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철학 멘탈관리

부자, 되어야 하는 이유 vs.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나그네_즈브즈 2021. 6. 12. 20:59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논리정연하고 거부할 수 없는 정답이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부자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뭘까.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모두 틀렸다. 우리가 답을 고민해봐야 할 바른 질문은, 부자가 되고싶은 이유가 아닐까. 오늘 기록할 내용은 여기에 관한 상념이다.

세상에는 서로 다른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줄넘기를 잘 하는 사람, 공감 능력이 탁월한 사람,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사람, 서점 사장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 돈을 많이 번 사람. 이러한 분배는 우연히 이뤄진 것들이며, 그들은 차이를 존중하고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돈을 잘 버는 사람 한 명은 문득 '1등'이 되고 싶어졌다. 세상 모두가 나의 돈 버는 능력을 부러워하고 내게 조언을 듣고 싶어한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래서 찌질한 부자는 자신의 행복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돈을 잘 벌면 어떤 점이 특별히 좋다거나 돈이 많은 경우 누릴 수 있는 삶의 특권에 관해 떠들기 시작했다. 다른 부류의 여러 사람들에게 대출이라는 '샘플'을 경험하게 했다.

물론 찌질한 부자가 뭐라고 떠들건, 선택은 각자의 몫일 터였다. 그랬다면 모두는 각자가 걷고 있는 인생길 위의 고유한 1등으로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일부는 방향을 돌렸다. 돈 잘 버는 인생의 2등, 3등, 4등, 5등 주자로 나섰다.

이 전략에 사로잡힌 일부 사람들의 '능력'을 활용하자 마케팅은 더욱 정교해질 수 있었다. 미디어를 돈으로 장악해 수요를 부채질한다든지 교실의 아이들에게 욕망을 심어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나아가, 가난한 줄넘기 선수와 가난한 상담자와 가난한 탄산음료 애호가와 가난한 서점 사장 자녀의 불행을 들추는 경우도 있었다고 치자.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사회 전체의 모든 포상이 돈으로 이루어지도록 시스템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 시스템에서 이제 사람들의 구분은 단 두 종류로만 압축되어 버렸다. 노동자와 자본가다. 부자가 될 수 없는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이런 엄청난 마케팅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하는 이 거대한 힘을 무력화시키고, 행복했던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희망을 품었다.

여기까지 소개한 모든 내용은 노동자의 마케팅이다. 그들은 자신이 속속들이 알았던 적 없는 부자들의 구린내를 상상했다. 돈이 많으면 걱정도 많을 거야. 저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나쁜 짓도 서슴지 않았겠지. 세금은 제대로 냈겠어? 부잣집 형제들은 서로 우애도 나쁠걸? 가난해도 행복한 우리집 좀 보라지. 간디 같은 인류의 현인들은 또 어떻고! 돈 보다 소중한 게 얼마나 많은지 기억해야 해.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들은 돈의 노예야.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공부나 열심히 하자. 그러면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읭?)

넘쳐나는 광고들을 떠올린다면, 이 사회에는 "너도 부자가 되고 싶어해야 해"라는 부추김이 있다는 걸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는 해도 많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더 직접적인 노출을 경험하는 건, 부자 마케팅보다는 가난 마케팅이었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게 된다. 가난한 부모들을 통해서다.

행복이 부의 규모와 무관하다면 포장을 교묘하게 한 쪽은 노동자 계급이다.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는 명제가 틀렸고 동시에 돈이 없어야 행복하다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면. 그래서 행복과 돈이 독립적인 관념이 맞다면,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가난한 포지션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 둘 중 어느 쪽으로든 편향이 있다면 그건 자본가 대열에 합류하기를 원하는 방향보다는, 노동자로 남아있으려는 쪽일 가능성이 더 높다. 부자들이 원점에 선 우리를 유혹해 끌어 당긴다기보다, 가난한 부모가 아이들을 원점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붙잡아두고 있는 그림을 상상하게 된다.

어린 동생에게 금융과 자본주의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동생이 필요성을 되물을 걸 상상해봤더니 내 대답이 곤궁해졌다. 우리는 왜 부자가 되어야 할까. 글쎄. 그럼 왜 가난한 채로 살아야 할까. 이건 더 이상하잖아.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대결하고 있는 두 가지의 마케팅을 그려보고 정리하면서, 나는 문득 이 질문들이 모두 틀렸다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당사자의 의견에 달린 일이다. 그가 다른 방향의 인생길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잘 된 일일 것이다. 혹시 동생이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땐 이유가 있겠지. 부자, 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되고 싶은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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