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둘은 서로 충돌하는 딜레마가 아니다. 결이 다른 조언이면서,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조건들이다. 그래서 이 글의 진짜 결론은 이렇다.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의 수혜기업이 ▲경쟁 상대를 찾지 못할 때 최고의 주식이 된다는 것이다.
피터 린치는 성장이 정체된 업종을 가장 좋아하고, 거기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을 때라야 저성장 업종으로 눈을 돌린다. 모텔 체인, 소매업 유통 체인, 장의업, 폐유처리업, 병뚜껑 제조업, 스타킹 회사 등등에서 10루타 종목을 만났던 그다. 종목의 유형을 6가지로 분류했던 챕터에서 고속성장주를 설명하며 그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고속성장주가 반드시 고성장 업종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그런데 랄프 웬저와 김현준과 선물주는 산타는 메가트렌드 속에서 좋은 기업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역성장 산업에서는 아무리 잘해봐야 본전이지만, 메가트렌드 안에서는 중간만 하더라도 성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이 두 관점이 모순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김현준에 따르면, 성장 정체 업종에서는 기업의 성장이 쉽지 않다는 말 아닌가? 피터 린치에 따르면, 메가트렌드에서는 10루타 종목을 발굴하기 어렵다는 뜻 아닌가? 탑다운으로 찾으라는 건지, 바텀업으로 찾으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피터 린치가 성장 정체 업종이나 저성장 산업을 좋아했던 이유는 경쟁 강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2장의 '정말 멋진 완벽한 종목들'에서 (몇 번째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성장 정체 업종에 대해 설명하던 부분에 저자가 친절히 적어놨던 걸, 오랫동안 놓쳐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피터 린치가 이 장에서 강조한 조건들 가운데 내가 '저평가 요인'이라고만 이해했던 것들 중 일부(따분한 사업, 혐오스러운 사업, 유독 폐기물이나 마피아와 연루되었다고 오해받는 사업 및 음울한 사업)는 다같이 '출혈경쟁을 피할 수 있는 기업'을 발견하기 위한 요구사항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켄 피셔도 경쟁의 나쁜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저서 '슈퍼 스톡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쟁을 이겨내는 회사는 훌륭한 회사다. 경쟁을 하지 않는 기업은 위대한 기업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경쟁력, 즉 경제적 해자를 갖춘 비즈니스를 물론 찾아야 하지만, 아예 경쟁이 거의 없는 비즈니스는 보다 더 완벽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피터 린치가 강조했던 (경쟁이 거의 없는) 성장 정체 업종이 역성장 산업이어서는 곤란하다. 이건 랄프 웬저나 김현준 혹은 선물주는 산타 등등의 스승들이 말하는 '거꾸로 흐르는 강물'이나 다름없어서, 회사의 부단한 노력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는 것을 가로막는다. 이유가 뭘까.
성장 정체 업종이 역성장한다는 것은 떠오르는 '경쟁 업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예시는 많다. 내가 좋아하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도 대표적이다. 일본의 캐논이나 소니, 독일의 라이카는 이 업계에서 소비자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브랜드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카메라/렌즈 매출액은 갈수록 줄어든다. 2008~2009년이 기점이었다.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업종 밖 경쟁자'가 나타났고, 이들이 지나치게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인쇄출판업(인터넷, PC, 모바일 단말기), 내연기관 파워트레인(모터로 작동하는 전기차) 관련 기업들도 낯선 경쟁자들을 만나 떠내려 가고 있는 대표적인 예다.
요약하면, 업종 안팎에서 경쟁할 필요가 거의 없는 비즈니스가 좋다는 얘기다.
메가트렌드는 메가트렌드다. 김현준 더퍼블릭자산운용 대표는 이걸 해일에 비유했다. 거대하다는 수식어로 부족한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다 안다. 다 알지만 결국 피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해일과 메가트렌드가 닮은 점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요즘 메가 트렌드가 뭐에요?'라고 물어봐야 할 것이라면 그건 메가 트렌드일 수 없다는 것도 강조한다. 전기차, 자율주행, 저출산과 고령화, 무인점포, 비대면, 메타버스, 탈중앙화, ... 이런 것들도 메가트렌드다.
테슬라, 코인베이스, 구글, 엔비디아, (구)페이스북이 떠오르는가?
메가트렌드를 반드시 혁신기술이나 공상과학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사이에 닮은 점이라고는 '미래'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 말고는 없다. 켄 피셔는 다시, '3년 안에 일어나지 않을 일은 계산에 포함하지 말라'고도 했다. 대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잘 아는 기업에 투자'하려면 오히려 일반투자자들이 피해야 할 업종들일지도 모른다. 뭐야? 그럼 어쩌라는 거야?
똑같은 워딩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랄프 웬저도 분명 메가트렌드를 이야기했다. 김현준 대표가 설명한 부분 중에서, '피하지 못한다'에 초점을 맞추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랄프 웬저와 김현준이 말하는 메가트렌드는, '반드시 일어나게 될 특정 미래'로 초점이 모인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해서도 안되고, 투자자가 이해할 수 없는 분야여서도 안된다. 드럽게 어렵다. 이런 요구까지 더해지면 메가트렌드는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관심의 더듬이를 항상 예민하게 세우고 있어야한다.
개인적인 전문분야가 있다는 자신만의 메가트렌드를 찾는 데 강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소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전업주부도 아니라서 이런 강점이 전혀 없다. 나같은 루저라고 해도 책상에 앉아서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반드시 일어나게 될 특정 미래'를 적어보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금리 인상, 신규주택 건설, 여행수요 회복, 시력 저하, 폐플라스틱 활용,
반드시 찾아올 미래의 수혜를 입으면서도 업종 안팎으로 경쟁이 약하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성장 정체 업종과 메가트렌드의 화해에 대해 적고 있자니, 워런 버핏과 제프 베조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에 초점을 맞추라. 여기에 기초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생각났다. 주워들은 말 자랑하려거나 멋져 보이려는 게 아니라. 진짜다.
오늘따라 글에 마무리가 안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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