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촬영과 보정 연구

투명하게 빛나는 필름 색감의 비밀, 명부 관용도와 DR

나그네_즈브즈 2020. 11. 11. 11:19

필름사진과 디지털사진은 매력이 서로 다르다. 누가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필름 안에서도 흑백과 컬러가 다르고, 네거티브와 포지티브가 역시, 서로 다르다. 그런데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그걸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오늘은 보정관용도와 촬영팁에 대해서만 살펴보려고 한다. 

 

 

 

디지털센서 vs 필름 명부와 암부 다이나믹레인지 관련,,, 주저리 주저리,,

오래전 첨으로 렌즈교환형 캐논10D와 300D를 쓸데 너무 좋았습니다.필름컷수 신경 안쓰면서

www.slrclub.com

 

발단은 스르륵(SLR CLUB)에 게재된 글 하나였다. 이 글의 요지는, 필름으로 찍은 사진에서는 중간 톤에서부터 가장 밝은 영역까지의 색, 빛, 디테일이 투명하면서도 영롱한데 디지털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였다. 빛이, 그야말로 '빛난다'는 느낌은 나도 뭘 말하는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해외 유튜버의 비교 테스트 영상도 공유돼 있다. 한낮에 하얀 드레스 입은 여성을 모델로 해서, 디지털카메라와 필름카메라로 촬영된 결과를 비교하는 내용이다. 역시 빛을 받은 하얀 드레스의 미묘한 디테일이, 최고의 센서라는 D850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게시물의 아래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정주행하다가, 놀라운 통찰을 발견하게 됐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네거티브필름은 DR이 밝은 영역으로 치우쳐 있고 디지털의 DR은 어두운 영역으로 치우쳐 있다는 게 나의 추측이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로는 빛이 부족한 환경에서의 촬영이 어울린다. 하이라이트가 날아가지 않게 측광해서 찍고, 보정할 때 암부를 들어올려야 한다. 네거티브 필름은 반대다. 사진에 밝은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 때 유리하고, 암부가 뭉개지지 않을 정도로 밝게 찍은 뒤 후반작업 때 명부를 낮춰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촬상면의 DR은 두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촬영할 때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이 있다. 거론되는 얘기로는, 이게 약 7스탑 정도 될 거라고 한다. 그리고 현상, 인화(또는 스캔)할 때라든가 디지털 보정에서 계조가 표현되지 않은 명부/암부의 일부분을 살려낼 수 있다. 이걸 보정 관용도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리가 12스탑이네 14스탑이네 하는 DR은 기본적으로 계조 표현이 가능한 7스탑의 영역과 일부 복원 가능한 보정관용도를 합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DR은 절대적 값이 아니라 '폭'으로 정의된 개념이었다는 걸 기억하자. 새까만 데서부터든 18% 그레이에서부터든 1 EV의 폭은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DR이 14스탑이라는 사실만으로는 그 계조 표현의 영역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필름과 디지털은 다르다. 엄밀히 말해, 네거티브와 포지티브가 서로 다르다.

 

 

네거티브필름으로는 밝게 찍어서 하이라이트의 관용도를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 포지티브로 찍히는 디지털에서는 반대.

 

 

위의 그림은 내가 이해한 걸 개념적으로만 나타낸 방식이다. 촬영하는 순간 적용되는 기본 DR구간이 동일하더라도, 전체 DR의 폭이 밝은 쪽이나 어두운 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자유도는 있다. 나는, 네거티브 필름은 암부 보정 관용도가 작은 대신 명부 보정 관용도가 크다고 믿는다. 반대로 포지티브 촬영물에서는 명부 관용도를 양보한 대신 암부에서의 DR을 넓게 가져갔다고 이해하는 중이다. 

 

앞서 소개한 글에서, Azure 님의 댓글을 보면 "디지털은 포지티브다"는 말이 있다. 하이라이트의 보정 관용도가 좋아 빛을 받은 자리에서 디테일 표현이 우수한 것은, 네거티브 촬영물의 특징이라고 한다. 디지털은 그렇게 보면, 네거티브로 찍히지 않고 눈으로 본 대로 나오기 때문에 네거티브 특성과는 정 반대라는 얘기다. 알겠는데, 그건 왜 그럴까.

 

촬영되고 현상된 네거티브 필름은 마스크(모양자) 역할을 한다. 이것 그대로는 사진일 수 없다. 이 마스크를 통해 하얀 인화지를 빛으로 태워야 한다. 밝은 영역은 시커먼 필름을 시커멓게 놔둔다. 차단 벽이 두꺼운 그대로의 필름으로는 인화지에 쏘는 빛이 가로막혀서, 인화지가 덜 타게 되고, 하얗게 남는다. 어두운 영역은 반대다. 시커멓던 필름은 어두울수록 화학물질이 떨어져 나가 차단 막이 투명해지고, 심하면 구멍이 뚫린다. 이 마스크를 대고 인화지를 비추면, 투명해진 구멍을 통과한 빛이 인화지를 시커멓게 태우기가 더 쉬워진다. 

 

디지털에서도 너무 밝은 하이라이트는 '화이트 홀'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런 부분은 데이터가 아예 기록되지 않는, 그야말로 구멍이 된다. 필름에서도 감광유체가 모두 날아간 '구멍'이 생기면 그 자리는(사진에서의 어두운 영역) 복원이 안된다. 어떻게든 구멍이 완전하게 뚫리는 걸 막아야 하는데, 그게 포지티브(슬라이드) 필름이나 디지털에서는 밝은 영역이고 네거티브 필름에서는 어두운 영역이라는 것만이 다르다. 

 

그러니 보다 옳은 말은, '포지티브(디지털)는 명부를 살리기 어렵고 네거티브는 암부를 살리기 어렵다' 가 될 것이다. 이건 극복해야 하는 한계라기보다 활용하기 좋은 특징이라고 보면 된다. 어두울 때나 빛이 부족한 실내에서라면 차라리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자. 구멍이 나기 쉬운 하이라이트가 너무 밝아지지 않게 촬영하고, 보정할 때 암부 복원력을 활용하면 된다. 네거티브 필름은 야외라든가 빛이 충분한 실내에서 찍으면 더 예쁘다. 어두운 부분이 필름에 구멍을 뚫지 않도록 밝게 측광해 촬영하면서, 현상/스캔(또는 인화) 과정에서 명부의 관용도를 활용해 투명하게 빛나는 특유의 색감을 얻어내면 된다. 

 

 

어두운 필름사진의 전형적인 똥망 사례. 필름의 암부가 지나치게 투명해지면 복원이 어렵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나야 이런 걸 분석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변태 사진쟁이라지만, 사진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영역은 다양하고, 취미로 찍는데 굳이 이해까지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지적 유희를 공유하며 함께 시간때워 주셔서 나야 감사할 따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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