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 11월도 다 지나간 주말입니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습니다. 저는 옷을 껴입고 아내와 브런치도 먹을 겸 데이트를 나왔습니다. 아내 전용 카메라인 a7r3를 메고서 말이죠. 지금은 카페에 눌러앉아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태블릿으로 뭘 들여다 보고, 저는 포스팅을 씁니다.
오늘은 유난히 날씨가 좋습니다. 사진 찍기엔 더없이 훌륭한 날입니다. 이렇게 쌀쌀한데 무슨 사진 타령이냐고요? 모르셨군요. 우리나라 겨울은 추운 날일 때일수록 고기압의 영향으로 하늘이 아주 맑습니다. 오늘도 구름 한 점 없이 파랗습니다.
바다를 푸르다 못해 새파랗게 찍으려면 이렇게 맑고 추운 겨울날이 좋습니다. 바다는 하늘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흐린 날에는 바다도 시커멓습니다. 하늘이 깨끗하고 파래야 바다도 그 빛깔을 담아 보여줍니다. 겨울에 하늘과 바다가 유난히 더 푸르른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고기압의 지배적인 영향이 첫 번째입니다.
둘째는, 태양의 고도가 평균적으로 더 낮기 때문입니다. HSL을 소개할 때 보셨던 것처럼, 광도가 너무 밝거나 어두우면 채도가 잘 살아나지 않습니다. 하늘의 광도를 좌우하는 태양의 위치가 극단적이어서는, 하늘의 채도를 온전히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밤에는 극단적으로 어둡지요? 한낮에는 극단적으로 밝습니다.
눈여겨 보세요. 태양 주위의 하늘에는 색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낮시간 해에서 가장 먼 쪽의 하늘을 관찰해 보면, 푸르름이 더 짙다는 걸 알 수 있죠. 겨울에는 해가 비스듬히 비치기 때문에 낮시간이라고 해도 반대쪽 하늘은 더 파랗습니다. 게다가 여름철 특유의 공기 중 수증기도 겨울에는 적습니다. 대기가 더 맑게 보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바다는 당연히 푸른 색을 더 잘 표현해 줍니다.
정리해 볼게요. 새파란 바다를 찍고 싶을 때는 △맑은 △겨울 △태양이 비스듬한 시간 △순광 방향으로 촬영하는 것을 추천해 봅니다. 어제 삼양 12mm 렌즈 소개하면서 올렸던 바다 사진도 겨울에 찍은 거예요. 물론 약간의 아쿠아 블루가 감도는 여름의 바다도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습니다. 제 뜻은, 차디찬 겨울에도 찍을 사진은 있다는 것이지요.
좀 용감히 말해서, 사진 찍기에 나쁜 날씨는 없다고 봅니다. 밁은 날에는 다들 사진을 찍습니다. 추운 날에는 바다가 예쁘고, 붕어빵이나 호떡이라든가 어묵 같은 게 왠지 더 따끈해 보입니다.
흐린 날에는 인물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지 않고 피부를 투명하리만큼 밝게 노출보정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망원 쪽의 화각을 쓰면 흐린 하늘이 함께 찍히는 걸 피할 수 있지요. 비 오는 날이라야 비를 찍을 수 있습니다. 맑은 날에는 우산을 쓴 사람도 없고 튀는 빛방울도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비 그친 직후의 젖은 공기는 그만의 진득한 컨트라스트를 선물해 줍니다. 미세먼지 가득한 날에는 일몰을 찍어보세요. 태양이 평소보다 크고 붉어서 멋있을 테니까요.
해 지기 3시간 전부터는 역사광으로 찍으면 뭐든지 다 금빛으로 물들어 아름답습니다. 해 넘어간 직후에는 하늘이 보라색, 군청색으로 물들어 야경을 찍기 좋지요. 이건 진짜 꿀팁입니다. 아쉽게도 밤이 깜깜해졌다면? 자동차 불빛 궤적을 찍으면 됩니다. 조리개를 아무리 조여도 셔터시간이 수 초에 이르기 때문에 초저녁에는 엄두를 못 내거든요. 인적이 완전히 끊긴 새벽 번화가에서 모델과 인물사진을 찍어봐도 재밌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시장에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신나고 두근거리는 촬영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취미사진을 못 찍을 이유로 날씨를 핑계대기는 어렵겠네요.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제가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준비됐나요? 자, 여러분도 카메라를 꺼내세요. 나가시기 전에 좋아요 누르는 것 잊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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