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잘라낸 파 뿌리가 자라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끝 부분이 물에 담가진 파 뿌리는 위아래로 미친듯이 빠르게 자랐다. 금새 파가 됐다. 상추도 꽤 금방 자란다. 작물에 따라 수확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씨앗을 심었느냐 모종을 심었느냐에 따라서도 그렇다. 도라지는 훨씬 더 오래 걸린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농사기간 중에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어떤 벌레가 지나갔을까. 빗방울은 몇 개나 흙을 적셨을까. 농부의 발자국 소리는 얼만큼 달콤했을까. 어떤 냄새의 바람이 불어왔을까. 분명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건과 밤이 지났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농부는 어떤 마음을 하고서 기다림을 견뎠을까.
결국엔, 기어이, 끝끝내는 맺고야 말 확정된 결실을 상상했을까. 고라니가 내려오면 어쩌나 마음 졸였을까. 이웃집 할머니의 다른 작물을 질투했을까. 내년엔 뭘 심을지 고민했을까. 수확한 작물을 맛있게 씹어 삼킬 가족들의 무덤덤하고 당연한 행복을 그리며, 미리 두근거리고 감사했을까.
주식에 미래를 심어둔 내 마음도 다르지 않다. 뿌려놓은 미래가 다 자랄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어떤 종목은 며칠 사이에도 눈의 띄게 부쩍 자란 듯하고 다른 녀석은 한참을 더디게 영글어갈 것이다. 그동안 그걸 바라보는 마음에는 하루에도 열 번 넘게 해가 뜨고 비가 내리기를 거듭한다. 반가운 소식에 마음이 들떠서, 어떻게 지났는지도 몰랐던 하루도 있다. 수급이 꼬여 파랗게 물든 숫자 때문에 뭘 해도 기운이 나질 않는 때도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들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도 했다가, 나만 철석같이 믿고 있는 가족들 얼굴을 떠올려 희망을 다잡곤 했다.
그래도 회사는 기어이 성장하고야 말 것이다. 베란다에 심어 쌈 몇 장 싸먹자고 투자한 주식이 아니니까. 기다려야 한다. 약속되고 확정된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가는 거니까, 하염없는 기다림은 아니다. 주식은 농사짓는 거랑 참 비슷한 것 같다. 그러면 투자자의 마음도 농부의 마음을 닮았지 않을까?
비가 내린다. 땅이 젖는다. 오늘도 내 계좌에 특별한 일은 없다. 성공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떠올린다. 나 하나만 믿고 있을 아내의 눈빛을. 내 펀드에 인생을 건 사랑스러운 고객의 믿음을. 그리고 오늘도 한 톨 더 자라기 위해 소리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을 내 새끼들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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