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카메라와 렌즈와 기타 장비

소니 A7R3에 보이그랜더(Voigtländer) Nokton 50mm f1.2를 고른 이유

나그네_즈브즈 2021. 7. 2. 11:22

자기 복굴절에 관한 물리현상인 포크트 효과(Voigt effect)의 그 포크트다. 볼드마 포크트(Woldemar Voigt)는 독일 사람인데, 포크트의 땅이라는 뜻의 포크트랜더는 오스트리아의 광학 기업이다. 예전엔 같은 나라였나? 아무튼, 영미권의 영향을 심하게 받은 우리가 맨날 보이그랜더로 부르는 이 브랜드는 실제로 포크트랜더 내지는 포익틀랜더로 불려야 옳다.

 

됐고, 소니 A7R3에 물려있던 나의 원렌즈 35mm f1.4 자이스를 떠나보내고 50mm 대구경 단렌즈를 들일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다른 분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사진장비 관련된 동네에서는 표준이라든가 전천후라든가 하는 등의 표현은 참 양날의 검이다. 들짐승 편이기도 하고 날짐승 편이기도 했던 박쥐 신세라고나 할까. 흔히는 50mm 언저리의 초점거리를 가진 '표준'화각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광각의 마지막이면서 표준의 시작이기도 한 35mm 화각에도 그런 면이 있다. 레알 광각의 시원한 왜곡도 없고 찐 표준의 집중력도 못 갖춘, 참을 수 없는 그 애매함이란!

 

50mm 화각이 좁고 답답하기는 해도, 나 같은 초보자에게 그런 걸 권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듯 싶다. 사진은 뺄셈의 예술이기에, 얼치기 사진가가 주제도 모르고 광각렌즈를 붙잡으면 프레이밍에서부터 멘붕이 오기 쉽다. 고수들은 '다가가서' 찍으라고 조언하는데, 나같은 소심쟁이가 광각렌즈부터 가지고 첨부터 그러기가 어디 쉬웠으랴.

 

화각만큼 절실했던 고민이 하나 더 있는데, 자이스 50.4 렌즈의 무게와 덩치가 부각된 일이 있었다. 지난 주말 아내와 서울을 다녀왔는데, 거대한 렌즈를 달고 인파가 붐비는 곳을 헤매려니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화각은 스냅화각인데 덩치는 그렇지 않은 엇박자가 실감났다. 그래서 또 그 놈의 몹쓸 병이 도진 거다. 50mm 렌즈를 찾아볼까?

 

1차전은 50mm f1.4 자이스와 시그마 A 50mm f1.4의 대결이었다. 자이스도 물론 훌륭하지만, 아트오식이는 과연 그 명성에 어울리는 '물건'이라고 봐야 했다. 흠 잡을 데라곤 크기와 무게밖에 없는데 그 크기와 무게가 좀 심각하게 다가오긴 했다. 원래 캐논 마운트에서 주로 사용되던 모델이었고 이를 소니 FE마운트에서 쓰려면 MC-11이라는 어댑터가 추가로 필요하던 것이, 시그마가 소니 FE마운트 설계로 별도의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는 디자인 상의 차이가 있다. 소니 미러리스의 짧은 플레인지백 덕분에 FE마운트 아트오식이는 캐논마운트 아트오식이 뒤에 MC-11을 이어붙인 것 같은 구조를 갖게 됐다. 길이가, 길어졌다는 뜻이다. 스펙 상으로 보면 자이스 제품 길이가 108mm인데 아트오식이 길이가 100mm로 더 짧다는 게 말이 안됐다.

 

저 100mm로 표시된 렌즈 길이는 분명 캐논마운트 제품의 것일 터였다. 문제는, 아무리 찾아봐도 소니마운트 버전의 길이를 모르겠다는 거였다. 시그마 렌즈의 국내 유통사인 세기P&C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 해보니, FE마운트 아트오식이의 렌즈 길이는 무려 125.9mm였다. 혹시 26mm 길이의 이 추가 구조물 때문에 무게도 더 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3g 차이가 난다는 답을 들었다. 일단, 기다란 렌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후드까지 장착하면 더 길어질 게 아닌가. 3g이 더해졌든 말든 815g이나 되는 숫자는 더 심각한 장애다. 지금 가진 35.4 자이스보다도 200g 가량 더 무겁다니. 이걸 사두면 또 사진기를 안 들고다닐 게 뻔했다. 탈락이야 탈락.

 

조리개가 밝으면서 렌즈가 작고 가벼우려면, 역시 AF모터가 빠진 수동렌즈로 갈 수밖에. 찍는 짓거리 자체에서 재미를 찾으면 카메라를 더 자주 들고다니게 되지 않겠냐는 기대도 있었다. 작고 예쁘면 두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 우선 삼양 것들의 리뷰는 내 성에 차지 않았다. 포크트랜더 렌즈를 예전부터 한 번쯤은 가져보고 싶기는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니 마운트에 적용되는 표준화각 포크트랜더 렌즈는 몇 개 없다. 

 

두 번째 대결은 포크트랜더의 집안 싸움으로, 50mm f1.2 와 apo-lanthar 65mm f2 macro의 구도였다. 50mm 녹턴은 착란원의 크기가 더 크고 빈티지한 특유의 색감에서 우위를 보였다. 후자 쪽도 강점은 만만찮았다. 우선 색수차를 없애는 데 주력한 APO 설계인 데다가 표준에 비해 미묘하게 집중된 원근감, 그리고 1:2 배율의 매크로 기능까지 갖췄다. 승리는 50mm f1.2에게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이유가 간단했다. 65mm 아포란타 매크로 렌즈도 무게가 600g을 넘었다.

 

이제 고민은 끝났다 싶어 다나와에서 판매링크를 눌러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최저가 1~3위에 올라온 제품의 모습과 4~5위에 등장한 렌즈 디자인이 다르다는 거였다. 더 저렴하고, 포커스 링에 굴곡이 없는 디자인에는 SE라는 표현이 붙어 있었다. 검색해 보니 이건 still edition의 약어라고 한다. 포커스링에 굴곡을 가진 버전에는 조리개를 클릭음 없이 조절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었는데, SE 버전에서는 이걸 빼고 사진에 특화된 디자인을 했단다. 웃기고 자빠졌네.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SE 버전을 버리면 될 게 아닌가. 이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대결은 포크트랜더 nokton 50mm f1.2 끼리의 동족 상잔으로 펼쳐졌다. SE버전이냐 아니냐를 두고서 말이다. 일단 구버전의 리뷰영상을 보면, 포커스링을 조작할 때 경통이 침동하는 방식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렌즈 길이가 미묘하게 달라지니까 미관 상 문제될 건 없었으나 대개의 경우에 이런 디자인에는, 경통 바깥면에 묻은 먼지가 렌즈 내부로 침투하는 리스크가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역시 아무리 찾아봐도 SE버전의 포커스링이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나와있지를 않았다. 만약 얘가 이너포커스 방식이라면 고민은 깊어질 터였다.

 

국내에서 포크트랜더 렌즈를 유통하는 썬포토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SE버전은 이너포커스인가"를 물어봤지만, "네네네"를 연발하는 수화기 너머에서 당혹스러움과 건성이 가득 느껴져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SLR클럽에 질문을 올려 팩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버전의 포커스링 작동방식은 동일하며, 포크트랜더 렌즈는 침동식이지만 먼지 유입 이슈는 한번도 없었다는 거였다. 오 조아써.

 

포크트랜더 nokton 50mm f1.2 FE마운트 렌즈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1.2~2.0까지에서는 낮은 대비와 구면수차와 색수차와 회오리보케가 가득한 빈티지 렌즈의 모습을 품고 있지만, 조리개를 조여 2.8을 넘어가면 구석구석 날카롭고 진득한 느낌으로 변모한다. 4200만 화소 바디에 저렇게 뽀얏뽀얏한 수동렌즈를 물려서 어쩌겠다는 거냐 싶기도 하다. 뭐, 애초에 R3를 선택한 게 고화소 그 자체보다는 거기서 파생되는 높은 다이내믹레인지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테니까. 뜻밖에도,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언밸런스와 의외성이 또 매력 아니겠는가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포크트랜더(Voigtländer) Nokton 50mm f1.2 렌즈 소니FE용

 

아내가 이 렌즈의 샘플사진을 달갑지 않아하는 뜻밖의 최대복병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냥 살 거다. 똑같은 50mm f1.2렌즈인데(똑같지는 않지ㅋㅋㅋ) 소니 GM 제품은 300만 원이라는 걸 알려줬다. 어차피 내 취미고 내 만족이니까. 흐하하하핫. 중고장터에 매물이 너무 없어서 그냥 새 제품을 사야하는데, 총알 문제를 떠나서 양심적으로 생각해서라도 일단은 35mm f1.4 자이스 렌즈를 떠나보내는 게 먼저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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