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철학 멘탈관리

장기투자자의 '핑계력'...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나그네_즈브즈 2022. 7. 26. 11:29

나는 보통 사람, 평범한 무능력자다. 이런 내게도 신박한 능력이 하나 있는데, 거짓말과 핑계로 내 자신을 방어하거나 합리화 하는 데 만큼은 천재라는 점이다. 지금 바로 보여줄 수도 있다.

이런 능력은 내가 특별히 찌질해서 길러진 게 아니다. 인간의 종특이라고나 할까. 창세기에서 저질러진 인간 최초의 죄를 떠올려 보라.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었지만, 그들의 진짜 잘못은 따로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장 -


“Do you~”라든가 “Are you~”처럼 의문사로 시작하지 않는 물음에는 예스 혹은 노가 들어간 대답을 해야한다. 먹었냐고 물었으면 기다, 아니다가 돌아오는 게 상식적이다. “‘당신이 만든 여자’가 줘서”라니.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는데?

솔직하지도 않았고, 구라를 선택할 배포도 없었다. 최악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진정 ‘핑계의 선조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 모양인 거다. 이 정도 시연으로 내 핑계력에 대한 증명은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진로도 요리조리 바꿨고, 대학원에서의 연구주제도 그랬고, ‘렌즈 교환형 카메라’의 렌즈도 ‘교환’ 해왔다. 이 글의 논점은 내가 가진 핑계력이 무언가를 끈덕지게 오래 하면 좋을 여러 일들을, 이를테면 투자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해내고 싶은 텐배거, 100배 수익 주식투자는 장기 성장기업을 찾아서 ‘이를 악물고’ 오래 보유해야 한다. 투자자는 기업을 고를 때나 인수를 결정할 때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미 사들인 주식을 보유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한다. 어떤 주식을 오늘 팔지 않는다는 건, 주식을 X라는 가격에 팔고 X라는 가격에 다시 사들이는 행위를 수수료 없이 하는 것과 똑같다.

따라서 어떤 기업에 대한 투자를 오래 유지하려면, 보유 중인 주식이 매수할 때처럼 오늘도, 내일도, 예뻐보여야 한다. 확신 없는 투자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주식을 내다팔 충분한 이유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아담의 후손이 내리는 의사결정은 언제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야 하는데 해법을 제시하기가 만만치 않다. 핑계 만들어내듯 얼른 또 잔머리를 굴려보자면, 투자자 개인의 의사결정을 보조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실험을 해보고자 한다.

현대 사회는 스스로 혼란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라는 것을 만든다. 권력을 위임하거나 회수할 합리적인 규칙에 동의하고, 사회 전체가 특정 개인의 독단이나 변덕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시스템의 기둥을 세워 서로를 보완하게 한다.

투자에도 이런 걸 적용해볼 수 있을까? 예컨대 매수든 매도든 포트폴리오 조정과 관련해서 특정한 조건을 요구하도록 할 수 있다. 투자자가 소속된 집단(가족이나 투자모임 등) 구성원의 일치된 동의를 얻어야 한다거나, 최초 편입으로부터 2년 이내에는 비중을 줄일 수 없도록 한다거나, 보유한 기업의 분기/반기 실적을 열람하지 못하게 하는 등등이다.

하지만 정말 잘 모르겠다. 하필이면 지금이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수정된 확신’이 오만일 수도 있음을 늘 유념해야 한다. 겸손해진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핑계의 선조’가 물려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와 (가치)투자자들의 겸손한 태도를 사랑한다. 그들은 수집한 사실들에 기반해 가설을 세우고, 자신이 틀릴 가능성과 쏟아부은 노력이 허사가 될 가능성과 혹시 무너져도 담담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인정한다.

그래서 내가 성장하는 동안 이 포스팅은 계속해서 수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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