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카메라와 렌즈와 기타 장비

카메라 구입 01 - 이럴 거면 사지 마라

나그네_즈브즈 2020. 9. 23. 15:39

맨날 공부 포스팅만 올리자니 쓰는 본인도 기가 빨린다. 장난감[?]이 있어야 공부에도 재미가 깃드는 법. 슬슬 카메라 살 준비를 해보는 게 어떨지. 가격은 만만찮고 부푼 꿈에 비하면 예산은 언제나 부족한데, 뭘 알고 골라야 바가지를 피하든가 후회를 피하든가 할 게 아닌가. 이 시리즈는 초보가 카메라를 고르는 대장정을 인도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첫 시간부터 초를 쳐본다. 타짜의 평경장은 고니를 보고 첫 눈에 "캐릭터가 기래 봬"라고 했는데, 과연 당신이 새 카메라를 사놓고 후회할 캐릭터인가 아닌가를 점검해보자. 

 

패션 소품이면 가지고 다닌다 ♥

1. 사진기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

2. 노출과 측광이 뭔지 모르는 사람

3. 보정이 합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4. 사진에 돈 들이는 게 아까워 죽겠는 사람

 

2010년 이후 현재까지도 전 세계 카메라/렌즈 시장은 그 규모가 쪼그라들고 있다. 왜? 2008년부터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휴대'폰에 사진기가 탑재되었다는 기계적인 이유와 함께, 스마트폰은 보다 중요한 지점에서 카메라를 위협했다. 카메라에서 사진은 '생산'만 되지만, 스마트폰에서는 생산도 되고 '소비'도 함께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제 사람들은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기 위해 메모리카드를 이러지리 옮기며 PC를 이용하는 사람을, 거의, 멍청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처음부터 딴 길로 잠시 샜지만, 도입부로써 이건 중요한 부분이다. 당신이 카메라를 구입하고 후회하게 될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이미 꽤 그럴싸하고 비싼 '스마트' 카메라 한 대를 저마다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새 카메라를 들이는 결정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려면 스마트폰을 압도할 경쟁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으니, 스마트폰 카메라를 분석해보니 특징이 대략 요약된다.

 

가. 항상 가지고 다닌다.

나. 항상 연결되어 있다.

다. 동영상도 찍을 수 있다.

라. 그렇지만 구리다.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이 구리다는 점을 확실하게 압살해야 승산이 보일 듯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진기의 촬상면(센서나 필름처럼, 상이 맺히는 곳)은 이미 물리적 성능에서 스마트폰을 저만치 앞서 있다. 삼성이 아무리 1억 화소를 때려 박더라도 그게 손톱만 한 센서크기에서라면야 지눈지찔(지 눈까리 지가 찌르기)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폰카에서는 조리개도 조절이 안된다. 당신과 나의 과제는 이 훌륭한 물리적 자산을 어떻게 십분 활용할 것인가다.

 

촬상면이 크면 뭐가 좋으냐. 발색/계조/다이내믹레인지/관용도/노이즈억제 등등 복잡한데 요약하자면, 촬영도 더 잘 되고, 보정도 더 잘 된다. 그럼 우린 그 장점을 어떻게 살리느냐. 찍는 기술도 알고, 보정하는 기술도 알아야 한다. 찍는 기술이란 좋은 빛을 읽고, 밝기와 구도로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이다. '표현'이 한 편의 소설이라면, 노출과 측광은 문법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기초 중의 기초란 소리다. 보정은 왜 해야할까? 소설 쓰고 퇴고도 안하는 작가는 (거의) 없으니까. 작가의 의도나 현장에서 가졌던 느낌을 살려주는 단계는 필요하다. 당연히 셔터만 눌러 찍어낸 폰 사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스마트폰 보정 애플리케이션도 너무 좋아서...

 

그런데 이 모든 걸 할 생각이 없다면? 돈을 많~이 들이면 된다. ㅋㅋㅋㅋ 200만 원으로 찍을 걸 1500만 원으로 찍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이 블로그가 도움을 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기는, 웬만한 의지가 없다면, 전화기처럼 '항상' 휴대하고 있기는 어렵다. 자기 소유의 자동차가 있다면, 하다못해 가방이라도 언제나 메는 스타일이라면 또 모를까. 고객을 만날 때,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을 때, 동네 슈퍼마켓에 심부름을 다녀올 때, 친구와 소주 한 잔 기울일 때 우리는 휴대폰과 함께 있지만 렌즈 툭 튀어나온 DSLR을 메고 있지는 않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처음에는 애틋했다가도, 하루 이틀 몸에서 떼어놓았을 때의 달콤함을 맛보면, 우리의 '비싼' 사진기는 장롱행에 탑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걸 귀찮아 할 성격이라면 처음부터 사지 말든가, 적절한 외관의 장비를 고르든가 해야 한다. 사진기가 샤넬 백보다 스무 배 예쁘다면 또 모를까. 

 

긴 글을 다소 요약하는 걸로 포스팅을 마무리해야 도리일 터. 중요도 순이니 마음에 새기자.

 

1. 부지런하거나, 아주아주아주 예쁜 카메라를 사거나, 주머니에 넣을 작은 카메라를 사라.

2. 노출과 측광, 보정법을 배워서 → 카메라의 장점을 살려라.

3. 시원~하게 비싼 걸 사라. 아까워서라도 들고 다녀야할 정도로.

   그 정도면 발로 찍어도 잘 나온다. 이상하게 찍혀도 된다. 카메라 이름만 해시태그 달면 장땡이다.

 

졸라 비싼 그 카메라...

하나도 못할 거면, 사진기, 차라리 안 사는 게 낫다. 나는 1번과 2번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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