 약간 더 큰 폭으로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다. R의 반비례보다는 빠르게 감소하지만 R의 제곱보다는 느리게 감소하는 수준이다. 물론 R이 아주 큰 영역에서의 결과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피사체의 크기를 상의 크기로 나눈 비율이다. 인물을 찍는다면, 전신을 찍을 때보다는 상반신만 담을 때라든가 앉아있는 모습을 찍는 쪽이 유리하다. 피사체 근처의 가까운 점이 만드는 착란원은 특히 R에 더 많이 의존한다. 

 

그러나 피사체 크기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상의 크기를 무작정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같은 구도라면 센서가 큰 게 아웃포커싱에는 좋다. APS-C 규격의 2/3를 차지하는 상보다는 풀프레임 촬상면의 2/3배를 채우는 상이 더 크기 때문이다. 풀프레임 센서가 APS-C 센서에 비해 배경흐림이 유리하다는 것은, 우리가 구도라는 제한조건을 받아들일 때에 한해서만 성립한다. 모델의 얼굴이 사진 넓이의 10%만 차지하든 (반대로) 사진이 얼굴의 10%만 차지하든(콧구멍만 보일 것이다) 굳이 상관하지 않는다면, 다른 규격의 센서 사이의 그 어떤 차이도 빛망울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2. 조리개는 별로 설명할 게 없다. 렌즈의 최대개방 조리개는, 렌즈를 바꾸지 않는 이상 내가 건드릴 수 없는 변수이면서, 다른 변수의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착란원의 크기는 조리개 값에 정직하게 반비례한다. 

 

3. 초점거리는, 엄밀히 따지면 빛망울을 크게 만드는 데 있어서 조리개만큼의 효과를 갖지는 못한다. f/RN에 딱 들어있지만, 1/[f(R+1)+x] 라는 분모에도 기여를 일부 하고 있어서다. 이 여분의 반감 요소는 물론 x가 아주 크다면, 그러니까 굉장히 멀리 떨어진 배경이 만드는 착란원 크기에는 영향이 적을 것이다. x가 무한히 크다면 이 분수는 |x|/x, 즉 1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파란색, 주황색, 회색 곡선으로 가면서 배경의 거리는 8배씩 멀어졌지만 x가 충분히 클 때는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게다가, 완전한 직선이 아니라 약~간 기세가 꺾이는 경향에도 주목하자. 

 

 

이 그래프의 가로축은 렌즈의 초점거리다. 세로축은 당연히 배경 착란원의 크기(지름)

 

 

초점거리와 조리개가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경쟁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예를 들어보자. 보통 갈등에 사로잡히게 되는 24-70mm f2.8 렌즈와 24-105mm f4 렌즈의 두 망원단에서, 배경의 거리에 따른 아웃포커싱 효과는 비슷하게 나타난다(그림 왼쪽). 그러나 굳이 비교해보면 105mm가 70mm에 비해 1.5배 큰 반면에 조리개는 1.43배만 작다. 조리개의 영향이 더 크긴 하지만, 엑셀의 힘을 빌려 확인해보면 24-105 렌즈 쪽이 미세하게 앞서 있기는 하다(그림 오른쪽). 그러나 이 작디 작은 승리는, 초점거리가 달라지면 금세 잊혀질 영광에 불과하다. 

 

 

사람의 전신과 위 아래 배경을 포함한 2.1m 높이의 피사계 직사각형을 풀프레임 센서의 세로 길이 35mm에 담는다고 가정했다. 두 그래프에서 가로축은 피사체에서부터 배경까지의 거리를 나타낸다.

 

 

난잡해 보이지만 요약하자면 ▲작은 피사체를 크게 담을 것, ▲같은 비율의 차이라면 긴 초점거리보다 밝은 조리개가 미세하게 더 중요, 정도가 되는 셈이다. 어디까지나 오늘의 잡담은 아웃포커싱이 간절히 필요할 때에나 요만큼 써먹을 수 있을 뿐이지, 좋은 사진을 찍는 것과 커다란 관련성은 없다. 그야말로 잡담일 뿐. 이런 계산이나 하고 자빠졌을 시간에 더 좋은 생각 한번 더 하고 사진이나 한장 더 구경하는 게 훨씬 낫다.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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