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카메라와 렌즈와 기타 장비

서브카메라로 캐논 G1X mark III를 선택한 이유

나그네_즈브즈 2022. 10. 18. 13:54

▷ 프롤로그

아내와 청와대를 구경하고 왔다. 모처럼 서울엘 다녀오는 길이었기에 A7R3에 포크트랜더 50mm f1.2를 물린 채였다. 입구와 영빈관, 집무실 등등 가는 곳마다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남들처럼 나도 아내의 ‘인증샷’을 담아줬다. 위치를 잡고, 수평과 수직을 잘 맞추고, 초점을 정확하게 맞추고, 찰칵. 자, 구도를 바꿔서 한 장 더?

아내는 기겁을 했다. 우리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 찍을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두 가지를 싫어한다. 민폐 끼치는 것과 주목받는 것이다.

아내는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가지고 있는 렌즈를 다 팔고, 자동초점이 가능한 줌렌즈를 사라는 거였다. 값이 얼마나 되든 개의치 않겠다고도 했다. 우리 아내지만 저렇게 얘기하니 무섭기도 했다.

▷ 본론

이런 사연으로 그때부터 우리의, 아니 나의 화두는, 새 렌즈 고르기가 됐다. 포크트랜더 렌즈 특유의 금속마감과 50mm라는 화각에 너무나 만족했으므로, 나는 다른 사진장비에 관심을 완전히 끄고 지내오던 터였다. 이 렌즈를 팔 수는 없다.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가격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조건은 없던 얘기가 되겠지만. 여행용 렌즈에 대한 수요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내 말대로 광각도 되고 망원도 되는 자동초점 렌즈에는 브랜드별로 24-70mm 과 24-105mm 줌렌즈가 포진해 있다. 이것들의 특징이 바로 정확히 내가 싫어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거추장스럽고 비싸다.

그래서 캐논의 G1X m3를 중고로 구했다. 24-70mm 줌렌즈와 무려 APS-C 센서가 박힌 300g 대의 똑딱이다. 스위블 모니터도 있다. 최대개방 조리개가 아쉽긴 하지만, 휴대성을 위한 타협이다. 여행지 뒷배경을 흐린 초점으로 날리면 안된다는 이유도 정신승리를 도왔다.

▷ 장단점

그립감
APS-C 센서의 충분한 DR
스위블&터치 모니터
듀얼픽셀 CMOS AF 적용
방진방적 설계
부족한 가변 최대개방조리개
평범한 최고 셔터스피드
이면조사/적층형 빠진 센서
FHD에 그친 영상촬영 스펙
아담한 배터리 용량
자동커버 없이 뻥 뚫린 렌즈


G1X m3가 우리의 첫 번째 똑딱이는 아니다. 예전에 엘백이(파나소닉의 LX100 m2)를 쓰다가 지금의 A7R3를 선택했다. 그립감과 센서 DR이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G1X m3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도 그립감과 다이내믹 레인지인 것 같다. 그 밖에도 스위블&터치 모니터, 듀얼픽셀 CMOS AF, 방진방적 설계가 장점으로 꼽힌다.

(그립감) DSLR의 그립감을 떠올리면 안된다. 어디까지나 똑딱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립감이 좋다는 얘기다. 바디 앞쪽 그립부는 아주 깊숙하지는 않지만 렌즈쪽 모서리가 제법 날렵하게 떨어져서 감아쥔 손가락들을 잘 버텨준다. 바디 뒤쪽 상단에도 엄지가 미끄러지지 않게 도와주는 곡선 디자인이 들어가 있다. 한 손으로 집어 들었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 손아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꽤 훌륭하다.

(APS-C 센서의 DR) 이라고 해봤자 그리 대단치는 않지만, 역시나 끽해야 1인치 근처를 맴도는 다른 똑딱이들의 센서에 비하면 훌륭하다. 사실상 이 규격의 센서를 가진 똑딱이가 리코 GR 시리즈와 후지필름의 파인픽스 시리즈, 라이카 정도 뿐인데다가 그마저도 모두 하나같이 단렌즈가 적용됐다. 크롭센서 + 줌렌즈 조합은 이 녀석 뿐인 셈. 넓은 DR은 당연히 디테일 표현이나 보정 관용도에서 더 유리하다. ISO 감도가 충분히 낮은 상황이라면 노출에 극도로 예민해져야 할 필요는 줄어든다.

(스위블&터치 모니터) 소니만 쓰면서 없었을 땐 몰랐는데, 한번이라도 경험해보면 그야말로 신세계다. 세로로 프레임을 결정했을 때 촬영자세도 매우 편리하고, 셀카 촬영이야 말해 뭐해. G1X m3는 물리 다이얼도 많지만, 터치모니터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면 촬영 편의성은 그야말로 극대화된다.

(듀얼픽셀 CMOS AF) 이걸 장점으로 꼽아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캐논은 이 AF기술로 미러리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렌즈교환형 카메라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 기능이 대다수의 캐논 똑딱이에서는 적용되지 않았었다. 감사하게도(?) G1X m3에서는 작동한다. AF가 되어서, 그것도 빠르게 잘 되어서 아내가 좋아한다.

(방진방적 설계) 아직 비는 맞혀보지 않았다. 아내가 이걸 메고 흙바닥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카메라가 흙먼지로 범벅이 됐지만 기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날씨나 환경을 예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텐데, 작은 덩치에 의외로 딴딴한 설계 덕분에 믿음을 갖게 됐다.


후보가 될 만한 단점으로는 최대개방 2.8-5.6의 가변조리개, 1/2000초를 지원하는 최대 셔터스피드, 이면조사나 적층형이 아닌 일반 CMOS 센서, FHD 60fps의 동영상 해상도, 배터리 용량, 자동 렌즈커버의 부재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최대개방 2.8-5.6의 가변조리개) 노출 측면에서는 손떨림보정 기능으로 커버가 된다고 생각했다. 몽환적인 배경흐림이 그닥 필요하지 않은 여행용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모자람 없는 스펙

(1/2000초의 최대 셔터스피드) 1/4000초였다면 좋았겠지만. 혹은 1/8000초였다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하면 끝도 없다. 똑딱이에서는 1/2000초가 일반적이고 1/4000초가 되면 자랑할 스펙이 된다. 애시당초 렌즈 조리개가 밝지 않아 크게 와닿지도 않는 데다가 내장 ND필터가 있으니 상쇄되는 느낌도 있다.

(이면조사나 적층형 아닌 일반 센서) 고급 센서를 넣어주는 똑딱이가 일단 드물다. 언뜻 기억나는 반례로는 소니의 rx100 시리즈가 있는데, 어차피 걔네들은 1인치의 작은 센서라 노이즈를 줄일 필요가 있는 것이고, 심지어 그마저도 (없는 게 원래 당연한) 대단한 시혜성 스펙이라는 게 이 바닥의 일반적인 정서다. 애초에 이 녀석은 APS-C 크기의 훨씬 더 커다란 센서를 품고 있어 노이즈는 덜하다는 측면도 있고. 간단하다. 여기서 더 고급 센서가 필요하다면 돈을 더 내면 된다.

(FHD 60fps의 동영상 해상도) 일단 지금은 영상을 거의 찍지 않는다. 여행을 가면 브이로그를 찍게 될 수도 있는데, 우선 아내와 내가 그런 걸 어디에 업로드할 사람도 아닌데다가, 그걸 누군가가 몇 십 인치짜리 대형 화면으로 감상할 가능성도 극히 낮다.

(배터리 용량) 정품 배터리가 하나 더 있다. 용량이 컸다면 무게도 더 나갔을 거다.

(자동 렌즈커버 부재) 렌즈커버가 없는 모델인 덕분에 필터 같은 걸 장착할 수 있다. 중고로 살 때 JJC 자동렌즈캡이 딸려 왔다.




이런 것들 말고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바디 하단 3/8인치 스크류에 삼각대와 연결되는 퀵슈나 이와 유사한 것을 달아놓으면 배터리와 SD카드 슬롯을 덮어주는 뚜껑이 가려져서 열리지 않는다. 치명적이기는 한데, 딜 브레이커가 될 정도까지는 아니다.

어쨌든 아내도 만족해하고 나도 자주 가지고 다니며 야무지게 잘 사용하고 있다. 샘플 사진은 추억이 더 쌓이게 되면 그 때 추가하는 걸로.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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