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잡담_ 방황도 여행이라면, 마음도 집으로 돌아갈 때

나그네_즈브즈 2020. 11. 17. 11:14

여행을 하다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낯선 풍경에서 드는 낯선 두근거림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거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길은, 익숙한 곳에서도 헤맬 수 있지요. 목적지는 있지만 갈 길을 모르는 것과, 갈 곳을 몰라 아는 길을 돌고 도는 것은 다르지만요. 이를테면 저는,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여행이라면 끝이 있을까요. 내 마음은 고단합니다.

 

어렸을 때, 내가 좋은 사람들 틈에서 언제까지나 지낼 줄 알았을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의 용도는, 마지막 순간에 '너덜너덜'해지기 위한 것이라고요. 아끼지 말고 겁내지 말고, 사람들이 가져다 쓰도록 얼마든지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는 걸 그 땐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 호의와 친절, 여유, 그런 것들을 가져다 씁니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자주, 더 거칠게, 함부로 쓴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그들이 발 닦고 똥 닦은 헝겊으로 나는 집에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의 젖은 손과 눈물을 또 닦습니다. 언젠가부터 그게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 상상대로 마음은 너덜너덜해 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란 모습은 낡은 손수건이었지, 이런 걸레짝이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변해갔습니다. 기쁜 일이 없었습니다. 위치를 모르는 탈출구만을 꿈꾸며 눈 뜨고 눈 감았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농담하고 사과하며, 훈련된 기계처럼 반응하면 그럭저럭 하루를 버티는 데엔 충분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당혹스러웠던 것은,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아내는 공감능력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여자가, 이런 남자와 함께 사는 게 얼마나 지옥일까요. 내 눈물을 아내가 몽땅 가져갔나 봅니다. 문제는, 슬퍼하는 배우자의 등을 토닥이는 손이, 흡사 로봇의 것인양 체온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어쩌다 닭똥같은 눈물을 흘려도 나는, 물론 유감이기는 하지만, 진정 슬프지 않습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는데, 내 병명을 무어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은 여행 중입니다. 목적지 없이, 익숙한 길을 서성입니다. 그저께였던가. 부터, 결이 조금은 달라졌는데요. 종종 눈시울이 붉어지는 증상이 생겼습니다. 미뤄둔 숙제처럼 조금씩, 그렇게 옵니다. 이유는 찾지 못했습니다. 비를 맞고 스며든 바람과 햇살에 매일 잠자던 씨앗이, 어느 날엔 아무 이유없이 싹을 틔우는 것처럼요. 어제는 마음 속으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보, 나는, 따뜻한 사람이었어? 아니. 그럼, 원래 이렇게 메마른 사람이었어? 아니. 그럼 난 누구였어? 당신은 그냥, 따뜻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었던' 게 아니라. 흥, 거짓말 잘하네.

 

방황도 여행이라면 끝이 있을까요. 마음도, 돌아갈 집이 있을까요? 슈퍼 공감러 아내의 마음이 온통 내 마음 속 지옥과 같다면,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길도 그제야 또렷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멀지 모르지만 행복해져 보려고 합니다. 긴 여행에 너무 오래 신은 양말과, 걸레가 된 손수건도 빨아 널구요. 그 햇살 아래 앉아 아내의 젖은 마음도 꼭꼭 짜서 펼칠 거구요. 인생의 솜털 한 올, 한 올이 마르며 돋아나는 간지러움에 웃고. 혹시 아내가 또 울면, 다음부턴 꼭 껴안은 내 어깨로 닦아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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