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나비엔 주식이 4만 원대의 세일을 꽤 오래 유지하고 있었다. 센티멘털은 확실히 꺾여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러시아 제제 효과를 꼽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게 튀김옷이라면, 그 안에 자리 잡은 진짜 속살은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주 원자재인 철강 가격이 올랐고 운임비도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교역 디플레이션’ 효과를 잘라먹으며 불에다 기름을 부었다.
2021년 영업이익은 훼손됐는데 순이익은 두 배 늘어난 착시효과는 더 문제다. 가산연구소 이전 과정에서 발생한 영업외수익이 반영된 것인데, 작년 같은 순이익을 올해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떨어지는 주가는 어쩌면, 제자리 걸음이나 역성장을 일부 각오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상황이 나쁠까? 올해 1~2월 해외 수출량은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만약 비즈니스는 그대로이거나 나아졌는데 심리만 부러진 거라면 특별 할인으로 보고 기회를 잡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피터 린치의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에서 읽은 유쾌한 일침을 떠올릴 때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둘러앉아서 말의 이빨이 몇 개인지에 대해 몇 날 며칠 토론했다. 이들은 직접 말의 이빨을 세어보는 대신 둘러앉아 토론하면서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피터 린치
그러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질문만 할 게 아니라 확인을 해보자. 경동나비엔 IR담당자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해외]
1. Peer group인 A.O. Smith는 보일러 가격을 올린 것으로 확인된다. 우리 회사도 북미에서 판가를 인상할 가능성이나 계획이 있는가?
1월에 북미 판가는 인상했다. 선주문 물량을 제외하면 3월부터 반영될 것으로 본다.
2. 1~2월 러시아향 수출은 YoY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견조한 수요 때문인지 (언론에 설명한 대로) 현지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차원인지 궁금한데?
둘 다 있다. 제제 환경이 어떻게 흐를지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예비 물량을 마련하는 측면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 보일러 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우리가 누리는 수요가 커지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제제가 계속 혹은 추가되면 우리도 한국 기업으로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3월에도 러시아 수출 경향은 이어졌나? 그렇다.)
3. 재고가 쌓였던 중국에서 공장 가동률이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좋은 신호인가?
그렇게 보기엔 코로나19 확산, 미국과의 경쟁 등으로 중국 경제가 너무 성장을 못했다. 메이가이치도 결국은 상당히 부진했다. 하지만 큰 시장인 것만은 분명하고, 판매 촉진, 마케팅 강화, 유통채널 다변화 등 어려 방법 모색하고 있다.
4. 운임비 노출이 큰 편인 것 같다. 해운 부문 지분 투자라든가, 변동성을 완화할 방법이 없을까? 미국 공장이 완공되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가?
수출 비중이 커지는 만큼 중요한 문제인 것은 맞다. 운임비를 온전히 제어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계획적․효율적 물량 공급, 컨테이너 적재량 개선 등 비용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공장은 도움될 테지만 현지 인프라도 풍족하지는 않아서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는 어렵다. 부품 공급 등 추가 대책 검토해 왔지만 쉽지는 않다.
[국내]
5. 가산연구소를 이전했다. 이 수익으로 락앤락 아산 공장을 매입한 것 같은데, 평택 공장의 가동률 부하를 분산하기 위한 것인가? 기존 가산연구소의 기능은 어떻게 대체하게 되는지?
분명 그런 목적으로 매입한 자산이라고 보시면 된다. 자동화 기능 갖춘 공장 뿐만 아니라 물류창고도 있기 때문에, 물류창고 부족해 외부로 지출되던 비용도 제어할 수 있다. 연구소 시설을 새로 인수하는 대신 매각한 가사연구소 위치에 건물을 장기 임차해서 연구소를 설립했다.
6. 환경부의 저녹스 보일러 교체 지원 사업 확대라든가 국토부의 오피스텔 바닥 난방 면적 제한 완화라든가, 국내제도는 비교적 우호적인 것 같다. 회사에서는 온기가 느껴지는가?
20년 4월 대기관리권역법으로 콘덴싱 의무화되면서 부가가치가 높아진 것은 사실. 우리 파이가 커졌다기보다는, 신축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 여지를 배제한다면, 결국 국내 4개 회사가 M/S 경쟁을 통해 시장 나눠먹기를 해야 하는 환경.
7. 사업보고서에서는 찾지 못했는데, 정부의 아파트 신축 계획과 관련해, 건설회사와 계약 수주 진행된 바가 있는가?
중요한 계약, 큰 계약 건이 있는 경우에는 공시 했을 것. 신규 물량이 쏟아져 나오더라도 특정 보일러 업체에 몰아주는 일은 없다. 어떻게든 경쟁을 시키고 최저가로 낙찰해주기 때문에, 많아야 40~50% 정도? 대단지 물량이 아직 계획되거나 발표된 게 없어서, 기다리면서 지켜봐야 할 것.
[기타]
8. 어떤 밸류에이션 수준에서는 회사가 자기주식 취득한다든지, 그런 기준이나 여력 또는 계획이 있나?
실질적으로 유통 물량 자체가 굉장히 작기 때문에, 더 적게 가면 주가에 도움은 되겠으나, 거래량이나 유통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제제를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대화 매니저님(직함이 그대로이신지 확인을 못했다)의 답변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조심스럽고 신중하신 느낌이었다. 하지만 디테일하고 성실하게 응해주셔서 감사했다.
북미에서도 판매가격을 인상한 점은 반가웠다. 러시아에서 점유율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 락앤락 아산 공장 매입으로 기존 공장 가동률 부하에 숨통이 트인 것도 안도할 만한 지점이다. (회사에선 조심스러워 했지만, 안팎에서 늘어날 수요에 대비하기 위한 카드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중국 시장 공략과 운임비 제어에 대해서는, 노력 중이라고밖에 받을 답변이 없기는 했다. 국내 수요 증가에 대한 주주의 기대는 지나쳐서 좋을 게 없을 것이다. 입이 찢어질 만한 호재는 아직 없는 것으로 확인. 나는 어차피 오래 기다릴 관점으로 시작했으니 내 입장에서 요약하자면 “나빠진 게 없다” 정도. 올해 EPS만 보면 YoY 30~40% 정도는 역성장하지 않을까?
온수매트나 청정환기시스템까지 물어보기엔 시간을 너무 많이 뺏는 것 같기도 하고, 매출 비중 상으로 아직은 관심 밖이라서. 헤헷. 내가 비록 말의 이빨 사진은 못 찍어왔지만, 이 정도면 말이 깨물고 버린 당근 정도는 주워 온 거라고 해주자.
오늘 주가가 갑자기 48,000원까지 뛰었는데, 영업외수익 없이 2021년 정도의 실적을 유지한다면 2분기, 3분기로 갈수록 주가는 순이익 역성장을 재반영하지 않을까? 쨌든, 내 투자는 내 판단대로, 여러분의 투자는 여러분의 판단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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