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는 쉽다. 그러나 주식을 자주 사고팔면 성공하기가 쉽지는 않다. 오늘은 이 명제와 연결된 생각들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끄적여보려고 한다.
1. 애초에 주식은 빈번히 사고팔도록 설계된 투자전략이 아니다. 주식 투자자가 수익을 얻는 구조는 굉장히 고전적이다. 금 세공업자가 대출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그 기여자들과 공유하던 예금 이자 수익모델과 정확히 똑같다. 혹은 이와 비슷하게, 돈을 은행이 아닌 일반 기업이나 정부에 빌려주고 채권 금리수익을 얻는 모델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사업을 영위할 수 없는 투자자가, 간접 기여를 통해 순이익의 일부를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공유받는 것이다. 예금을 유지하거나 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이자 수익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증권을 보유하고 있으면 배당수익의 지속적인 발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주식투자의 태생적 근거는 거래가 아닌 보유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게 옳다.
2. 그런데 금리나 사업의 수익성이 바뀌면 그에 따라 채권이나 증권의 수요와 공급, 즉 가치가 달라진다. 주가가 이익의 함수인 건 그 때문이다. 시시각각 멋대로 주가를 흔드는 노이즈는, 그야말로 '노이즈'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타임스케일에서 움직임은 랜덤워크로 묘사된다. 그러나 주가의 추세가 절대 도망칠 수 없는 사업성의 변화는 그만의 시간이 따로 있다. 아무리 빨라도, 기업의 실적은 분기별로 발표된다. 회사의 활동무대가 되는 거시경제 환경은 최소 6개월 이상의 보폭을 보인다. 게다가, 기업이 투자할 사업분야를 파악하고 육성해서 그 열매를 따기까지의 시간은 더 긴 기다림을 요구한다.
3. 결국 주가는 이익을 완전히 떠날 수 없다. 회사가 장사를 잘하고, 그 덕에 마켓에서 쌉인싸가 된 내 증권을 팔아치우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요즘 대다수의 투자자는 이것만 생각하고 덤벼들지만, 매매는 주식투자의 조상들이 보기엔 일종의 파생적 전략이었던 셈이다. 대신 이렇게 하면 배당수익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 미래에 계속하여 발생할 배당수익의 합과, 가치가 상승한 증권의 매도차익을 비교해 투자자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이익을 현재 시점으로 가져와 확정짓는 행위는 분명 그만한 매력이 있다. 대신, 짊어져야 할 리스크도 없지는 않다. 언젠가 다시 또 그만큼 '쓸만한' 사업을 찾아낼 수 있을까. 스트레스일뿐만 아니라, 쉽지도 않아서다.
4. 그래, 쉽지는 않다. 세상에 회사는 많고, 미래의 불확실성도 오픈돼 있다. 그 숱한 경우의 수 속에서 괜찮은 주식을 찾아낼 확률이 100%일 수는, 당연히, 없다. 우리가 아주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있어서 그 확률이 80%나 된다고 치자. 이럴 때 주식을 세 번만 사고 팔아도, 항상 성공하기만 할 확률은 절반(51.2%)으로 뚝 떨어진다. 각각의 매수와 매도는 주사위 던지기와 같은 독립적 사건이기 때문에, 세 번의 0.8은 곱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두번의 손실이 얼마나 피하고 싶은 불쾌한 일인지는 강조해 설명한 적이 있었다.
5. 이렇게 탄탄한 인과를 품고 있어서, 통계도 그 결과를 증명한다. 미국의 모든 펀드수익률을 조사해보니, 연관이 의미있을 만큼 강했던 변수는 딱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바로 회전율이었다. 종목을 덜 자주 교체하는 펀드일수록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던 것이었다.
6. 그런데 나는, 자주 사고팔기 전략의 수익률이 높다고 해도 그닥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전업투자자들 중 대부분이 데이트레이더라는 점이 나는 안타깝다. 이분들은 투자자라기보다 노동자에 가깝다. 불량률 높은 제품을 떼다 파는 소매 자영업자와 다를 게 뭔가 싶다. 나는 쉬기 위해 주식 투자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함께할 시간'과 돈 중에서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 선물할 수 있다면 나는 시간을 선택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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