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생산과 유통, 소비라는 세 가지 축으로 움직인다. 이 무대 위의 플레이어들은 정부, 기업, 소비자로 이루어져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은 기업이 도맡는다. 소비는 일반 소비자만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소비를 다른 기업이 해주면 이걸 유통이라 부르고, 정부가 중요한 소비자 역할을 담당하는 때와 분야가 있다. 다른 기업이 고객 역할을 하는 유통사업을 하는 회사는 B2B(Buisness to Buisness) 기업이라고 부른다. 같은 공식으로 정부가 고객이면 B2G(to Government), 일반 소비자를 고객으로 하는 회사는 B2C(to Customer) 기업으로 분류한다.
맙소사 남들은 이걸 고등학교 때 배운다니! 어쨌든 이제라도 알게 돼 다행이다. 나는 이제부터 가급적이면 B2C 기업을 골라 투자하려고 한다는 게 이 글의 메시지다.
주요 고객이 정부인 회사는 협상력과 일관성이라는 이유로 투자처로서 불리함을 갖는다.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할 때 기업은 칼자루를 온전히 쥐고 있기가 어렵다. 공개입찰 등 협상 과정에서 공급경쟁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고객으로서도 각종 규제나 과세 등 보복수단을 지니고 있어서다. 법 제도가 언제 바뀔지도 예측하기 어렵고 수주도 그 일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 가격 인상은 언감생심이다. 정부가 공익이니 국민이니 하며 가격을 후려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B2B 기업의 투자매력은 반반이다. 투자자 본인이 비즈니스 연결고리의 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거나 전문성을 가졌다면 굉장히 유리한 투자자산을 확보한 것일 수 있다. 경쟁사나 고객사의 약진을 빠르게 캐치할 수도 있고, 우리 회사의 형편이나 업황의 진실에도 다른 누구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업스트림의 품질을 평가하는 역할로 봐도 물론 유리하다. 반대로 그와 같은 엣지가 전혀 없다면 투자자의 입장은 상당히 역전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밸류체인, 자동차 부품, 2차 전지 공급망, 그밖에 철강 조선 화학 정유 해운 등의 경기민감 업종이 대부분 이런 B2B 기업에 해당한다.
하지만 B2C 기업은 모든 투자자가 보편적으로 노려볼 만한 대상이다. 소비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이든지 고객을 만족시키고 지갑을 열게 한다면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한다. 이걸 만드는 회사는 어디지? 상장된 회사인가? 이 게임이 1위를 유지할지, 컴백하는 아이돌의 신곡이 괜찮은지, 이 옷의 디자인과 브랜딩이 유행을 만들지는 고객들이 결정한다. 분야에 따라서는 일반 소비자가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보다 유리한 지점이 있다.
워렌 버핏은 '능력의 범위'를 강조했다. 꼭 그처럼 천재일 필요는 없다. 투자자 본인이 남들보다 잘 알고 자신있는 분야, 나만의 '홈 그라운드'에서만 경기를 펼치는 게 가능하다. 워렌 버핏은 투자에 있어서 '모든 볼에 안타를 쳐야만 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주식투자라는 경기에서는 스트라이크 아웃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공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어떤 분야에 자기 자신이 덕후라면, 훌륭한 투자자가 되기 위한 자질의 절반은 갖춘 셈이다.
나는 줄곧 아카데미에 몸담아 왔고, 지금도 산업계에 속한 커리어는 아니다. B2B 중에서는 자신있는 동네가 전혀 없다. 불행하게도 패션, 자동차, 게임, 걸그룹에 돈을 쓰는 성격도 아니다. 주식 투자자로서는 정말 최악의 흙수저다. 대중의 구매 속에서 트렌드를 발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퀀트 스러운 재능을 쥐어짜내서 그물에 걸려 오는 물고기들 중 B2C를 골라내는 방법 정도는 남아 있다.
그런데 B2C 분야에서 성장하는 기업을 찾으려니 이건 또 더 어렵다. 시장이 커진다거나 신사업에 뛰어든다거나 신제품을 만든다거나 매장을 늘려야 한다. 미국 사람인 피터 린치의 눈에는 이런 회사들이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다. 체인점과 사업영역을 늘려가는 식당이나 패션 브랜드는 한국에도 물론 있다. 미국은 주식 시장이 거대해서 사업규모가 주식을 상장한 이후에도 성장을 지속할 여백이 남아있다. 그러나 국내 무대는 까다로운 상장요건을 충족하느라 회사가 충분히 기반을 닦은 뒤 상장하면, 이미 국내 시장이 포화된 다음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팬티스타킹을 팔아도 성장주가 될 수 있는 미국 주식에 투자하자니, 내가 태평양 건너 한국 소비자라는 게 걸린다. 능력의 범위 운운하며 잘 아는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B2C를 기껏 추려놓고는, 구경도 못 해본 기업에 돈을 거는 서학개미가 된다는 게 어쩐지 모순처럼 들려서다.
일단은 국내에서 B2C 성장기업 찾는 연습을 최대한 하는 중이다. 숫자가 점점 더 크게 찍히고 있는지부터 본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성장이 지속가능한 것일지를 확장성, 경제적 해자, 메가트렌드 등의 관점에서 확인해야 한다. 투자 아이디어를 얻는 건 나한테만은 결코 쉽지가 않다. 이걸 배우면서 세상의 덕질이 모두 아름다워보일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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