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전략

인플레와 디플레의 균형... 미국은 어디로 갈까?

나그네_즈브즈 2021. 7. 5. 13:27

올 상반기만 해도 전 세계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들썩였다.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사회(이하 FED)는 '일시적'이라며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6월 FOMC 이사회를 전후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양적완화 연착륙)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공교롭게도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1.4%에서 안정세를 되찾았다. 내 애플 주식과 네카오 가격도 다시 빨간불을 켰다.

 

내가 감히 짚어보기로는, 지금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압력 사이에 끼어 있는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 온 구조적 공급과잉, 저성장, 저물가의 바람이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셧다운 됐었다. 우리는 갈림길로 점점 더 다가서고 있다. 지금 대결하고 있는 힘들은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있으며 이 균형은 깨어져 어느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게 될까? 오늘은 여기에 관한 방구석 망상을 정리해볼까 한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압력은 네 곳에서 동시에 맞부딪치고 있다. 흔히 인정되는 디플레이션 압력을 기준으로 보면 크게 두 갈래다. 국가간 교역, 아마존 효과, 공급과잉 등의 공급 이슈가 있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고용 양극화와 고령화 등의 수요 문제가 있다.

 

두 나라가 물자를 교환하는 무역은 물건 가격을 낮추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2000년대 초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한 중국 덕분에 세계경제는 지난 10여 년 간 구조적 과잉공급에 시달리기도 했다. 물가가 오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세 흐름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전쟁이 만들어낸 신 냉전체제로 인해 상쇄될 것 같다. 전 세계에 퍼진 글로벌 공급망의 고리가 군데군데 끊어졌다. 당분간은 미국은 미국 따로, 중국은 중국 대로 각자 원자재를 구하고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고 스스로 소비해야 한다. 지구 전체로 보면 공장이 넘쳐나지만, 거대 소비국가 내에서만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현실이 됐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공급단절은 아마존 효과로 인해 그 영향이 반감될 수 있다. 아마존 효과는 소비자들이 '최저가 검색'을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인터넷 유통 플랫폼 때문에 가격 상승이 차단되는 효과를 말한다. 정부단위에서의 관계 또는 산업 수준에서의 단절과는 별개로, 온라인의 소비자들은 아마존이나 알리바바를 가리지 않고 최저가 매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클릭과 결제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4차 산업혁명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도 디플레이션 압력이다.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기업으로선 가격 인상이 위험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바뀌어도 에너지는 필요한 법. 새로운 세상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경제에서는 여전히 막대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어서, 이것 역시 서로 효과를 상쇄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끝으로, 사회가 고령화되면 수요가 쪼그라들어 디플레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인구대역전'의 저자들은 오히려 유효 노동력이 줄어들면 수급에 따라 임금이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내가 정리하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경제는, 인플레와 디플레의 균형 사이에 있다. 이 상태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약 두 시나리오 중 한 쪽을 반드시 고르라고 묻는다면 나는 '인플레이션' 쪽의 손을 들어줄 것 같다. 미국의 상황에서 보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이 떠안은 부채규모 때문이다. 부채는 화폐 표시 자산이기 때문에, 화폐 가치가 오르면 부담이 가중된다. 대출 9억을 끼고 10억짜리 아파트를 샀다고 해보자. 디플레이션에 와서 집값이 1억 원이 되면 빚 부담에 밤잠 이루기가 어려울 것이다. 반면 집값이 100억 원으로 뛰면 대출 9억은 귀여워 보이는 수준이 된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 이후 GDP 대비 최고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더러 '인플레와 디플레 중 하나만' 고르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미국은 울면서 '인플레이션'을 고를 가능성이 더 높다.

 

둘째로, 미국이 GDP 성장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가장 연기하고 싶은 미래는 중국과의 GDP 역전일 것이다. 그러려면 적어도 중국만큼의 GDP 성장이 따라줘야 한다. 기업의 투자가 있어야 하고 고용이 늘고 소비와 수요를 유도해서 다시 투자를 이끌어내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책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이 연준 의장이었던 시절 기업인들과의 소통에서 얻은 해법은 고압 경제였다. 어느 정도의 물가상승을 용인함으로써 초과 수요를 만성적으로 유도하는 방식이다. 지금 미국이 실험하고 있는 평균물가목표제가 그런 컬러의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보고 싶은 건 물가상승이 유지되는 모습이고, 연준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얻어낼 만한 실력을 갖춘 엘리트 집단이다. 

 

이 두 가지 이유로, 나는 미국이 디플레이션과 싸워줄 것으로 예상을 하는 편이다. 마침내 그들이 인플레이션이라는 종착지에 닿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미국 아닌가. 기어이 원하는 걸 얻어낼 사람들이다. 

 

오건영 신한은행 부부장이 쓴 '부의 시나리오'에서, 경제환경은 성장과 물가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된다. 고물가 환경으로 물가라는 축이 이동한다면 남는 시나리오는 고서앙과 저성장의 두 갈래 뿐이다. 어느 쪽이 됐든, 높은 물가가 유지되면 채권은 재미없고 원자재가 수혜를 볼 것이다. 원자재에 손을 댈 루트는 선물과 ETF 정도인데, 선물에 투자할 간댕이는 없기에... 남은 달러로 원자재 ETF를 사볼까 하는 고민이 드는 요즘이다. 그나저나, 원자재 요즘 피크일 텐데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