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철학 멘탈관리

소비 vs 소유 : 쾌락이 가르는 쇼핑과 주식의 차이

나그네_즈브즈 2021. 6. 4. 20:39

우리 뇌에서 어느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주관하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하지만 오늘 그려갈 포스팅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뇌의 '그 부위'가 묘한 역설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우리는 쓸모있는 물건을 구매할 때에는, 사실은, 소유가 아니라 소비에서 쾌락을 느낀다. 필요에 의해서건 허영에 부합해서건 '사용할 물건'을 샀다면 그걸 소유하는 동안 즐거워야 옳을 것이다. 실제로는 지르는 순간을 포함하는 아주 짧은 시간에만 우리는 쾌락을 느낀다. 배설의 쾌감, 일종의 카타르시스랄까. 사들인 물건을 오래오래 요긴하게 사용하면서 행복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소유가 확정되면, 금방 시들해지기 일쑤다.

 

취미 생활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장비병이 그런 예다. 사진 취미에도 여러 가지 '템빨'이 있다. 카메라, 삼각대, 플래시, 각양각색의 렌즈들까지. 간절히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하면 시쳇말로 기분이 째진다. 괜히 촬영 일정을 만들기까지 한다. 거기까지다. 필요해서 샀으면, 사용할 때마다 행복해야 하는데 현실은 어쩐지 조금 다르다. 소비가 주는 쾌락이 흩어질 때 쯤이면, 또다른 장비 리뷰를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내 판타지와 새 제품의 스멜이 군데군데 벗겨진 장비는 이제 시장에서 '중고' 취급을 당하는 신세다. 

 

쓸 데 없는 물건은, 사놓고도 상당한 기간 애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일부러 표현을 약간 개뼉다귀처럼 하긴 했는데, 해명할 기회를 약간만 허락해 주자. 어떤 물건이 표면적으로는 쓸 데 없지만, 사실은 쓸모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물건들 안에 숨겨진 진짜 용도는 바로, 소유 그 자체를 즐기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보자.

 

응원하는 축구(야구나 농구여도 좋다)팀 A가 있다고 하자. 이 팀은 재작년에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했다. A팀의 찐팬인 우리도 물론 그 기념품을 구매했다. 겉보기에는, 입지도 않고 걸어두기만 할 무쓸모 티셔츠이기는 하다. 그러나 팀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는 한 이 천쪼가리는 소유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세월이 흐르고 추억이 쌓여갈수록 소중함은 더하다.

 

리그와 토너먼트에서의 성적이 훌륭하다면 팀과 기념 티셔츠의 인기는 올라가게 된다. 기념으로 제작한 티셔츠의 수량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팀의 인기가 곧 기념품의 수요, 즉 가치가 된다. 구단이 팬들에게 느끼는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할수록 더 그렇다. 다소 현실성 떨어지는 상상이겠으나 한발 더 나아가, 만약 구단이 기념 티셔츠를 구매한 팬들에게 팀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준다면 어떨까. 이 자그마한 기념품의 가격은 팀이 거두는 성과에 한층 밀접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다. 이적 시장을 보며 예상되는 팀의 성적을 티셔츠 가치에 '선반영' 하는 분석가들도 생겨날지 모를 일이다.

 

쓸 데 있는 물건은 소비가 곧 쾌락이다. 상징만 있는 무쓸모 상품은 소유하는 내내 행복을 준다.

 

지금까지 주저리주저리 떠든 걸 요약하려고 한다. 소비가 즐거운 게 있고, 소유가 행복한 게 다르다. 사용할 물건은 이상하게도, 카드 긁는 그 순간 즈음에나 즐겁다. 상징이나 있고 쓸 데라고는 없는 걸 사면, 희안하게도 소유 그 자체가 기쁨을 준다. 

 

주식도 상품인데,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둘 중 하나에라도 가깝다면 투자는 즐거운 일이다. 그건 저마다의 투자 스타일이 결정할 몫이라 하겠다. 소비한 상품의 가치는 떨어지는 방향만 남아있는 것과 달리 소유하는 것들의 가치는 깎여나가기도 하지만 올라가는 때도 있다는 점에서, 주식 투자는 소비보다 소유를 닮았다.

 

사실 저 스포츠 팀의 기념 티셔츠 이야기는 주식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빗대어 만들어 본 것이다. 주식은 어떤 기업을 상징한다. 경영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주주총회에 참여하는 개인 투자자가 거의 없다고 보면, 오직 기업을 상징하는 용도를 빼면 증권의 쓸모는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기업이 거두는 실적에 수요가 반응한다. 교과서적으로는, 배당이라는 주주환원이 걸려있어서 그렇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주식은 쓸모있는 물건은 아니다. 대신 그것이 연결하고 있는 상징물, 즉 회사에 대한 애정이 유지되는 동안 만큼은 주식도 보유 그 자체가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런 행복의 잔상이 다시 애사심(?)을 유지하고 키워줄 것이다. 투자의 여러 스승들이 일관되게 운명을 걸 주식, 직접 경영하고 싶은 기업, 결혼할 종목에 투자하라는 이야기에는 이런 뜻도 조금은 담겨있는 게 아닐까? 

 

물론 주식 투자가 안겨주는 최대의 쾌락은 수익실현에서 온다. 이 즐거움은 소비하는 상품이나 소유하는 기념품 그 어느 것에서도 누릴 수 없는 엄청난 기회다. 대신 아득히 멀리 있는 결승선에만 초점을 맞추면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 테니까.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기쁨의 소스를 다시 한 번 들춰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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