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전략

PER을 '투자원금의 회수기간'이라고 하는 이유 (feat. ROE)

나그네_즈브즈 2021. 11. 29. 15:26

주식시장에서 가격은 두 가지 변수의 곱으로 결정된다. 하나는 기업이 올리는 실적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가는 순이익과 PER이 곱해진 결과다.

여기서 PER이 내가 앞에서 얘기한 확신의 정도다. 이 확신이 아주 높아서 광기에 이를 정도가 되면 주가는 미친 듯이 올라간다. 반대로 사람들이 이 기업의 실적에 대해서 확신이 아주 없으면 (다시 말해 이 기업에 실믕하게 되면)주가는 곤두박질친다.

여기서 PER의 의미에 대해서 사람들이 흔히 내놓는 설명이 있다. 바로 이 PER이 투자금액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얘기 식을 다시 살펴보자.

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누어주면 PER이 계산된다. 만약 어떤 회사에 만 원을 투자해서 매년 천 원씩 이익을 벌어 들인다면 이익이 모여서 투자원금이 되는 데는 10년이 걸리기는 한다. 이런 경우에 per이 10배라는 소리다.

나는 이 설명이 항상 이상하게 느껴졌다. 앞서 소개한 예시를 조금은 극단적으로 다시 풀어보자. 어떤 회사의 주가가 1만 원이다. 이 회사는 올해 천원에 순이익을 올렸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10년 뒤에도 계속해서 천 원의 순이익을 꾸준히 올릴 것이 분명하다고 하자.

이 회사는 배당을 전혀 주지 않으며 주가도 1만 원에서 10년 동안 꿈쩍하지 않는다고도 가정해 보자. 나는 분명히 만 원의 투자금을 넣었다. 회사는 1천 원을 벌었고, 다음 해에 내 투자금은 그대로다. 회사는 다시 천 원을 벌어들였다. 주가만 그대로다.

PER이 가리키는 그 10년 만에 회사는 내가 투자한 돈 1만 원을 벌었지만 내가 투자한 돈 '만 원'은 그대로다. 도대체 뭐가 회수됐다는 건가? 그래서 나는 PER에 대한 이런 설명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약에 내가 만 원짜리 치킨집을 열고 치킨을 팔아서 매년 천 원씩 순이익을 거둔다고 하면, 내가 투자한 돈 만 원을 10년에 걸쳐 회수하는 게 맞다.

혹은 회사가 만 원짜리 공장을 지어서 그 공장에서 만든 제품으로 매년 천 원씩 이익을 벌어들인다면, 이 회사는 꼭 10년 만에 즉 PER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공장에 투자한 돈을 전부 회수하게 되는 게 맞다

내가 투자하고 내가 회수하든, 회사가 투자하고 회사가 돈을 벌어야 옳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더니. 돈은 내 지갑에서 들이고 재미는 회사가 보는 건 온당치 않다.

PER에 대한 사람들의 설명에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투자한 주체와 투자의 결과에 따라서 이익을 얻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 돌려받는(회수) 게 아니잖은가.

회사가 천 원의 이익에서 100원을 배당으로 돌려주는 경우에, 그 배당금을 모아 만 원이 될 때까지 100년이 걸릴 테니까 주주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100년, 따라서 PER 100이라고 하는 게 차라리 솔직하겠다.

그런데 투자금에 대한 배당금의 비율(=배당수익률)이 그렇게 높은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주식 투자자가 투자금을 최소한 회수라도 하기까지는 짧게는 20년 많게는 10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고도 주가는 손실권이 아니르야 한다.

운이 좋다면 두 배가 되기까지 20~100년이라니. 이런 장기간의 불확실한 스토리는 투자자들한테 먹혀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면 PER에 대해서 조금 더 나은 설명이 있을까. 이걸 고민해보기 위해서 투자금을 투입하는 주체와 회수하는 주체를 통일시켜보기로 했다.


 

잘 알려진 재무지표들 가운데, '투자주체'와 '이익주체'가 동일한 경우로 ROE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것은 자본총계를 기준으로, 벌어들인 이익이 몇 %이냐를 따진 백분율이다.

 

자본은 자산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영업을 하기 위한 용도로 운영된다. 즉 자본을 투자해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거두었느냐를 따지는 지표다. 회사가 투자한 금액에 비해 회사가 거두어들인 이익을 따지니까 합리적이다.

 

ROE는 순자산의 성장율이기도 하고, 백분율 말고 비율 자체를 거꾸로 뒤집으면 자본만큼 누적이익을 기록하기까지 걸리는 햇수가 되기도 한다. 자본총계 1만 원에 순이익이 1천 원이면 ROE는 10% 또는 0.1이다. 이 분수를 뒤집으면 10이 되는데, 1천 원이 10년 누적되면 딱 자본총계만큼인 1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ROE가 크고 회수기간이 짧을수록 회사가 장사를 잘한 게 된다.

 

그런데 ROE에는 기업의 속사정만 들어있을 뿐,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주가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 따라서 시가총액을 ROE와 연결시켜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서두에 소개했던 것처럼, 시가총액 = 순이익 × PER 이라는 뼈대는 유지하기로 한다. 그럼 여기서 PER을 가지고 ROE까지 이어지는 길을 찾아보자.

 

시가총액은 Price의 첫글자인 P, 순자산을 Equity의 약자인 E, 순이익을 Return의 머릿글자인 R로 표현하자. ROE는 R/E의 백분율이지만, PER은 (아직 분명치 않더라도) 회수기간 즉 E/R 비율과 어떤 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PER(=P/R) = 회수기간의 함수 = f(E/R)

 

사실은 P/RE/R과 관련있으려면 P/R = (P/E) × (E/R) 을 떠올리는 게 가장 쉽다. 분모의 R이 똑같으니까, 회수기간의 분자에 있는 E를 나눠서 없애준 뒤(= 1/E) 그 자리에 P를 곱해주면(=(1/E)×P) 그만이기 때문이다(=P/E).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 등장해야만 하는 P/E,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다는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 질문에 그럴듯한 답을 줄 수만 있으면 이런 추정을 그대로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기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가총액과 가장 관련이 깊은 건 이익보다는 순자산이다. 맨 처음 기업공개를 하면 공모가가 정해진다. 어떤 회사가 액면가 1천 원인 주식을 1만 주 발행됐다고 하자. 이 발행을 위해 들어간 돈 1천만 원은 회사 주머니에서 나오는 납입자본금이다.

 

그런데 기업공개를 진행한 이 회사 주식의 공모가가 1만 원으로 결정됐다. 투자자들이 1만 주를 사가느라 낸 돈 1억 원은 회사 주머니로 들어와 최초의 순자산(E0라고 하자)이 된다. 그리고 팔려나간 주식의 가치를 모두 합하면 정확히 1억 원이 되고, 이것이 최초의 시가총액(P0라고 하자)이다. 

 

기업공개 시점을 기준으로 시가총액은 순자산과 일치한다. 즉, E0 = P0 이다.

 

향후에 기업이 순이익을 내면 순자산 E0에는 이익잉여금 △E가 추가될 운명이다. 영업활동에 투입된 순자산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순이익을 잘 내면, P0이던 이 회사 주식의 인기와 가격에도 '추가점수' △P가 붙게 된다. 

 

E = E0 → E = E0 + △E
P = P0 → P = P0 + △P

 

Price/Equity의 비율은 처음에 1이었지만, 순자산이 이익을 내는 효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회수기간이 짧은 순자산에는 웃돈을 얹어줘야 하고, 회수기간이 긴 비효율적 순자산에는 할인이 붙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PER이 PBR과 ROE 역수의 곱이라는 식에는, 기업 입장의 투자자금 회수기간(ROE 역수)과 투자자가 순자산을 평가하는 계수(PBR)가 의미상으로 섞여 있다.

 

동네 구멍가게가 연매출 1억을 올리는 것과 코스트코 본사가 연간 1억 매출을 달성하는 게 같을 수는 없다. ROE는 덩치값이다. 덩치값을 해내는 사업과 덩치값도 못하는 사업에 같은 점수를 주는 건 공평하지 않다.

 

자본의 효율이 좋고 회수기간이 짧다는 건 비즈니스 모델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증거다. 훌륭한 냉장고는 더 비싼 값을 받을 자격이 있고, 신선하지 않은 달걀은 더 싼 값에 거래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PER을 이렇게 인수분해하는 관점은, 소비자가 물건을 고를 때 품질에 따라 값을 매기듯, 투자자도 비즈니스 모델의 우수성(ROE)에 따라 가중치(PBR)를 매겨 가격을 지불하는 개념이 된다. 합리적이다.

 

시가총액 = 순이익 × PER 이라는 뼈대로 돌아가 보자.

 

P = R × PER = R × (P/E) × (E/R) = 순이익 × (평가계수 × 회수기간)

 

R도 E도 서로 약분되고 P=P라는 멍청한 등식 하나만 남는다. 그도그럴 것이, 이익이 커지면 회수기간이 짧아지는 효과가 있고, E가 커져서 회수기간이 늘면 평가계수가 작아지는 효과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결론의 장점은 두 가지다. ▲PER 속에 '회수기간'의 의미가 (다른 형태로나마) 있다는 걸 발견했고, ▲ROE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하고 PBR을 보며 고평가 여부를 가늠하는 방식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