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갇히지 마라. 사진은 사는 것 그 자체이다. 이미지로 된 언어다. 피사체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나의 마음을 찍는 것이다. 여과없이 드러내라. 숨지 말고 훔치지 말고, 정면 승부해라.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배운 것들이다. 육명심 선생님의 메시지는 돌려 말하는 법 없고 간결해서 좋다. 철학적인 설명은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겪었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있었던 예화와 함께 소개되어 이해하기 편안했다. 덕분에 나 같은 똥머리로도 사진에 대한 시야를 열 수 있는 교과서가 됐다. 위에 나열한 메시지들 모두가 '사진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제목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에 갇히지 마라, 사진은 사는 것 그 자체이다. 이 말은 아마도 후배 예술 사진가들을 타이르는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취미 사진가들 중에도 "이제는 '작품'도 찍고 개인전도 열고 싶다"는 데에까지 수준이 올라간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예술혼을 위해 다른 가치를 쉽게 희생시키는 사람들을 두고 작가병, 예술병이라는 말도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육명심 선생님에게 사진은 그보다 더 숭고한 것, 바로 살아가는 일이다. 삶을 예술의 형식으로 포장하는 데에 급급하기보다, 숨 쉬듯 똥 싸듯 자유롭게 사진 찍는 행위가 사진 그 자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삶 속에 사진이 있으니,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삶의 모습이 들어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가 현일영 선생님의 예를 들어 걸작주의에 향하는 일침은 우리 취미사진가들에게도 따끔하다. 그분은 '사진은 찍는 것에서 모든 만족이 완성된다'면서, 필름 한 롤의 촬영이 끝나는 그 즉시 카메라를 열어 필름을 줄줄 뽑아 빛 속에 다 태워버렸다고 한다. 나도 SD카드를 넣지 않고, 카메라에 필름을 넣지 않고 장면을 찾아다니고 셔터를 누르는 상상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걸작을 남기려고 사진 찍는 것,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지 못해 사진을 안 찍는 것, 남들 보기 좋으라고 셔터를 누르고 인화를 하는 모든 것은 육명심 선생님이 안타까워 하는 사진이다.
이 말은 사진이 곧 언어라는 비유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청각장애인이 수화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것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가인 자신은 정작 사진으로 그렇게 자신의 '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는 실망이었다. 그는 졸업전시를 담당했던 학생이 일기를 매일 쓴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그 학생에게 이제부터는 일기를 사진으로만 쓰드록 지도했다고 한다. 마이클 듀안이 사진으로 동화책을 쓰고 있다는 시도에서도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 말로서 살아간다. 모든 말을 다른 사람 듣기 좋으라고 소설가처럼 시인처럼 멋들어지게 하지 않는다. 내 기분 내키는 대로, 욕도 하고 감탄도 하며 말로서 살아간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호흡을 참을 수 있나? 똥이 마려울 때는 또 어떤가? 잠깐은 그럴 수 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르러 결국엔 참았던 걸 와르르 쏟아낼 때, 그 쾌감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사진도 그래서 삶이라고 하는가 보다.
내 삶 속에 나 자신이 들어있는 것처럼, 그러므로 사진 속에 담기는 것도 결국에는 내 모습이다. 눈에 보이기로는 하늘을 찍고 자동차를 찍고 사람을 찍었지만, 피사체들은 어쩔 수 없이 찍는 이의 마음을 비추어 보여주는 거울이나 그릇 역할만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내뱉는 말과 글 속에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감정이 담겨있는 것처럼. 전해지는 것은 내 마음 그 자체이고, 언어는 택배 상자의 역할만을 해내면 그만이다.
우리 일반 사람들은 그런 경지에 못 간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아직 반신반의 하고 있기는 하지만, 스마트폰을 꺼내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누구나 이 경지에 다다르지 않을 수는 없다. 사진이 언어라는 본질은 예술성이나 수준에 따라 적용되는 명제가 아니다. 변하지 않고 증명할 필요없는 공리라고,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 촬영자의 정서나 감정이 담기지 않을 수는 없다. 비록 그 자신은 깨닫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어차피, 언젠간, 사진에 드러나게 돼 있다. 그러니 참을 필요가 없다. 예술성 뒤에 숨을수록, 나의 욕구불만은 쌓여갈 것이다. 사진은 삶이니까. 내 하루를 온전히 내가 마주해야 하듯, 내 사진도 완전히 정면으로 반응해야 한다. 숨을 필요 없고 숨을 수 없다. 남에게 대리하고, 내 것이 그의 것인 듯 비켜서서 바라볼 수 없다. 피사체의 마음도 소매치기 하듯 훔칠 수 없다. 그림자처럼 뒤로 다가가 격발하면, 죽은 피사체만 데려 오게 된다. 정면 승부해서 생포해야 한다. 내 삶을 비춰 보여줄 피사체를 얻지 못하면 헛발질이다. 사진은 혼자 출 수 없는 춤이다. 그래서 사진을 두고 흔히, '시간의 예술'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유튜브 사진채널 '스튜디오 아우라'에서 소개를 받았다. 덕분에 나 같은 사람에게도 사진에 대한 개똥철학이 생겼다. 유튜버 아우라님은 서른을 넘어 대학의 사진학과에 입학했는데, 지금껏 자신이 거쳐 온 사진에 대한 모든 고민과 대답을 전부 이 책에서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절판되서 구하기 어려운 책. 시립도서관에서 다행히 찾아 읽을 수 있었다. 내돈내산 하고싶은 책. 육명심의 사진으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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