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사진철학 잡담

(사진피셜) 잘 쓴 글과 글씨의 차이, 사진 잘 찍는 법

나그네_즈브즈 2020. 11. 19. 10:54

저는 사진을 잘 찍고 싶습니다. 지금보다 더 잘 찍고 싶고, 좋은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런가요? '좋은 사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사진을 잘 찍는다와 좋은 사진을 찍는다는 같거나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데에는 여러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미술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림을 더 잘 그리기 위한 임시적 도구가 사진기의 조상이었다지요. 그래서 오히려 미술에 비유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미술이 사람들의 생활 안에 덜 친숙하기도 하고 말이죠. 또 역시,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조각을 잘 한다는 표현들에는 여전히 예술적 감각의 그 무언가가 내재해 있는 것 같다는 것도, 우리가 '사진을 잘 찍는다'에 담긴 여러 의미를 구분하는 데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대신 사진이 글과 닮아있는 점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조금은 더 흥미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선 글은 여러 목적으로 쓰이게 됩니다. 일기라는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기사나 보고서처럼 공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기록적 역할을 합니다. 한 줄에 불과한 시를 쓰기도 하고 더 긴 글로는 단편소설로 예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문에 맞춰 글을 써주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써 둔 글이 언젠가는 팔리는 글이 되는 일도 물론 있습니다. 교통표지판이나 광고물 속의 글은 메시지를 전달하구요, 엄마의 편지 한 장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사진도 그렇습니다. 블로그에 올라가는 맛집 사진의 개인적 기록과 신문에 실리는 공적 기록으로 사용됩니다. 한 장으로도 예술이 되고, 연작으로 묶이거나 전시회/사진집에 실린 여러 사진이 하나의 제목으로 묶인 작품이 됩니다. 주문을 받고 찍어주는 사진사가 있고, 찍어놨더니 팔려가는 스톡사진도 있구요. 보기만 해도 눈물이 또르륵 나는 평범한 사진도, 있게 마련입니다.

과정에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글을 쓰려면 소재에서 주제를 발견하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연필이나 만년필, 타자기 같은 도구가 있어야 하겠구요.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예외를 빼면, 보통은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퇴고를 하잖아요. 제목을 정하고 줄바꿈을 바꿔보고 적당한 자리에 그림을 넣어 가독성을 높이는 포장의 단계를 포함해서 말이죠.

사진의 주제도 피사체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걸 드러내야 하는 고민은 물론 사진가의 몫입니다. 사진기와 렌즈라는 도구가 역시 필요합니다. 최고의 빛과 앵글에서 사진을 찍기만 하는 걸로는 끝이 아닙니다. 노출과 대비 색조를 가다듬고 배열을 달리 해보고 제목도 붙여야 합니다.

사진은 그냥 '잘 찍는다'고 하지만, 글에서는 글을 잘 쓰는 것과 글씨를 잘 쓰는 것이 다릅니다. 보는 이가 '와 예쁘다! 여기 어디야? 뭘로 찍었어? 너 사진 잘 찍는다!' 할 때에는, 비유하자면, 그건 글씨를 잘 쓴 겁니다. 이것도 거저 되지 않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일단은 보기에 좋은 사진, 예쁜 사진 찍는 걸 두고 우리는 '사진 잘 찍는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씨와 글이 다른 것처럼 사진도, 예쁘게 찍는 것과 잘 찍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살면서 공문도 쓰고 보고서도 쓰고 문자메시지도 쓰고 포스팅도 씁니다. 글씨는 기가 막힙니다. 컴퓨터가 써주니까 점 하나 획 하나에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잘 쓴 글은 얼마나 될지 자신없습니다. 사진도 지금까지 예쁘게 찍는 걸 연습했습니다. 알맞은 렌즈를 고르고 빛을 읽고 구도의 균형을 잡고 선명하게 찍어 냅니다.

그런데 제 예쁜 사진은 거기서 끝입니다. 추억할 기록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고 돈도 안되고 메시지도 없으면서 감동은 더더욱 없습니다. 좋은 사진이 될 방법은 이렇게나 많은데, 그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서예가 그런 것처럼 예쁜 사진도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걸 일반적으로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 사진'은 또박또박 쓴 글씨, 그 정도입니다. 이것으로 아직 '문장'조차도 만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사진을 잘 찍고 싶습니다. 삐뚤빼뚤 날려 쓴 글씨로도 수 십 년 전 일기, 사랑을 담아 쓴 편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노랫말, 현장에서 핵심을 꿰둟어 낸 기사, 신박한 광고카피는 마음을 건드릴 수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제가 사진에 관해 블로그에 적어온 것들은 기껏해야 연필 쥐는 법이나 글씨 잘 쓰는 법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씨는 많이 써보기만 하면 늡니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데 필요한 연습은 두 가지입니다.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거죠 뭐. 쓰기만 한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그럼 사진도 길이 영 없는 것은 아니겠군요. 많은 유튜버들이 많이 찍어보라고 합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면 예쁜 사진은 찍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사진, 마음을 건드리는 사진을 찍으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네. 저도 그래서, 사진을 많이 봐야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