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머리 속을 떠도는 생각들을 정돈하고 싶어서 개인적 공간에 재미없는 생각을 기록해 둔다. 혹시 읽으실 분들은 (실선으로 구분된) 긴 서론을 건너뛰고 '두괄식 요약'으로(그림 다음에 나온다) 직행하시기 바란다.
주가 조작 작전에 휘말린 8개 주식 종목에서 반대 매매가 나와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는 사건이 있었다. 지금 얘기하기엔 뉴스도 아니지만. CFD? 내가 그밖에도 모르는 게 참 많기는 한데, 우리 같은 개인투자자가 몰랐으면 더 좋았을 그런 이벤트들이 가급적이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일어난 사건에 우리 금융 당국과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따라서 국내 주식시장은 또하나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도 괜히 걱정해 본다.
사건에 관심이 없는데도 아내가 자꾸 뉴스를 전해줘서 주워듣게 됐는데, 이 사람들 진짜 악질 중의 악질인 것 같다. 물론 주가조작은 당연히 나쁜 거고, 저질러 놓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도 인간의 드러운 본성인 건 맞다. 그런데 오늘 귀찮은 포스팅의 트리거를 당긴 레알 분노 포인트는, 금융 지식 기반이 얇고 절박한 사람들이 결국 또 가장 쉬운 먹잇감이 됐다는 점이다.
연예인, 의사 등등은 일단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손상될까봐 범죄에 연루됐거나 피해 입은 사실을 쉽게 알릴 수 없다. 이 점을 노린 것도 진짜 혐오스럽기는 한데, 이런 사람들은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청소아주머니, 간호사는 (그들의 평균적인 임금 수준을 고려했을 때) 아닐 수 있다. 이 분들에게는 그 돈이 없으면 안된다.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평생을 바쳐 모은 돈일 수도 있다. CFD는 고사하고 레버리지나 파생상품이나 통정거래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수 있다. 이걸 노리는 무슨 짓이든 욕을 여기다 적고 싶을 정도로 진짜 나쁜 행동이다.
결국 나 같은 '먹잇감'은 '노리기 쉬운' 그룹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융과 투자에 대해 건전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지고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괜찮다. 어차피 인류의 앞 세대들이 그런 유전자를 물려줄 형편이 아니었으니 나한테만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노력하면 그런 세계관, 탑재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심리를 다잡고 싶을 때마다 도서관을 찾아갔다. 좋아하는 투자 책을 읽고 또 읽다 보니 의식하지 않아도 투자에 대한 내 관점은 점점 더 고요해졌다. 읽은 책들을 브레인스토밍해서 서로 선이 연결된 그림을 그려보면, 상당 수 저서들의 허브 역할을 너끈히 맡아낼 수 있는 책은 (내 취향에는)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인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이 책의 20개 챕터들을 내 이해력 대로 편집하고 재구성해서 기록으로 남기려는 거다. 큰 주제별로 묶어보면 ▲복리 효과와 투자의 시간지평, ▲확률적 사고, ▲금융과 행복 뭐 이런 정도다. 순서는 내 마음이다.
두괄식 요약 - 「투자의 시간 지평」 편
1. 복리가 마법을 부리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2. 그걸 진정으로 이해했다면 FIRE는 가능하지 않다.
3. 노후 대비라도 성공하려면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4. 오래 살아남으려면 욕심을 줄여야 한다.
복리 효과를 복리의 마법이라고도 많이들 표현하는데. 효과가 됐든 마법이 됐든 사람들은 '기브'는 간과하고 '테이크'만 본다. 이걸 무슨 편향이라고 부르더라? 아무튼 복리라는 원리 체계는 금융에서 물론 존재하기는 하는데 길게 설명하긴 입이 아프고. 대략 언급하자면 ▲대단하지 않은 숫자라도 ▲반복해서 곱해지면 ▲아주 큰 숫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사람들은 ▲아주 큰 숫자가 된다에만 환호한다. 이 마법(?)에는 비용이 있다. 바로 ▲반복해서 곱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나도 물론 그렇고, 우리는 기다리는 게 싫다. 안됐지만 이 비용은 복리가 선물할 '아주 큰 숫자'를 기대하는 그 누구도 결코 피할 수 없다.
머리로는 쉽게 이해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다. 게다가 비용의 불가피성을 진정으로 수용하고 나면 지금까지 줄곧 피하고 외면해 왔던 잔인한 결론에 논리적으로 다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투자를 통해 FIRE 할 수 있다는 꿈을 버려야 한다. 정확히 말해 Retire Early가 불가능하다. 사실 난 아직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라고 떼쓰고 싶지만 말이다.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나를 위해 뼈를 한번 더 때리겠다. 홍진채 대표님이 「거인의 어깨」에서 투자의 정의를 이렇게 소개했다. "미래의 더 큰 구매력을 얻기 위해서 현재의 구매력을 타인에게 이전하는 행위"
현재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잡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어쨌든 현재를 포함한 가까운 미래의 구매력을 포기한다는 게 투자의 본질이고 보면, 현재를 먼 미래로 바라봤던 아주 먼 과거에 투자를 해두지 않았다면 단지 공부를 하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내가 곧 FIRE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투자는 그냥 우리 가족의 노후를 대비하거나, 그도 아니면 자녀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저축의 확장된 개념 정도가 되어버리는 슬픈 현실.
잠깐. 날카로운 지성을 자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대단하지 않은 숫자라도 ▲반복해서 곱해지면 이라면서? 그럼 '대단한' 숫자들을 반복해서 곱하면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금방 '아주 큰 숫자'가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 말은, 개별 투자 건마다 혹은 어떤 기준 시간마다 높은 수익률을 거두면 금방 부자가 될 수 있지 않냐는 얘기다.
맞다. 그럴 수만 있다면 베스트 시나리오다.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하려고 한다.
첫째, 수익률은 규칙적이지 않다. CAGR는 Compound Annual Growth Rate의 약어로 연평균 성장률을 뜻한다.
100이라는 숫자가 20% 성장한다는 건 1.2배가 된다는 얘기다. 100+100×(20/100) = 100×(1+0.2) 이니까 말이다. 1.2'배'가 되는 센스와 ×1.2 라는 계산은 동의어다. 20% 성장을 두 번 이뤄내면? 100×1.2 의 결과에 두 번째 성장을 고려해 또 한 번 ×1.2를 계산해주면 된다. 따라서 (100×1.2)×1.2 = 100×1.2×1.2 = 100×1.44 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반대로 두 번에 걸쳐 1.44배가 되는 것은 평균적으로 1.2배 성장을 반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쉬운 연습 하나 더. 두 번에 걸쳐 1.21배가 됐다는 건 평균 성장률이 얼마일까? 10% 성장, 즉 1.1배 성장이 반복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서 1.44의 제곱근과 1.21의 제곱근, 즉 '어떤 숫자를 반복해서 2회 곱해야 최종 성장률이 됐을까?'를 계산했다. 숫자가 복잡해지면 계산기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면 지난 두 번의 평균성장률, CAGR을 구할 수 있다.
성장률의 반복 횟수가 2번보다 많아지면? 제곱근의 경우 1.44 또는 1.21을 제곱하는 자리에 숫자 2 대신 1/2를 집어넣은 연산이다. 따라서 성장의 반복 횟수가 3년이라면 1/3제곱, 8번이라면 1/8제곱을 해주면 된다. 따라서 특정 기간의 CAGR을 구하려면 기말 output을 기초 input으로 나누어 '배수'를 구하고, 여기에서 1/기간 제곱을 해주면 된다.
2년 동안 44% 성장했다면 CAGR은 20%다. 10년 동안 자산이 2.5937424601 배가 됐다면 CAGR은 10%다. 여기서 함정. 2년 동안 꼬박꼬박 20%, 10년 동안 한 번도 틀림없이 10% 성장한 건 아닐 수도 있다. 첫 해에 수익률이 44%에 이르고 이듬해에 제자리걸음이어도 평균 성장률은 20%가 될 수 있다. CAGR은 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그런 속도였다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거니까.
복리 효과를 내기 위해 어떤 수익률이 '반복'해서 곱해져야 한다는 믿음에 잘못 말려들면, 이따금 찾아오는 손실을 참아낼 수 없게 된다. 평균은 현상을 설명하는 도구 중 하나인 통계일 뿐, 교조적으로 따라야 할 도그마일 수는 없다. 수익률은 나쁠 때도 있고 너무 좋을 때도 있다. 복리가 힘을 발휘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하고, 이러나 저러나 기다리는 데에는 하나하나의 디테일에 과도하게 신경쓰면 괴로움만 늘어난다.
둘째, ▲대단하지 않은 숫자라도 괜찮다. 이건 정말 커다란 위로가 된다. 오히려 대단한 수익률에 집착하다가, 끝도 없이 욕심부리다가 망하는 사례들을 모건 하우절은 많이 소개해준다.
골드만 삭스 임원에 올랐으면서도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혐의로 부와 명성을 잃은 라자트 굽타 이야기.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대단한 사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폰지 사기에 손을 댄 버니 메도프 이야기(이상 3장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
대공황에 배팅해서 부자가 됐다가 위험한 배팅을 이어간 끝에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제시 리버모어 이야기,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우수한 동료로 버크셔 헤서웨이를 이끌었지만 잘못된 레버리지로 금융위기 때 지분을 모두 잃은 릭 게런 이야기(이상 5장 부자가 될 것인가, 부자로 남을 것인가). 심지어 '들어가는 글'에 소개된 금융 금수저 리처드 퍼스콘의 폭망 스토리까지.
이야기들의 교훈은 비슷하다. 챕터마다 등장한 원래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내가 가진 것,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걸 이유는 전혀 없다. 문제는 남과 비교하는 것이다. (3장)
큰 수익을 바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파산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복리의 원리는 큰 수익률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저 썩 괜찮은 수익률이 중단 없이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되기만 하면 결국엔 승리할 것이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면서 동시에 비관적이어야 한다 이 두가지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이상 5장)
11장(적당히 합리적인 게 나을까 철저히 이성적인 게 좋을까)에서 흥미로운 사레들을 제안한다. 우리는 더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더 효율적인 치료를 받을 필요도 없고(바그너야우레크의 말라리아요법 매독 치료), 이론 상 최적의 자산 배분을 아슬아슬하게 지속할 필요도 없으며(예일대학교 두 연구자의 2 대 1 레버리지 전략), 지론에 어긋나는 의사결정을 가끔은 할 때도 있다(조시 브라운의 개별 주식 보유와 존 보글이 아들의 액티브 펀드에 투자한 경우).
다시 원문으로 메시지를 옮겨보겠다. 우리는 스프레드 시트가 아니다. 금융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냉철하게 이성적이 되려고 하지 마라. 그냥 '꽤 적당히 합리적인' 것을 목표로 삼아라. 이게 더 현실적이며 장기적으로 고수할 확률도 크다. 자신의 전략을 사랑하는 적당히 합리적인 투자자는 그 전략이 엄밀히 보면 불완전하다고 해도 오히려 우위에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 불완전한 전략을 계속 고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철저히 이성적인 걸 '최고의 혹은 대단한 수익률'로, 그리고 꽤 적당히 합리적인 걸 '적당히 괜찮은 수익률'로 치환하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예전에는 개별 투자 건에서 내가 얼마의 수익률을 기대하는지에 신경써 왔다. 그런데 속도가 문제다. 너무 느린 것도 안되지만, 내가 지나치게 큰 리스크를 떠안지 않았는지도 균형 잡아야 할 문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종목이 아니라 계좌'라는 조언에 이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국 '포트폴리오'가 어떤 CAGR로 성장하느냐가 핵심이다. 홍진채 대표의 최근 저작 「거인의 어깨」에 등장하는 밸류에이션 챕터가 연결되어 있다. 투자자가 어떤 주식이 '싸다'고 말할 때에는 '기대 CAGR이 투자자가 요구하는 대안 자산의 CAGR보다 높다'는 함의가 있다. 밸류에이션에서 할인율 역할을 하는 요구수익률이 지나치게 높으면 기준이 너무 빡빡해져서, 그만큼 우수하면서 저렴한 기회를 거의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몇 번 해보면 알게 되지만, 15%의 요구수익률도 지나치게 높다. 홍진채 대표는 10%로 설정한다고 한다. 이런 의사결정들을 모아둔 포트폴리오는 그런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주식은 어느 날 갑자기 일확천금을 벌게 해주는 자산이 아니라는 소리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질수록 덜 느리게 부자가 될 수 있다. 이번 CFD 사태를 보면서 그런 점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슈카월드의 위 영상 29:10에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온다.
"주식으로 엄청난 수익률을 올렸다"
제 생각에는 이거 말이 안됩니다.
주식으로 어떻게 엄청난 수익률을 올려요?
주식은 엄청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니예요
진짜, 이거 명심해야 한다.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진실. 나의 Retire Early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도 투자를 중단하지는 않는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이 연재의 다음 포스팅에서는 「돈의 심리학」의 다른 교훈들에 대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투자자 > 투자철학 멘탈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의심리학 정돈하기] 투자의 시간지평 03 (가늘고 길게) (13) | 2023.05.29 |
---|---|
[돈의심리학 정돈하기] 투자의 시간지평 02 (feat. 복리의 공식) (0) | 2023.05.20 |
장기투자자의 '핑계력'...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0) | 2022.07.26 |
추정 기업가치 기록하기 - 가치투자자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feat. 물타기와 불타기, 손절이냐 익절이냐) (0) | 2022.07.20 |
텐배거(10루타)를 위해 주식을 오래 보유하는 데 도움될 수도 있는 두 가지 작은 팁 (3) | 2022.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