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전략

장기투자의 필요성 - 블랙록의 인공지능에게 지지 않는 법

나그네_즈브즈 2021. 8. 13. 11:14

블랙록의 인공지능에게 지지 않는 법

 

펀드에 가입한다. 그게 싫다면,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의 변화 또는 모든 게 변해도 쇠락하지 않을 그 무언가에 장기투자해야 한다. 이게 오늘 포스팅이 내릴 결론이다.


2 - 4 - 6 - 8 - A - B - 14 - 16 - 18 - 20

 

이 숫자들을 보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A와 B가 각각 10, 12일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컴퓨터도 맞힐 수 있을까?

 

1.998 - 3.97 - 6.006 - 8.01 - A - B - 13.96 - 15.991 - 18.04 - 20.011

 

이렇게 숫자가 복잡해져도, A와 B는 약 10과 12에 가까운 어떤 값일 것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컴퓨터도 맞힐 수 있다. 아니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컴퓨터가 더 잘 해낼 수 있다. 값이 알려진 변수들과 값이 밝혀지지 않은 변수들 사이의 관계를 일차방정식으로 만들어 나열한 뒤에 그걸 풀어서 경향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머신러닝이라고 한다. 나열된 숫자 사이에서 패턴을 파악하고 우리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빈 칸을 채우게 되는 과정도 컴퓨터과학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머신러닝의 간단한 예시인 셈이다.

2015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IO(최고투자책임자)를 SK증권 이효석 팀장이 직접 만나 질문할 기회를 잡았다고 한다. 얼마나 묻고 싶은 게 많았을 것이며, 최고의 통찰을 얻기 위해 또 얼마나 그 속에서 질문을 고르고 골랐을 것인가. 이효석 팀장의 질문은 이랬다. "블랙록이 가장 신뢰하는 경제지표는 무엇입니까?"

ISM 제조업지수일까, 미국 장단기 금리차일까, 다른 무엇일까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뜻밖이었다. 블랙록은 자신들이 경제지표를 참고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블랙록이 신뢰하는 것은 '데이터'라고, 확보되는 빅데이터와 정교한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매 순간 가리키고 있는 가까운 미래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빨라야 한달 만에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은 가공과 해석이 필요할 뿐더러, 심지어 너무 느리다는 일침과 함께 말이다.

6년이 지난 지금 블랙록의 방식은 대체 얼마나 더 대단해졌을지, 뱅가드나 STT는 또 얼마나 대단할지, 상상하기 버겁다.

그때의 이효석 팀장과 지금의 나는 비슷한 교훈을 얻었다. 정면승부로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겠다. 생각해 본 해결책은 두 가지 길 뿐이었다. 블랙록을 고용해 그 시스템이 나를 위해 돈을 벌게 하거나, 컴퓨터가 예측하는 가까운 미래보다 훨씬 먼 미래를 내가 먼저 차지하거나. 작지만 그래도 경쟁자 입장이던 이효석 팀장으로선 첫 번째를 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보다 인간이 잘 할 수 있는 걸 고르기로 했다. 우리의 직관과 통찰력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더 먼 미래의 세계를 움직일 기업에 투자해서, 그 미래가 현실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게 아마 이효석 팀장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에 배팅하는 이유일 것이다.


또 한 가지 다른 길을 생각해 본다. 인공지능이 예측하는 방향의 반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미래에 시장환경이 어떻게 바뀔지를 뒤따라 맞히려 애쓰지 않고,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변수에 맘편히 투자하는 것이다. 워렌 버핏이 오랫동안 코카콜라에 투자하고 있는, 바로 그런 길이다.

말이 나왔으니 워렌 버핏의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 넘어가자.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젊은 시절의 일이다. 빌 게이츠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워렌 버핏을 만나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컴퓨터에 꽂힌 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젊은 사장은 '외교'에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 알래스카였나 어딘가에서, 세계 경제의 거물들이 모이는 자리가 마련됐고, 그곳에 워렌 버핏도 올 거라는 얘기가 있었다. 빌 게이츠도 전용 헬기를 타고 참가하는 자리였다.

마침내 만난 둘은 서로에게 흠뻑 빠졌다. 잠깐 머물 예정이던 빌 게이츠는 다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대기 중이던 헬기도 돌려보냈다. 오마하의 현인과 젊은 천재는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윽고 빌 게이츠는 워렌 버핏에게 회사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만든 윈도우즈라는 운영체계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하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그래? 그게 그렇게 대단하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자네는 그걸로 세상을 바꾸게. 나는 세상이 변해도 사라지지 않을 기업에 투자할 테니." 이게 워렌 버핏이 거절하는 방식이었나 보다.

블랙록의 인공지능을 골탕먹일 훌륭한 에피소드다. 세상이 변해도 사라지지 않을 기업에도 장기투자할 수 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눈 감고 10년 존버할 주식 TOP3'라는 영상을 보게 됐다. '럭셔리 브랜드 경영'이라는 책을 읽다가, 고가의 명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의 특징들이, 장기투자가 요구하는 바에도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 네 가지 조건들은 ▲높은 시장 점유율, ▲비(非) 혁신성, ▲가격 경쟁력, ▲높은 영업이익률 등이다.

배당주 투자의 안내자를 자처하는 소수몽키 유튜브 채널에서도, "가격을 인상한다는 건 점유율에 대한 자신감이다. 소비자들에게 욕 먹는 기업을 사라"고 조언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워렌 버핏이 코카콜라에 투자한 것과 비슷한 아이디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실은 이렇다. 가까운 미래를 맞히는 내기에서  AI 알고리즘을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산운용사를 고용하거나, 컴퓨터보다 더 멀리 내다보거나, 제자리에 그대로 멈춰 과거로 남는 선택지 뿐이다. 어느 것 하나 금방 이뤄지는 게 없다. 결국 이렇다. 투자는 내가 하지만,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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