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도 따본 적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께 귀동냥으로 들은 바로는, 운전대 잡으면 사람 성격이 나온다고 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동승자가 있다 해도 핸들과 페달에 따라 움직이는 자동차는 역시 운전자 개인의 공간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고스톱 치면 사람 성격 나온다"는 말도 들어본 것 같습니다. 돈 잃고 속 좋은 사람 없다는데, 그 안좋아진 속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성격에 따라 다른가 봅니다. 조용히 퇴장하는 사람, 돈을 빌려서라도 딸 때까지 치는 사람, 남 탓하는 사람, 분을 삭이지 못하는 사람 등등 다양하겠지요?
무엇무엇을 하면 성격이 나온다. 이 말이 괜히 참 서글픕니다. 타인들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온전한 자기 자신이 아닌가 봅니다. 점잖은 가면, 친절한 가면, 고상한 가면, 성실한 가면, 예쁘고 잘생긴 가면, 겸손한 가면, 쿨한 가면에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까지 한 겹 더 쓰고 살아갑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내랑 단둘이 마주하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어요 글쎄. 이 시원하고 상쾌하고 해방된 기분, 그게 바로 내 얼굴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가면의 보이지 않는 증거입니다.
여기까지 제 넋두리에 공감하신다면 잘 된 겁니다. 사진 찍기 위한 중요한 준비를 마친 것이라고 난 생각합니다. 이제는 사진을 찍읍시다. 세상 가장 편안한 내 자동차에 앉은 것처럼, 모든 걸 이해해주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처럼, 가면을 벗고 내 성격인지 성질머리인지를 마음껏 드러내기 위해 찍읍시다 사진을.
욕 하듯이 찍을 작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찍으려고 합니다. 비명 지르듯이 사진 찍고, 우주처럼 침묵하며 사진 찍을 겁니다. 카메라와 함께 있을 때만은 저도 숨 좀 쉬며 저답게 살고 싶습니다. 셔터를 겨누는 동안 초초초초집중해서요.
그렇게 집중해서 뭘 찍느냐고요? 찍고 싶은 걸 찍읍시다. 뭘 찍고 싶은지 모르겠지요? 다행입니다. 흥미 없다면 찍지 말자구요. 눈으로 보고 뷰파인더로 한번 더 보게 만드는 것, 그걸 골랐다는 것부터가 사진가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울을 떠올려 볼까요? 거울은 빛을 반사시키는 성질이 있잖아요. 그 빛을 타고 세상 무엇이든 비쳐볼 수 있습니다. 그 거울 앞에 카메라를 들고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된다면, 거기 무엇이 보일까요? 사진가인 내 모습이 비치겠지요.
이건 거울만 그런 게 아닙니다. 커피도, 가족의 얼굴도, 기가 막힌 경치도, 매일 출퇴근하며 보는 익숙한 골목도, 세상 그 무엇이나 다 빛을 나름대로 반사합니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꼭 거울처럼, 카메라를 든 나의 정서와 내면과 기분과 성격도 되받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피사체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거기에 비친 자기 자신을 찍게 됩니다. 가면 벗은 내 자아 말입니다.
서로 모르는 스승들이 같은 메시지를 말하는 것은 참 놀랍습니다. 꿀팁보다 더 좋은 개꿀팁이라는 증거여서, 땡 잡았다는 전율을 느낍니다. 그런 교훈 중 하나는, 사진 찍을 때 스스로에게 솔직하라는 겁니다. 요즘 읽고 있는 두 권의 사진 책에도 그런 글이 있었습니다. 거리사진을 찍는 임수민 작가도 자기 소개를 하면서 "착한 딸은 아니구요, 좋은 친구도 아니예요. 똑똑한 학생은 더 아니"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에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저는 A형입니다. 뼛속까지 소심 그 자체입니다.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받습니다. 그야말로 찐따지요. 남들 생각을 엄청 의식하고, 나름의 배려가 아주 지독한 습관입니다. 내 자신에게 100%였던 적이 없습니다. 이러니 사진도 속 시원히 못 찍습니다. 셔터 누를 때만큼은 온전히 이기적인 게 차라리 나은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청소할 때 눈치보며 요령 피우던 때처럼, 아내랑 같이 저녁 먹고 설거지 안하고 싶어 10분만 10분만 미루는 것처럼요.
가면을 쓰고 자신을 가린 채로는 사진이 안찍힙니다. 그 답답함을 모르고서는, 자유에 목마르지 않고서는, 나의 의식이 피사체에 부딪쳤다가 돌아오는 게 안되고 맙니다. 운전할 때처럼, 화투치다 돈 잃고 갈 때까지 간 고니처럼, 자기한테 만큼은 세상 제일 좋은 임수민 작가처럼, 청소 설거지 하기 싫어 딴청 피우는 저처럼, 가면 벗고 마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모든 사진은 피사체에 비친 영혼의 셀카이기 때문입니다. 크, 지렸다 이거.
기분 내키는 대로, 나 꼴리는 대로 사진 찍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찍고 싶을 때 먼저 허락을 구해 봅니다. 나의 기분에 충실해지니까 남의 자유도 그렇겠구나 싶은가 봅니다.
고백하건대, 예전에는 모르는 사람의 사진을 허락받지 않고 촬영했습니다. 정확히 말해,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허락, 받을 시도조차 못했습니다. 말했잖아요. 뼛속까지 소심하다니까요. 잘못인 건 아는데, 사진은 찍고 싶고, 말은 못 걸겠고, 갈등하고 조바심치다가 냅다 누르고 말았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는 물건을 허락받고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물어볼 수 있겠더라고요. 문방구 앞 겨우 오락기인데 설마 욕을 하겠어? 그런 배짱이 어떻게 나왔는지. 지금 봐도 기특합니다. 몇 번 그렇게 하니까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두 번이나 싫다고 하시면 저도 웃으며 기분 좋게 작별인사를 건넵니다. 가슴이 아직 두근거립니다. 그 사람의 기분을 망치지 않고 지켜주었다는 뿌듯함 때문입니다.
일요일 오후입니다. 지금 저는 아주 느긋하고, 제가 써내려 온 글에 혼자 만족해서 가슴이 약간 말랑해졌습니다. 도시남자가 된 것 같습니다. 카페에 앉아 오래 신발을 신고 있어 발이 좀 찝찝하고요. 둘이 앉아 갱상도 사투리가 시끄러운 다른 테이블의 아저씨가 약간, 싫습니다. 저러다 집에 가겠지요 뭐. 이렇게, 제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이것도 사진 찍는 연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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