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사진철학 잡담

내가 좋아하는 사진의 5가지 조건

나그네_즈브즈 2020. 8. 28. 15:07

사진을 좋아하면서도 사진에 대해 공부는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시 한 편 없는 이처럼, 내겐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 이름을 소개할 만한 내공이 없다. 비싼 디지털 렌즈 살 돈으로 때 지난 사진잡지라도 사 볼 걸 하는 후회가 들기는 한다. 이게 다 인스타그램 때문이다. 사진을 손가락으로만 소비하는 습관이 배인 것 같다.

 

그나마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들의, 내 가좋아요를 눌렀던 사진들을 모아보면 내가 어떤 사진들을 좋아하는지를 대략 가늠해볼 수는 있다. 오늘의 가벼운 포스팅에서는, 내가 이끌린 사진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정리해보겠다.

 

1. 채도가 과하지 않은 사진

굉장히 애매한 표현이긴 하지만. 두 가지 넘는 색이 높은 채도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수묵화보다 살짝 높은 채도로 은은한 느낌을 내면서 시선을 잡을만한 색 한 두가지 정도만 표현이 잘 되는 게 더 좋다. 물론 vivid를 의도한 사진은 달리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근데 또, 일부러 물빠진 느낌을 낸 사진은 별로다. ㅎㅎ

 

2. 밝은 사진

전체적으로 밝게 나온 사진을 좋아한다. 밝게 찍으면 어두운 영역의 계조가 잘 표현되지만, 밝은 영역의 색이 뭉개질 수도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밝은 영역의 색이 저마다 은은하게 살아있는 사진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다이내믹레인지(DR)가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3. 역광 사진

보통 역광에서는 사진을 안찍으려고 하지만, 찍을 줄 아는 사람들은 찾아다니는 빛이기도 하다. 물체의 테두리에 빛의 경계선을 만들어준다. 꼭 빛이 거꾸로 들이치지 않더라도, 배경이 밝고 피사체가 어두운 프레임은 매력이 있다. 가난한 초보 사진가가 플래시를 필라이트로 활용하기에도 좋은(유일한) 환경이다.

 

4. 레이어가 느껴지는 사진

평면을 찍은 구도라든지, 단순한 원근 구도에서는 왠지 뷰파인더에 눈이 안간다. 근경과 원경이 피사체를 감싸고 있는, 그래서 층층의 레이어가 느껴지는 사진을 좋아한다. 2차원의 사진이 더 입체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서다.

 

5. 고생이 느껴지는 사진

남들 자는 새벽에 찍었거나 야외인데 조명을 이용해 찍은 사진을 보면, 촬영할 때 얼마나 고생했을지 티가 난다. 동업자[?]로서, ㅎㅎ 당연히 이런 사진에는 좋아요를 날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촬영지를 찾아내는 것도 정성이고, 피사체가 될 사람과 관계를 쌓아올려두는 것도 다 능력이다.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사진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찍은 사진. 내가 좋아하는 사진의 요건을 갖출 정도의 실력은 없어도. 깨물면 당연히 아픈 내 손가락, 고슴도치여도 내 새끼인 것 같은 그런 사랑이다. 현상을 마친 '내 사진'들을 휴대폰에 두둑히 넣어두고 있으면, 덜 먹어도 배부르고 사무실도 무섭지 않다.

 

나는, 사진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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