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사진철학 잡담

좋은 사진은, 세 번, 시간이 만듭니다

나그네_즈브즈 2020. 12. 22. 12:49

어제 기억나는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지고 있던 주식을 어제 조금 팔았습니다. 목표 수익률로 57%를 보고 있던 종목이었는데, 36% 수익률로도 멀미가 날 지경이어서 절반을 내놓았습니다. 10월 말에 샀는데 두 달 만에 또 손을 댄 거였습니다. 아내 앞에서는 늘 '부자 만들어줄 테니 걱정말라'며 허세를 부려도, 사실 저는 주식 거래를 잘 못합니다. 종목도 잘 고르고 위험관리에도 철저하지만 주식거래는 하수입니다. 농부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인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팀 선배와 티 타임 때 나눴던 대화입니다. 더러운 꼴 많은 이 직장을, 메마르고 따끔거리는 이 사회를, 고단한 가장 노릇을 '버틴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나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에게는 열에 아홉꼴로 '최선'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 수능시험을 거쳐야 했던 시절 때문에. 그 때를 기준으로 자신이 현재 무언가를 몇 % 열심히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있다. 그런데 버티고 견디는 능력에 있어서, 그 기준을 삼을 만한 경험은 저마다 다른 것 같다. 그런 기준이 있다면 어떤 상황을 '존버'할 때 도움이 될 텐데. 대강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뭘 진득이 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목표로 삼은 진로를 연례 행사처럼 바꿨고, 대학1학년 때 마음먹은 전공도 역시 한 차례, 바꿨습니다. 졸업 즈음에는 다른 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했는데, 4년 만에 모든 학위 과정을 접고 뛰어든 시민운동을 다시 2년 만에 그만뒀지요. 

 

그래서인지 갖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도 기다릴 줄 모릅니다. 버리고 싶어진 것도 오래 참지 않고 반드시 버리고야 맙니다.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은 스펙, 끊어내고 싶어진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주식을 사도 왕창 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겁니다. 매일 아침마다 끌려가듯 출근하고 있는 이 직장도 언제 또 그만둘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제가 정작 걱정하는 건 따로 있습니다. 취미로 찍고 있는 사진입니다. 당최 기다리지 못하는 이 '승질 머리'로는 좋은 사진을 얻기 어렵겠다는 직감이 점점 옵니다. 

 

사진은 시간이 만듭니다.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짧은 시간, 그 틈으로 들어온 빛이 기록됩니다. 이제 막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에게 사진 한 장이 얼마 만에 찍히냐고 물어보면 아마, "1/125초"라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부정할 수는 없는데, 제가 생각한 만큼하고는 다릅니다. 조금 더 배운 사람에게 물어보면 글쎄요, "30분" 정도를 이야기할까요?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필름이었다면 현상하고 인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어린 시절, 사진관이나 현상소 가게 유리에 '25분 완성', '17분 완성' 그런 문구들이 붙어있던 걸 본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것도 제 생각하고는 다릅니다.

 

찍게 되기까지, 찍으면서, 찍고 나서. 사진은 시간이 만든다.



이건 좋은 사진이라서가 아니라 시간을 들인 사진이라서 소개합니다. 제가 점심 시간에 찍은 우리 팀장님 사진입니다. 입사 전 가난한 청년이었을 때부터 공사장을 떠돌며 막일을 하셨는데, 그때부터 사귀게 된 무좀이라고 합니다. 저 발로 평생 가족들을 위해 일만 하신 팀장님은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점심만 드시면 잠이 쏟아진다"고 하십니다. 그를 처음 만난 날 인생 이야기를 다 들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내 쪽에서도 대뜸 사진기부터 들이밀지 않았습니다. 그 절제와 기다림은 팀장님과 제가 서로 지켜 준 예의였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파인더를 보고 셔터에 올린 손가락 근육을 수축하는 시간이 바로 '찍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결정적 순간'들은 결코 1/125초 만에 혹은 17분이나 25분 만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대자연이 그 내밀한 풍경을 허락하기까지의 시간, 거리사진가가 상상했던 장소와 빛과 구성이 한꺼번에 맞아 떨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한 인간의 수십 년 인생을 들여다보고 관계가 켜켜이 쌓여서 마침내는 그 마음의 문이 열리는 데까지 든 시간이 모두 사진 찍는 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몇 주나 몇 달, 몇 년이 걸릴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사진은, 찍어서 인화하는 그 즉시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록이라는 속성은 미래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이 되어야 기록물의 기능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 다시 사진을 꺼내볼 그날까지 긴 세월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어제 찍은 사진에 여운은 있을지 몰라도 진한 감동이 있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빚은 술처럼 또 뿌려둔 씨앗처럼, 좋은 사진도 익어가는 시간을 지나서야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좋은 사진은, 세 번, 시간이 만듭니다. 피사체와 촬영자 사이에 관계가 쌓이는 '과정'이 필요하고, 셔터가 작동하거나 현상약품이 반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기록이 숙성되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고백한 것처럼 저는 기다리는 데 젬병입니다. 이런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제가 사진을 한 10년 찍었느냐고요? 이제 겨우 1년 찍었습니다. 야트막한 경험으로 벌써부터 '좋은 사진' 나불대는 걸 보면 제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길을 걷다가 괜히 낡은 물건이나 오래된 동네를 갬성이랍시고 사진으로 찍습니다. 갬성은 개뿔. 관계를 만들고 숙성을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시간을 날로 먹고 사진을 흉내내려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자신은 압니다. 고백하고 결심하기 위해서 이 글을 적었습니다. '좋은 사진'은 시간이 만든다는 걸 체험하진 못했어도, 그렇기에 더더욱 이 고민만큼은 나의 진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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