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사진철학 잡담

카메라는 사람의 눈과 정말 비슷할까? 차이점 비교분석

나그네_즈브즈 2020. 11. 9. 10:44

사진기의 구조를 설명할 때는 매번 사람의 눈이 비교대상으로 소환된다. 카메라가 사람의 눈을 모방해 발명됐는지는 모르겠다. 설명을 들어보면 비슷한 것 같기는 하다. 이제 사진을 둘러싼 광학에 대해 조금 이해하게 됐다고 치자. 그런 의미에서 사진기가 사람의 눈과 비슷한 점이 무엇인지, 혹시나 다른 점은 없는지, 재미삼아 한번 떠들어보기로 하자.

 

1. 닮은 점 : 렌즈로 빛을 굴절시켜 상을 맺게 하는 구조

 

사람의 눈에서는 수정체라는 말랑말랑한 렌즈가 빛을 굴절시킨다. 굴절된 빛은 먹물로 코팅된 어두운 암실을 지나 신경세포가 분포한 망막이라는 촬상면에 상을 맺는다. 들어오는 빛의 양은 홍채라는 조리개로 조절한다. 사실은 빛을 이용해 무엇을 보려면 이런 구조는 필수적이다. 초점이 맞는 상을 맺으려면, 렌즈 또는 거울로 이루어진 광학계와 센서가 필수적이다. 카메라도 렌즈(와 조리개)+센서의 필수요소로 구성된 시스템이다. 이런 태생적이고도 당연한 공통점 때문에, 사실은 카메라가 인체의 눈을 모방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상상은 여전히 가능하다.

 

 

2. 사소한 다른 점들

 

사진 vs. 동영상

 

전통적 카메라는 정지된 이미지를 기록하는 장치였다. 요즘은 거의, 동영상 촬영장치인데 사진도 찍히는 수준이 돼버렸지만.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다. 사람의 뇌가 두 눈을 활용해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된 화상은 기록할 수가 없다. 촬상면을 열었다 가렸다 하는 셔터 역할의 구조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최신 미러리스에만 있는 전자식 셔터랄까. 설정된 '전자식' 셔터스피드보다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면, 우리 뇌리에도 모션블러가 남는다.

 

사진은 찍을 수 없는 대신, 센서 성능이 말도 안되게 좋다. 8K 넘는 화질의 영상을 크롭이나 픽셀비닝 없이 촬영하면서, 발열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촬영하는 동안 충전도 가능한 배터리는, 용량이 엄청나다. 20-30시간은 거뜬히 유지되는데, 대신 완충하는 데에도 6~8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 다만 표면이 촉촉해야 작동하는 렌즈의 특성상 몇 초마다 렌즈캡을 닫았다 열어줘야 하므로 연속촬영 시간은 카메라에 비해 아주 불리한 스펙이다.

 

줌렌즈 vs. 단렌즈

 

카메라에서는 줌 렌즈라는 기술[?]이 가능하다. 렌즈 안에서 광학요소들을 움직여 초점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적적인 혁신이다. 사람의 눈은 단렌즈 기능밖에 하지 않는다. 사람이 제자리에서 줌을 당길 수 있는 사기캐였다면, 더 많은 동물들이 훨씬 더 빨리 사냥당해 멸종했을 것이다. (주몽 그까이꺼.. 올림픽에서 양궁과 사격이 사라졌을 듯)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리만의 고유한 초점거리를 갖고 있고, 발줌을 통해 사물이 적절한 크기로 보이는 거리를 유지할 줄 알며, 그 거리에서 오는 원근감이나 거리감각에 센서가 익숙해져 있다. 렌즈를 교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원 렌즈 vs. 투 렌즈

 

카메라에서의 렌즈는 하나 뿐이다. 예전에 뷰파인더용 렌즈가 별도로 달린 이안반사식(TLR, Twin Lens Reflex)도 있었다지만, 결국 촬상면으로 도달하는 빛은 하나의 렌즈만을 통과해 들어온다는 점에서, 카메라의 렌즈는 하나다. 주어진 필름/센서 규격에서, 초점거리에 따른 시야각이 수학적으로 단일하게 계산될 수 있다. 

 

인간의 시스템은 2렌즈 1센서다. 풀프레임 센서 기준으로 45~50mm 초점거리가 표준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물의 원근감이 우리가 보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해보면 우리는 이 화각에 답답함을 느낀다. 이유가 뭘까. 사람이 두 개의 렌즈를 사용하기 때문에 화각이 더 넓다. 따라서 단일렌즈의 초점거리와 화각을 서로 변환하는 수학공식이 여기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두 렌즈에서 발생하는 시야 오차를 동영상에서 실시간으로 보정한다. 이건 진짜 이미지 프로세서의 압승이다. 파노라마 병합이 동영상에서 쉬지 않고 실행되는데 발열이 전혀 없다니.

 

렌즈시프트 vs. 굴절률 변형

 

AF모터의 작동 방식도 다르다. 카메라 렌즈에서는 구동모터가 초점용 렌즈알을 앞뒤로 움직여서 초점을 맞춘다. 동물들 중에는 실제로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눈을 가진 녀석(악어)도 있지만, 사람의 눈은 렌즈알의 두께를 조절하는 근육을 이용해서 그 굴절률을 바꾸는 형태로 작동한다. 중요한 차이점은 아니긴 하지만.

 

균일 화소분포 vs. 집중형 신경분포

 

사각형의 필름과 센서에는, 감광원소(화학물질이나 픽셀 마이크로렌즈)들이 골고루 분포해 있다. 프레임의 모든 영역 구석구석을 같은 중요도로 기록한다. 반면에 사람의 센서에서는 RGB를 구분하는 신경들이 센서 중앙에 집적돼 있다. 따라서 해상력도 이미지서클의 중심부에서만 100% 작동하며, 시야의 가장자리에는 시력이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다보니 평소 생각한 걸 다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글로 정리하면서 보니, 사람은 렌즈가 상당히 구리지만 그걸 센서+이미지프로세서의 미친 능력으로 다 커버해버리는 것 같다. 혹시 내가 빠뜨린 게 있다면 댓글로 의견 공유해주시면 넘나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오늘의 잡담은 이걸로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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