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전략

재무제표 걸음마 : 재무상태표(자산, 부채, 자본) 쉽게 이해하기

나그네_즈브즈 2021. 7. 27. 11:31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가 포함된 재무제표는 기업의 CT 사진이다. 주가 차트나 기사에서 보이는 허우대, 그 안에 뭐가 어떻게 들어있는지를 말해준다. 그 자체로는 과거가 기록된 숫자들에 불과할 뿐 미래에 대해서는 조금도 말해주지 않지만, 투자자는 그 행간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끔찍한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재무상태표는 자산, 그리고 부채와 자본에 관한 자료다. 어떤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지(자산), 그것들을 무슨 돈으로 샀는지(부채, 자본)에 관한 정보다. 재무제표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척추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자산, 부채, 자본의 구분 안에는 다시 세부적인 항목들(매출채권, 이익잉여금, 단기금융부채 등등. '계정과목'이라고 한다)이 등장한다. 얘네들을 자세히 공부하는 것에 앞서 큰 그림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거부감이 덜하다.

 

친구가 약속장소에 처음 보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오 대박! 야 이거 뭐야, 니 거야? 그렇단다. 친구 거란다. 면허는? 니 면허 없잖아. 면허도 땄단다. 친구는 운전석 뚜껑을 열어 트렁크(?) 안에 들어있던 상품권 10만 원어치를 꺼내 보여준다. 뭐야? 오토바이 사장님이 사은품으로 줬단다. 오토바이와 면허와 상품권은 친구의 소유물, 즉 자산이다. 오토바이는 900만 원짜리고, 면허 따는 데에 100만 원 들었다고 치자. 친구는 1000만 원어치 자산가다. 그 밖에도 질문이 더 남아 있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무슨 돈으로 샀어? 300만 원은 신용카드에서 대출하고, 가지고 있던 돈 200만 원과 누나한테서 투자받은 돈 500만 원을 합쳤단다. 대출 300만 원은 부채다. 친구가 오토바이를 팔아 청산하면 가장 먼저 갚아야 하는 돈이다. 나머지 부분, 그러니까 투자받은 돈과 잉여금은 모두 자본으로 분류된다.

 

자산은 무엇을 소유했는가이고, 부채와 자본은 그것들(자산)을 무슨 돈으로 샀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부채와 자본을 더하면 언제나 자산규모와 같아야 한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재무상태표에 관한 '큰 그림'은 끝났다. 친구에게 던질 질문과 의혹들이 더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런 건 손익계산서와 관련있으니 잠시 제쳐두고, 보다 유연한 이해를 위해서 속사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자산에는 유동자산과 비유동자산(유형자산+무형자산)이 있다. 비유동자산은 다시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으로 나뉜다. 현금 역할을 하는 상품권이 바로 유동자산이다. 그밖에도 오토바이에서 떼어 내 중고나라에 올리면 금방 팔릴 액세서리들도 유동자산으로 분류된다. 그러면 오토바이와 면허증은 비유동자산이다. 오토바이는 유형자산, 면허는 무형자산이다.

 

부채에도 유동부채와 비유동부채가 있지만, 어차피 대출은 대출이니까,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다. 자본은 크게 자본금,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으로 나뉜다. 이익잉여금은, 자산을 굴려서 벌어들인 돈이라고만 이해해두자. 자본과 자본잉여금이 더해지면 발행주식의 시가총액이 된다. 이 자산이 영위하는 사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기있는가 정도가 아닐까?

 

기업은 사업에 필요한 자산을 갖추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 그러고도 돈은 충분한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부족분은 주식을 발행해 투자를 받기로 한다. 발행한 증권에 적혀있는 금액이 액면가이고, 여기에 발행수량을 곱하면 자본금이 된다. 발행된 주식의 일부는 창업자가 내고 싶은 만큼의 개인 돈을 내고 먼저 갖는다. 그리고 나머지를 사람들에게 판매해 받은 돈으로 자산의 부족분을 채워넣을 수 있다. 사업모델의 장래성과 인기를 인정받으면 증권은 액면가보다 높은 가격(공모가)에 팔린다. 이 때 마련되는 돈이 자본잉여금의 한 일부분이다. 사실 자본잉여금은 엄청 복잡한 개념이라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세뇌하듯 복습해보자. 자산은 유동이든 비유동이든 가진 것 전부(상품권, 오토바이, 면허)를 말한다. 그걸 뭘로 샀냐고? 대출 받은 돈(부채 300만 원)과 내 돈(자본)으로 샀지. 대출은 100% 은행 돈이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내 돈은 온전한 내 돈이 아니다. 자본은 받은 돈(500만 원 from 누나, 200만 원 from me)과 번 돈(아직까진 0 원)으로 이루어진다.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은 투자자에게 '받은 돈'이고, 이익잉여금은 비용/세금/이자 떼고 내가 진짜 '번 돈'이다. 이제 이 오토바이로 뭐라도 해서, 자산을 굴려서, 돈을 벌면 이익잉여금이 쌓이고 자본이 늘어난다. 그만큼 자산도 늘어나야 한다. 가만히 놔두면 유동자산인 현금이 늘어난 것이 되고, 이걸로 뭐라도 사면 그것 역시 자산 증가분으로 기록된다.

 

자산, 부채, 자본으로 이루어진 재무상태표

 

어떻게 보면 대출이나 투자받은 돈이나, '남의 돈'인 건 똑같다. 하지만 이 '남의 돈'들이 몽땅 원래 주인을 찾아간다는 건 사업이 망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일단은 고민하지 말고 내 돈처럼 생각하기로 하자. 작은 차이를 들여다볼 수는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갚는 순서도 다르고, 권리도 다르다. 채권자는 부채를 돌려받을 우선권을 갖는 대신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반대다. 사업의 공동소유자로서 경영에 참여하는 대신, 사업이 망하면 대출부터 갚은 뒤 남은 돈을 나눠가져야 한다.

 

꼼꼼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재무상태표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두면, 가공된 재무지표들(PER, PBR, ROE, ...)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된다. 그런 이해가 있어야 상장법인의 가치를 투자자 스스로의 힘으로 비교/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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