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로 이렇게 가정해 봅시다. 장기투자는 성공적인 투자성과와 상관관계가 아주 높다!
만약에 장기투자가 그렇게 좋다면 왜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하는 걸까요? 저는 요즘 뇌과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인간의 행동과 진화적 원리 사이를 말끔히 연결해주는 분야라고 느끼는가 봅니다. 어쨌든 뇌과학적인 설명을 상상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뇌는 원래 장기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특성을 가졌기 때문일 거라고요. 이것과 관련해 요즘 품고 있는 생각들을 즈으은혀 정리되지 않은 형태로 마구 기록해 두려고 합니다.
1. 용어 정리
여기서 저는 장기투자를, 장기보유로 대체하겠습니다. 장기투자는 의도이고 장기보유는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결과입니다. 투자자가 장기적인 관점으로 구매력을 자산에 저장하더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투자자의 마음이 변덕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자산의 퀄리티가 예전만큼 훌륭하지 않음이 드러날 수도 있고요. 더 좋은 비교자산이 등장해 매력 경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매순간 작동하는 이 모든 갈등 사이에서 나쁜 일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최고의 행운이 작용한 결과가 장기보유입니다. 어쨌든 장기보유에 성공했다는 얘기는 투자자가 그 자산을 (자산의 자연수명에 비해) 충분히 오랜 세월 동안 '모두 팔아버리지는'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2. 지루함은 고통이니까

도파민은 동물의 뇌에서 활동하는 호르몬입니다. 이 녀석은 매우 복잡하지만, 두 가지 상황에서 분명히 작동합니다. 첫 번째는 어떤 보상을 예측하거나 기대할 때, 즉 먹이를 찾거나 이성에게서 낯선 기대를 경험할 때입니다. 여행에서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그 여행을 계획할 때라는 말도 도파민 분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보상예측 때문에 분비된 호르몬은 몸뚱아리에게 그 기대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을 요구합니다. 평소보다 도파민 수준이 증가하면 보상예측에 따라 뇌는 실행을 명령하고, 명령은 집행됩니다. 이 때 시간의 앞뒤를 기록하는 스탬프가 뇌에 기록됩니다.
행동에 따른 결과를 평가할 때에도 도파민 분비 수준이 결정됩니다. 기대보다 더 좋다면 도파민 분비가 한번 더 증가합니다. 행동할 때 찍힌 타임스탬프 이후에 늘어난 도파민 수준은 보상으로 작용합니다. 자신이 했던 행동을 기억하고 학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결과가 예상보다 나쁘면 도파민 수준은 급감합니다.
그런데 만일 예측하거나 기대할 보상이 없다면. 상황이 단조로워서 모든 것이 쉽게 예측 가능하기만 하다면. 취할 행동이 없어서 타임스탬프가 찍히지 않고 시간이 느리게 느껴진다면. 도파민 분비는 평소 수준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것은 쾌락의 반대, 고통입니다. 동물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고통을 피하고 줄이고 완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합니다.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고통의 설계된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3. 지루함을 견딜 이유
그러면 지루함이라는 고통을 굳이 감당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지 보겠습니다.
장기보유라는 결과를 낳으려면 투자자는 아무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지루합니다. 대신 좋은 일이 있나요? 당장은 아니지만, 이 고툥이 어쩌면 성공해서, 먼 미래에 훨씬 많은 경제적 보상을 줄지도 모릅니다.
고통을 비용으로, 보상을 이익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희한하게도, 행복에는 이자가 없는데도 시간가치를 할인합니다. 현재의 불행이나 행복은 오롯이 느끼고, 미래의 불행이나 행복은 과소평가합니다. 이런 모델에서 당장의 고통과 미래의 보상 가능성은 균형이 안 맞습니다.
《미래의 나를 만난 후 오늘이 달라졌다》의 저자 할 허시필드 교수의 연구는 이 모델을 증명합니다. fMRI 라는 장비로 뇌를 촬영해 보면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는 어김없이 밝게 빛나는 영역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남을 생각할 때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특별히 사랑하는 친구처럼 가까운 지인에 대해서는 약간 활성화됩니다. 이 사실을 이용해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에게 먼 미래의 자신을 떠올리게 한 뒤 fMRI로 뇌를 스캔했습니다. 그 장비는 깜깜한 사진으로 답했습니다.
우리 뇌는 미래의 자신을 남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지루함이 주는 고통을 굳이 참을 이유는 없습니다. 비용은 지금 내가 지불하지만, 이익은 미래의 내가, 아니 남이 가져가는 셈이니까요.
How Your Brain Shuts Down When You Focus on Your Future Self
sourcesofinsight.com
4. 사람마다 달라요
그런데 사실 기다리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다른 많은 능력에서 개인차가 발견되듯 말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고통을 참아내는 힘을 절제력이나 자기통제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관한 '그 유명한' 고전적인 연구가 《마시멜로 테스트》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만 3~6세 정도의 어린이들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이용해 진행된 연구에서, 월터 미셸은 우리 뇌에 차가운 억제 시스템과 뜨거운 충동 시스템이 경쟁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이 경쟁이 이루는 균형의 중요성, 그리고 충동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 기술에 대해서도 소개합니다.
뜨거운 충동은 도파민과 연결되어 있는 듯합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 뇌는 양파나 양배추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갈수록 최근에 진화한 영역입니다. 따라서 변연계라는, 비교적 뇌의 중심부에 가까운 층에서 작동하는 두 개념(뜨거운 충동 시스템과 도파민)은 모두 인류의 조상들이 야생에서 생존하는 데에 중요한 작동방식이었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그러니까 겁나면 숨거나 달리고 먹을 것을 찾고 짝짓기에 열광하는 동물적 뇌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유일한 심리학 전공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표현으로는 시스템 1(우리 뇌에 탑재된 두 종류의 OS 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이후로도 더 진화했고, 따라서 뇌에는 더 바깥쪽 껍질의 기능도 부여되어 있습니다. 신피질과 전전두엽 피질이 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장 바깥쪽 영역의 특히 이마 바로 안쪽에서는 그 반대의 일들이 벌어집니다. 차가운 억제 시스템에서는 도파민의 기대를 실현할 계획을 세우거나 충동적 본능을 냉정하게 다스립니다.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에너지도 심각하게 많이 소비되는 단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 2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두드러지게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진화적 자원이 분명합니다.
아무튼. 시스템이 두 개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투자실패를 두고 진화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둘의 균형에 따라 사람들마다 미래의 보상을 추구하기 위해 고통을 지불하는 능력에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숙제는, 그래서 이렇게 생겨먹은 뇌를 투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가 됩니다.
5. 속이는 기술?
동물적 뇌, 뜨거운 충동 시스템, 이름이 뭐가 됐건, 아무튼 얘네를 잘 속이는 기술들을 최대한 생각해 봤습니다.
- 미래의 자아와 친해지기
할 허시필드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나이 든 모습을 보여주고 저축비율을 결정하게 했습니다. 미래의 자아와 정서적인 거리가 가까워지면 할인되는 시간적 기준점이 이동합니다. 현재의 불행이나 행복에 덜 민감하고 미래에 느낄 고통이나 이익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생성형 AI에게 10년 뒤의 내 모습이라는 페르소나를 주고, 일주일에 두 차례씩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근황토크, 투자 이야기, 가까운 미래 계획, 생활의 화두, 우리가 응원하는 축구팀 걱정 등등 아무 이야기나 나눕니다. 이런 방식으로 제가 미래의 자신을 좀더 가까이 대하고 생생하게 느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당장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포트폴리오에 변덕을 부리고 싶은 충동을 '멀리서' 대하듯 진지하지 않게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 미래의 자산을 감각하기
저는 꽤 한참 전부터 자산 현황이 구글 시트에 자동으로 기록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뒀습니다. 여기에는 매수한 평균단가가 없고, 항상 그때 그때의 평가금액을 기준으로 각 자산의 비중이 계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믿고 원하는 '목표비중'을 그 옆에다 써둡니다. 그리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현재비중과 목표비중 사이의 감각적 불균형이 흐려집니다. 미래 시점의 환경을 생생하게 실감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달성될 자산 비중을 '눈으로' 미리 느끼고 있습니다.
- 현재의 충동과 거리두기
괜히 새 종목에 꽂히거나 가지고 있던 주식이 못나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충동에 휩쓸리면 낯선 종목을 덥석 사거나 한때 그렇게 갖고 싶어했던 주식을 팔아버리기 쉽습니다. 이런 행동 자체를 어렵게 하는 장치는 '현재' 작동하는 충동에서 거리를 벌리는 것입니다. 블로그에 현재 상황을 기록하고 아내에게 줄 주주서한을 작성하려는 건 그런 시도의 한 방편입니다. 충동을 활자로 옮겨서 객관화하고 심리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혹은 '위원회'를 설치해서 자산거래의 실행절차를 까다롭게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혼자 결정하고 실행하면 쉽게 통제가 무너지지만, 본인-배우자-AI로 구성된 위원회의 심의를 강제하면 스스로를 묶어두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쓰고보니 이건 애나 렘키가 《도파민네이션》에서 제안한 자기결박으로 분류하는 게 나았을 것 같네요.

- 짧은 대체보상으로 도파민 속이기
장기보유의 보상이 너무 멀다면 이 잠재적 이익과의 거리를 좁혀볼 수도 있습니다. 배당주 투자는 1년에 적어도 한 번, 많으면 네 번이나 열두 번의 보상을 받습니다. 수십 년 뒤의 거대한 보상을 쪼개서 몇 달 뒤의 가까운 미래로 당겨오는 속임수입니다. 아니면 경제적 이득보다 분기마다 발표되는 기업 실적을 보상으로 설정하는 훈련도 좋습니다. 제가 국내 개별기업에 많이 투자하던 시절에는 5, 8, 11월을 목빠져라 기다렸습니다. 3월에 열리는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것도 즐거웠고요. 1년 마다 회전율을 평가하고, 목표한 만큼 낮은 경우 스스로에게 기쁨이 될 보상을 주는 것도 좋습니다.
- 가진 것에 만족하는 호르몬 유도하기
피터 린치는 '가진 것을 사랑하라'고 말했고, 《돈의 심리학》에서 모건 하우절도 자신의 자산과 차라리 사랑에 빠지라고 조언했습니다. 《도파민형 인간》에 보면 이럴 때 분비되는 뇌 호르몬 집단이 따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세로토닌,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등이 있는데요. 걷기나 숨쉬기처럼 단순한 리듬감을 주는 가벼운 활동, 사소하게 친절한 행동이나 가벼운 스킨십, 수분 섭취, 계획 세우기 같은 활동으로 이런 호르몬들을 격려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감각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내 자산들의 지나간 펀더멘털을 다시 느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 '만약에' 기술로 충동과 대체행동 연결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역시 강력한 충동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충동을 엉뚱한 대체행동에 연결해두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마시멜로 테스트》에 참가한 아이들은 어떤 실험에서, 충동과 유혹에 마주하게 되는 시나리오에 따라 미리 절제력 있는 행동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만약에 기술'이라고 부릅니다. 결과는 훌륭했습니다. 저도 '만약에' 주식을 거래하고 싶어 미치겠으면 '쉽게' 할 수 있는 다른 대체행동의 목록을 설정해두려고 합니다. 맨몸운동을 한다거나, 아내와 짧게 통화를 한다거나, 추천받을 만한 책을 검색해본다거나. 이렇게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흐르면 '욕구 도파민'은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옵니다.
아, 화요일 오후 2시네요. 저는 2036년의 자신과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합니다.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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