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일기

기업분석/ 삼양옵틱스(225190) #01 - 투자아이디어

나그네_즈브즈 2022. 5. 23. 18:01

신사임당의 수요일 코너 ‘주식투자 좀 아는선배’에서 고정출연을 맡고 있는 김현준 더퍼블릭자산운용 대표가 ROIC(투하자본수익률. ROE나 ROA, GP/A 시리즈와 큰 틀에서 비슷한 개념)와 EPS 성장률을 언급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의 연평균 주가 상승률이 이들 지표에 수렴한다는 내용이었다.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심심한 김에 또 적용해보는 나였다. 주 후반부인 목요일과 금요일에 이리저리 종목들을 스크리닝 해보다가 제놀루션과 삼양옵틱스가 걸려들었다. 제놀루션은 유전자 기반 진단솔루션 분야에서 사업을 하는 곳인데, 늬낌적인 늬낌 상, 코로나19 때문에 폭증한 최근 2년 실적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사실 지노믹스에 비하면 삼양옵틱스가 몸담고 있는 카메라 렌즈에 대해서 내가 가진 덕후 스멜이 훨씬 짙었기 때문에, 이쪽을 파보기로 했다. 내 블로그가 원래는 사진과 사진장비를 주제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주식투자자들 중에서 나는 이 분야에 나름의 강점이 있다.

삼양옵틱스는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에 필요한 교환형 렌즈를 만들어서 파는 회사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스마트폰이 등장한 2008년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는 업종이다 보니,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적다. 이 안에서 주류가 되는 게 핵심이다. DSLR 시절 주인공이 캐논과 니콘이었다면, 대세로 자리잡은 미러리스의 원톱은 소니다.

렌즈 시장은 크게 네이티브(메이저 카메라 제조사가 출시하는 자사 전용 렌즈)와 서드파티(그 밖의 렌즈 전문 제조사에서 각 카메라 브랜드에 맞추어 출시하는 중저가 호환 렌즈)로 구분된다. 당연히 네이티브가 기본적으로 비싼 만큼 화질-속도-만듦새 등 모든 면에서 고퀄이며, 삼양은 서드파티 중에서도 합리적인 가격과 합리적인 품질(?)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카메라에 대해 조금만 알게 되면,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무리 좋아져도 폰 사진은 전부 똥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 원리를 설명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여가활동 범위가 집콕에서 국내 사이 정도라면 스마트폰으로도 사진 퀄리티는 차고 남쳤을 것이다. 하지만 3년 만에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다. 당신은 좀 전에 삼양옵틱스가 왜 리오프닝 수혜주인지를 마음 속으로 대답했다. 실적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2020년 급격히 쪼그라들었고, 2021년에 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하며 탄력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삼양옵틱스의 요약 재무정보 (출처=네이버금융)



네이버금융에서 긁어 와 방금 소개한 이 표 그대로가 삼양옵틱스의 투자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적힌 숫자들은 렌즈교환식카메라의 ‘렌즈’ 사업에 대한 이 같은 기본적인 이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구체적인 특징을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일단 시가총액이 1300억 원대로 아주 슬림하다. 이익률과 ROE 등 수익성 지표가 굉장히 아름답다. 기대되는 미래 EPS 성장률도 아찔하다. 부채는 내용을 떠나서 규모 자체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고 (나에겐 단점인데,) 배당성향은 뭐, 걱정스러울 정도다. 단지 PER만이 ‘어머, 이건 꼭 사야해!’ 할 만한 레벨에 들어가지 못한 정도랄까?

굉장히 귀가 솔깃해지는 회사로 등장했고, 주말 동안 깊은 번민과 혼란을 느꼈다. 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보기 위해 포스팅을 하게 됐으니, 지금부터 작정하고 좀 써보련다. 삼양옵틱스 IR 자료와 사업보고서의 II. 사업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팩트체크를 해봤다.



1. 렌즈는 자동초점과 수동초점, 그리고 수동초점은 다시 사진용과 영상용으로 구분할 수 있느니라

그건 당신들 생각이고. 그냥 네이티브 자동초점 렌즈를 사면 모든 게 해결된다. 자동초점 렌즈는 굳이 하려면 수동모드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수동렌즈 유저는 그냥 ‘갬성’만 즐기는 방법밖에 없다. 사진용 렌즈를 끼운 채 동영상 녹화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다든가 갑자기 카메라가 토악질을 한다든가 화질이 떨어진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다. 네이티브만큼 빠르고 정확하고 조용한 자동초점 기술을 달지 못해서 괜히 수동렌즈에 ‘영상용’ 카테고리를 궁색하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영화 업계에서는 실제로 수동 포커싱으로 촬영하지만, 그건 어차피 카메라 감독 옆에 초점 맞추는 사람이 따로 붙게 되는 먼 나라 프로페셔널 세계의 사정일 뿐이고.


2. 우리 렌즈 인기 많아요. 신제품 잘 팔려서 작년 매출도 늘었어요.

삼양이 출시하는 렌즈는 후지필름용, 캐논용 등등도 소수 있지만 대부분은 소니 카메라 전용으로 설계되어 있다. 내가 혀 다루듯 하는 다나와에서 소니카메라에 쓸 수 있는 단렌즈들을 인기 순으로 나열해봤다. 최근에 출시한 50mm F1.4 II 라든가 135mm F1.8을 보면서는 나도 유혹을 받기는 했다. 그런데 보다시피 순위 내 대부분은 네이티브 렌즈들이다. 게다가 부가가치가 높은 줌렌즈는 달랑 하나 뿐.

소니 마운트 다나와 단렌즈 인기 순위. 상위 랭크는 죄다 네이티브 렌즈가 차지했다.



3. 사실 우리 매출 93%는 해외에서 찍혀요. 외쿡인들은 합리적으로 화질을 중요하게 평가하거든요.

일단 이게 사실이면 내 능력의 범위에서 정확한 투자판단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외국이라고 다나와 비슷한 사이트가 없을까? 가장 다양한 사진 장비 성능을 정량적으로 검증하고 공개하는 dxo mark에서 역시 소니 카메라에 정착할 수 있는 단렌즈들을 점수대로 나열해 봤다. 여기에는 선예도, 왜곡, 색수차, 광량감소 등의 테스트 결과들이 종합되어 있다. 서드파티 렌즈들을 발견하기 위해 검색대상을 1,000 달러 이하로 제한해도 건질 수 있는 삼양 렌즈가 없다.



4. 우린 사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입문자들을 겨냥했던 겁니다. 작고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기 좋아야 값어치를 하는 거 아닙니까?

입문자들이 소니 캐논 니콘 후지필름이나 들어봤겠지. 서드파티로 관심을 돌릴 만한 사람들은 예산이 부족한 것이지 렌즈를 평가하는 안목이 모자란 단계가 아니다. 삼양에서 내놓은 소형 렌즈는 화질도 조악하고 너무 장난감 같아서. 요즘은 네이티브 회사도 저가 모델, 경량 라인업을 충분히 고급지게 잘 만든다.


5. 수동초점 브랜드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구요. 칼자이스와 경쟁합니다.

라인업 다양성에서 시그마 이길 수 있음? 퀄리티에서 포크트랜더 이길 수 있음?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라오와 이길 수 있음?
소니마운트 수동초점 단렌즈의 다나와 인기순위. 최상단에 삼양이 몇 개 보이지만 경쟁사가 적은 것도 아니고 삼양 제품의 비중도 떨어진다.


6. 영상 수요... 유튜버.. 넷플릭스..

응 어차피 내가 모르는 분야.






내가 아는 범위에선 삼양옵틱스의 제품은 인기가 높지 않다. 속아서 샀다가도 결국엔 쉽게 중고매물로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브랜드 포지션이 탄탄하지도 않다.

매출 대부분이 발생하는 해외 시장과 성장하는 영상 제작 분야에서 이야기가 다르다면 글쎄, 그건 인정. 그렇다면 이 회사나 유전체 기반 의료진단 기술 기업이나, 나한테 도박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잘 모르는 걸 섣불리 재단하면 결과에 체면이 서지 않는다. 포기했는데 잘 되더라도 배 아파할 자격이 내게는 없고, 덥석 물었다가 뜻대로 안됐을 때 변명의 여지도 없다. 그래서 삼양옵틱스 아이디어는 여기서 접는 것으로 하겠다.

많은 투자 스승들은 강점을 살리라고 했는데, 투자에 처음으로 내 덕후력을 적용해 봤더니 여러모로 새로웠다. 아이템을 킬 했는데 이게 어떻게 강점을 살린 거냐고 물을 수도 있으려나? 난 카메라 렌즈에 대한 내 강점을 살려서, 엉뚱한 가능성에 기대와 돈을 거는 결정을 피할 수 있었다. ‘엉뚱한 가능성’일지 확신하는 게 아니다. 내 기준에선 그런 결론을 얻었고, 밝혔다시피 나는 미련이 없을 뿐이다. 삼양옵틱스 주주들은 저마다의 이해와 전망을 바탕으로 포지션을 정하고 계실 것이므로, 나와는 별개다. 나는 그분들의 능력과 생각을 존중할 것이고, 나도 존중받을 거니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