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사진철학 잡담

관계가 드러나는 사진? 촬영은 인터뷰... 피사체에 말을 걸자

나그네_즈브즈 2020. 12. 14. 10:21

주말에는 집에서 잘 안 나가게 된다. 정확히는, 이불 밖으로도 좀처럼 나가지를 않는다. 날씨도 차가워졌고, 코로나19의 확산세는 뜨거워졌고, 나는, 뚱뚱해 져간다(읭?). 그래도 이따금씩 슈퍼에라도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주말에는 일부러 큰 카메라를 가지고 나간다. 출퇴근 할 때는 담배갑만 한 필름카메라만 가지고 다니니, R3도 세상 구경 시켜주려고.

 

토요일에는 실컷 자고 일어나 아내와 산책을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 졌다. 실컷 잤다니까. 그치만 겨울이라 그런 걸로 해줘. 큰길 건너편 버스정류장이 보이길래, 멈춰섰다. 어두운 비탈길 위에 짝다리를 짚고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요즘 사진 찍기 참 좋다. 두 번째 정주행 하고 있는 드라마에 밤 씬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가슴이 말랑말랑하다.

 



"언제 가, 집에? 춥지?"

 

건너편에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지금 가고 있잖아요." 아내는 뜬금없는 내 혼잣말에 대답을 하고, 난 사람 없는 정류장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그냥 찍었어도 똑같은 사진이 찍혔을 걸 안다. 알지만, 괜히 미친 놈처럼 말을 건넸다.

 

앞으로 무언가를 찍을 땐 말을 걸어보려고 한다. 집에서 잠 잘 때 빼곤 언제나 카메라를 메고 있는데, 아내는 여전히 내가 카메라를 들면 행동이 바뀐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도 낯설어 하는데, 나를, 또 내 카메라를 덜 잘 아는 다른 누군들 오죽할까. 카메라를 들고, 말부터 걸어야겠다. 몇 마디라도 주고받은 다음엔 그나마, 그가 상대하는 것이 시커먼 외눈박이 기계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나라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까 해서다. 

 

그렇게 해서 끌어내는 피사체의 표정과 모습에는, 촬영자의 기분과 태도가 함께 배어있을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욕을 하는 사람과, 인사를 하는 사람에게 보낼 반응은 물론 다를 테니까 말이다. 내 사진이고 내 상상이니까 뭘 어떻게 찍은들 무슨 상관일까. 사람 말고 길냥이를 찍을 때에도 관계는 드러날 것이다. 자전거에게도 말을 걸겠다. 하릴없이 동네 골목길, 하다못해 굴러먹던 빗자루를 찍는대도 마음 속 인터뷰는 빼먹지 말아야지. 그 표정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된다.

 

그런 결심에서였다, 날 저문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인사를 건넨 것은. 나는 언제나 집에 가기를 염원한다. 아내가 기다리는 우리 집. 날이 저물면 돌아가는 발걸음은 더 분주해진다. 모르겠다. 우리는 누구나 엄마로부터 태어나지만 어쩌면 인생은, 저마다가 꿈꾸는 각각의 '집'을 향해 잃어버린 길을 헤매는 과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엔 걷고, 또 다른 날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면서. 텅 빈 정류장은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 침묵도 사랑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셔터 누르기 전에 꼭, 말은 걸어보기로 했다. 촬영은 어쩌면 인터뷰가 아닐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