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건드려 보고 싶은 취미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어떤 사진 한 장을 보고 "예쁘네"를 넘어서는 감정이 피어오를 때나, 휴대폰 카메라로 배설되고 있는 '데이터'에 신물이 날 때도 그렇다. 또는 그 밖에 여러 가지 경로로, 여차저차한 사연으로 사진은 취미의 얼굴을 하고 노크를 해 온다.
물론 언제나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망설일 틈도 없다. 사진은 어렵다, 사진 취미는 비싸다, 등등의 귀동냥이 어렵사리 찾아드는 흥미를 내쫓고 있는 게 아닐까. 티스토리에 처음 올리는 사진 포스팅은 사진이라는 취미를 1년 간 가져 온 나의 체험담이다. 바쁘신 분들을 위해 본문을 요약하자면
<매력> <장벽> 사진은 어렵다, 사진 취미는 비싸다 |
취미는 재미의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 사진은 사냥의 재미와 예술의 재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수렵과 매우 닮아있다. 영어 단어로도 shoot이라고 부르듯, 대상을 조준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소유하게 된다. 또, 대상과의 관계맺기에서도 비슷하다. 강물에 고압전기를 흘려 물고기를 주워 담는 걸 수렵이라고 분류하지는 않는다. 물고기의 때를 기꺼이 기다리고, 대결 끝에 사냥감을 제압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낚시도 사냥이 된다. 사진도 마찬가지. 아이폰으로 연사를 날리거나 4K 동영상을 찍어 한 프레임을 건질 수도 있지만, 취미사진가들은 피사체를 찾아 나서고 적당한 빛을 기다려 갖가지 구도와 겨룬 끝에 순간을 포착하는 쪽을 택한다.
예술은 창작과 감상의 과정이 모두 재미를 선물한다. 넓게 보아 사진 예술의 창작은 인상적인 장면을 기록하는 것, 내 감정을 오브제에 투영하는 것, 아름다움을 사진을 이용해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것들이다. 맛집에서의 인증샷은 기록적 창작, 여행지에서의 멋진 일출을 찍는 건 미적 창작인 셈이다. 20년 전 아빠가 찍은 필름사진을 꺼내보며 울고 웃거나, 인스타에 올라온 친구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건 사진 예술을 감상하는 재미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표현이려나.
재미있으면서도 사진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풍성한 얘깃거리를 안고 있다. 카메라나 렌즈에 관한 장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제조사도 다양하고 당연히 성능과 가격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장비병에 빠지면 "내 취미는 카메라"라고 해야 하는 지경이 되기도 한다. 조리개며, 셔터속도며, 처음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촬영 원리는 갖가지 상황과 맞물리며 무궁무진한 테크닉을 만들어 낸다. 흔히 '연주', '조리'에 비유되는 보정 기법도 역시 끝 없기는 마찬가지다. 혹여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 출사라도 따라가게 된다면 이제 온 세상의 출사지, 여행지에도 눈과 귀가 열린다. 덕분에, 사진 취미를 즐기며 블로그를 운영하더라도 글감을 걱정할 일이 없다.
사진을 취미로만 찍는다고 해도, 쓸모가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찍었던 사진을 다시 꺼내보며 추억에 잠기는 건 '놀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쓸모'이기도 하다. 친한 친구의 작은 결혼식에 사진가로 초대될지도 모를 일이고, 보다 그럴듯한 사진을 곁들여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수준이 달라 보일 수도 있다. 보고서나 발표자료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우리 생각보다 세상에는 '더 좋은 사진'이 필요한 곳 투성이라서, 취미로 배워둔 사진이 작은 용돈벌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스톡 이미지 사이트에 올려두어도 적립금이 쌓인다. 시민 사진기자가 되어 원고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심하게 잘 되면 스냅 알바작가로 용돈을 벌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에 더해, 자신만 느낄 수 있는 풍성함도 있다. 사진을 찍게 되면 자아와 세상이 달리 보인다. 더 깊이 관찰하게 되고 더 많이 관심을 갖고 더 민감하게 느끼는 만큼 이해하는 것도 깊어진다. 예전에는 비 오는 날 길냥이가 어디에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해 저문 하늘의 색깔이나 아내가 웃지 않는 순간에는 어떤 표정이 예쁜지에도 무심했다. 뷰파인더 안의 내 자신이 인생에서 어떤 출구를 찾고 있나에도 신경 쓸 틈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진 때문에 나와 세계는 달라졌다.
그래서 취미 사진에 대해 우리가 배워 온 편견이 더 아쉽다. 그 편견들은, 결정적으로, 주관적이다. 그래서 반만 맞고 반은 틀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이 어렵다는 말은, 최초의 진입장벽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용어도 낯설고 암기해야 하는 관계들이 있어서 어려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배움이 있기나 할까? 비유하자면 apple은 사과, 라면을 오래 끓이면 짜고 면이 붇는구나를 익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뒤부턴 무궁무진한 촬영 원리와 보정 기법에 빠져들 시간이다. 사진을 수십 년 찍고 '사진이 어렵다'하는 분들은 수준이 높아서 그런 거니까 패스하고.
비용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장비병'으로 이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이 렌즈 저 사진기 다 써봤더니 결국은 똑딱이보다 못한 내 상상력을 깨닫는 날도 온다. 지난여름 내 사진 기기는 180만 원어치의 미러리스와 렌즈였지만, 지금 '내 사진기'는 30만 원짜리 중고 필름카메라다. 순서만 극복하면, 적당한 투자로도 얼마든지 사진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사진을 알고 내겐 참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내 선택은 달라질 이유가 없다. 사진 취미? 어쩌면, 어렵게 닿은 인연일지도 모른다. 겁내지 말고 덥석 물자. 건너가자, 새로운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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