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카메라와 렌즈와 기타 장비

소니 디스타곤 T* 35mm f1.4 za 직거래 구입했어요

나그네_즈브즈 2020. 11. 14. 14:00

포항에서 성남까지 달려와 35mm 단렌즈를 직거래로 구입했습니다. 3기 장비 세팅이 이제 막 완료됐습니다. 10월 초부터 시작된 지루한 장터링도 드디어 빠이빠이네요. 지금은 터미널 근처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갈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을 죽이고 있습니다.

a7c와 z6의 1차전은 니콘의 승리였지요. af 기술에서의 아쉬움 때문에 다시 소니를 기웃거렸는데, 아내가 어느날 "그렇게 머리 쥐어뜯을 거면 차라리 z6 II를 사고 장비병을 끝내라" 하더라구요. 아니야 여보. 그럴 수는 없지 ㅋㅋㅋㅋ

가성비와 하드웨어의 z6냐 기술력과 센서의 a7r3냐에서 승리한 R3는 연장그립을 포함한 중고 매물을 골랐습니다. 정품 연장그립 GP-X1EM이 소니 공홈에서 15만원인데, 3만5천 컷의 중고인 걸 감안해도 183만원이면 만족스러운 거래였습니다. 실리콘 스킨은 이미 알리에서 한국으로 오는 중이었구요. 그럼 뭘 해. 렌즈 매물이 없는 걸.

제가 점찍은 소니×자이스의 35mm f1.4 렌즈는 화질을 위해 덩치와 가격을 포기한 녀석입니다. 자이스만의 T* 코팅이 아주 특별한 색감을 연출해주는 걸로 유명합니다. 디스타곤은 자이스의 렌즈 설계방식 중 하나입니다. 망원렌즈의 유리알 배열을 반대로 뒤집어 광각렌즈를 설계한 타입이라고 합니다. 대구경에서 올 수 있는 각종 수차를 긴 광축으로 커버했기 때문에, 컴팩트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 초점거리의 단렌즈는 전천후이기도 하면서 어느 용도로도 애매하기 쉽습니다. 같은 소니 E마운트에 f2.8 자이스, f1.8 소니, f1.4 시그마 라는 한방씩을 가진 경쟁자들이 있는데, 제가 몰랐던 이 렌즈의 최대 단점은 중고 매물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출고가는 200만원에서 천원 빠진 1,999,000원이었는데요. 완료된 거래를 보면 상태에 따라서는 75만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장터의 법칙이었을까. 하필이면 내가 구할 때 이만큼이나 씨가 마른다는 게, 차라리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애초에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던 것인지, 사용자들이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었는지. 어느 쪽이든 저로서는 속이 터질 노릇입니다.

체감으로는 장터 매복 기간이거의 보름에 이릅니다. 중고 거래 앱과 스르륵 클럽을 틈만 나면 스캔했는데도 말도 안되게 비싼 매물이거나, 광속으로 팔려나간 게시글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내가 다른 화각이나 줌렌즈를 사게 될 신의 뜻이 아닐까, 를 의심하게 될 정도였습니다. 신이시여 ㅜㅜ 제 R3가 책상 위에서 놀고 있다구욧!!!!

넘나 완벽해서 '소니의 실수'라는 별명이 붙은 이사금(sel24f14gm) 렌즈를 살까도 고민했었습니다. 넓은 화각이 필요할 땐 24mm를 사용하고 R3의 크롭 모드를 이용하면 실내외 스냅이나 인물을 찍기도 좋은 36mm 화각을 보여주니까요. 이사금이 다소 더 비싸다는 점, 35mm 화각에서의 배경흐림 능력에서는 밀린다는 점에서 (기다림은 고통스럽지만)그냥 기존의 선택을 고집하기로 했습니다.

원렌즈의 대장이라는 소니 이사백오(24-105mm f4 oss, sel24105f4g)도 매력있는 옵션이긴 했습니다. 이제 줌렌즈를 써도 되는 수준이라고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고 ㅋㅋ 준망원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광각~표준에서 F4는 어딘지 아쉬울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은 아웃포커싱이 좋은가 봅니다. 망원은 나중에 135mm f1.8 GM 가격이 떨어지면 사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내가 이걸 알아야 할 텐데.

그런데!! 뜨든!! 금요일이던 어제 장터 앱에 걸어둔 키워드 알람이 울렸습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대박이었습니다. 상태 좋은, B+W필터 포함, 80만 원. 이것만 보고 1초만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올리신 분도 아마 놀라셨을 겁니다. 성남 직거래. 택배 불가. 이런. 렌즈님이 성남에 계시다면, 정 그러시면 제가 가야지요. 토요일에 시간 되시냐고 물어봤더니 좋으시답니다. 아침 7시10분 버스표를 예매했습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깜깜한 시각에, 아내 깨지않게 살금살금 터미널을 향해 이동했습니다.

4시간을 달린 버스 안에서, 렌즈 없는 빈 R3를 켜 미리 세팅을 맞춰둡니다. 터미널에서 판매자분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직거래는 천안에서 오신 분이 제일 멀었었는데, 제가 이제 1등이라네요. 렌즈 외관을 보고, 카메라에 마운트해서 적당히 조인 조리개로 테스트 사진을 찍어봅니다.해외 리뷰어에 따르면 개체마다 화질이 조금 다르고, 프레임 좌우의 선예도가 다른 이슈가 있다고 합니다.

테스트로 찍긴 했는데, 처음 들어본 제 R3 셔터음에 일단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찍은 사진을 확대하는 법을 몰라 또 당황. "출사를 안나간다, 집에서 애기만 찍었다, 머리가 굵어져 이제 안찍힐려고 하니 카메라도 다 팔까 고민된다" 판매자님의 설명을 듣는둥 마는둥 렘즈에 시선을 온통 빼앗긴 채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제 손은 입금을 했더군요. 와하핫 이제 내 렘즈다 너는.

집에 있는 내무부 장관께 전화로 보고를 합니다. 통화 중에, 떠났던 판매자님이 스벅 커피를 주시네요. 눈인사만 드렸는데 쿨하게 사라지시는 멋진 분. 눈에 띄는 아무 국밥 집에 들어가 허기를 오지게 달래고, 몇 블럭 걸어서 텅 빈 카페에 들어왔습니다. 포스팅 소재도 점점 허약해지고 있었는데, 장비 자랑이나 할 겸 해서입니다.




아무리 세팅을 했다지만, 가지고 놀며 익숙해지려면 한 달은 족히 필요할 듯합니다. 이것저것 담아본 뒤엔 리뷰(...는 너무 거창하고) 사용후기 정도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시간만 더 놀고 버스타러 갑니다. 월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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