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진 SNS의 무게중심 이동을 보면 텍스트와 이미지의 비중이 경향을 띠고 변화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처음에는 사용하기 어려웠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내 생각을 글로 쓰고, 그걸 돕기 위한 수단으로 이미지를 넣던 게 페이스북의 방식이었죠. 인스타그램에선 달랐습니다. 이곳은 이미지를 통해 소통하는 곳입니다. 텍스트는 후추 정도의 역할만을 할 뿐입니다.
게다가 컴퓨터로는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주 고객이지요. 이 IT 신인류들 사이에는 '갬성사진'이라는 말이 일반명사화 되어 있습니다. 디지털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 어려운 젊은이들이 오히려 '갬성'에 더 열광하고 목말라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네요.
그런데 사실 갬성사진은 그리 특별한 표현은 아닙니다. 아니 그보다, 너무 당연해서 그동안 누구도 입밖에 꺼내기를 쑥스러워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원래 감성을 담고 있는 기록이잖아요. 태생은 기록적인 매체 아니냐고 돌을 던지시면 저는 슬쩍 피하겠습니다. 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걸로 사냥실적을 기록하고 왕의 언행을 기록하고 기사를 작성하거나 일기를 쓸 수도 있지만, 소설과 시를 쓰기도 하니까요.
사진도 그렇습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추억의 찰나를 기가 막히게 잡아냈을 때, 해가 뜨고 지는 지극히 평범한 풍경을 기록한 사진을 보면서도 우리는 "히야~ 거 예술이다 예술!!" 하며 습관적 감탄사를 내뱉고 맙니다. 밎는 말입니다. 사진도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술이 뭐 별겁니까?
아니, 이 반응은 뭔가요? 여러분이 "그래 맞다, 예술이 별거냐!" 해주는, 그런 분위기를 함부로 예상한 제가 성급했습니까 ㅋㅋ 웃자고 던졌는데 숙연해지면 제가 뭐가 됩니까 이거. 하하하.
아카데미에서 과학을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감히 예술의 영역에서 비슷한 점을 추론하고자 합니다. 첨단의 지적유희, 인류의 세계관 확장에 돌격대 역할을 하는 연구자들의 과학이 있습니다. 질병을 정복하고 새로운 자원을 찾으며 미지의 항성을 꿈꾸죠. 그렇지만 말입니다.
잡히기야 봄에 많이 잡히지만 도다리는 여름에 더 맛이 좋다는 어부의 과학, 미세먼지 많은 날엔 노을이 예쁘다는 사진가의 과학, 김장 때를 기막히게 맞춰 배추가 자라게 하시는 어머니의 과학, 달이 왜 자꾸 우리를 따라오냐는 아이의 과학과, 그걸 대답 못하는 아빠의 과학도 있습니다.
예알못의 건방진 넘겨짚기이지만, 예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교과서에 실리는 시인의 대표작도 예술이고, 학교 복도에도 걸리지 못한 짝꿍의 엉뚱한 동시도 예술입니다. 엄마가 보기엔 "캬~ 예술이다!!" 의 그 예술이요.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했거나 오브제에 현대인의 고독을 투영한 사진은 물론 예술입니다. 짜장면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대도 나만 좋으면 예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저는 관종입니다. 포스팅을 쓰면 1분도 안돼 방문자를 확인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가 많지 않으면 낙담합니다. 더 자극적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을 찍으려고 더 좋은 카메라 스펙을 기웃거리기도 하고요. 그걸 가지고도 '작품'을 못 찍으면 어쩌나, 겁내기도 합니다.
미친 ㅋㅋㅋㅋ 완전 또라이 과대망상 중증이지요? 남의 춤에 내 장단을 맞추지 말아야지 해도, 제 마음이 마음대로 안되네요. 감동적인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는 걸 저는 알아요.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기가 꽂힌 걸 담아냅니다. 유행에 쓸려다니지 않고, 인기에 목말라 하지 않고요. 묵묵히 자기 좋은 걸 오래오래 해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이거 예술이네!" 하는 건 나중입니다. 그 감탄을세상에서 제일 먼저 했던 사람은 아마도 그 작가 자신이었을 겁니다.
정답과 스승들은 도처에 있습니다.
박막례 할머니가 그런 말씀 하셨다지요. 남한테 맞추지 말어. 하고 싶은 대로 해. 니 맘대로 북치고 장구치고 하다 보믄,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 추는 거여.
음악 천재 헨리 씨가 꼬마 음악천재들을 만나는 유튜브 채널을 보니까,. 헨리 씨가 방송 내내 하는 멘트는 두 종류가 전부입니다. "오 마이 갓. 네 연주 너무 멋져.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너 정말 , 👍 이건 거 같애. 어쩜 이렇게 잘해? 너가 너무 잘해가지고 삼촌 연주 틀렸어, 당황해서ㅋㅋ" 하는 감동. 그리고 함께 합주를 맞추며 항상 "좋아. 느낌대로. 오케이?"
오케이. 맞습니다. 윤스타 채널을 운영하시는 윤석주 작가님도 항상 강조하십니다. 사진기는 배우는 게 맞지만, 사진을 가르쳐 줄 사람은 없다고요. 사진기 포스팅은 쓰지만 사진 포스팅은 쓰지 못하는 핑계를 이걸로 삼아 봅니다. 사진은 예술이니까요. 갬성대로, 느낌대로, 오케이.
내가 감동하지 않은 내 작품은 그 누구에게도 예술일 수 없습니다. 너무나 지치고 배가 고팠고, 그래선지 그 짜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면, 짜장면 앞에서 찍은 인증샷도 나한테는 "예술"인 게 아닐까요. 라고, 혼자 생각 해봅니다.
제 가슴 속에는 감동이 말라버린 지 오랩니다. 제가 울고 웃는 유일한 순간들은 아내에게서만 옵니다. 실력에 과분한 좋은 카메라, 물론 살 겁니다. 그걸로 저는, 주제에 과분한, 제 마누라를 찍을 겁니다^^ (SNS 좋아요와 대중성은 자동 포기. 촬영 이외의 초상권 동의는 얻을 수 없기에) 크으... 참, 예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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