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 지나면 석탄/석유를 사용하는 신규 수요가 사라지게 된다.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원은 핵발전소와 재생에너지 그리고 수소에너지 정도가 꼽힌다. 개인적으로 해외에선 태양광과 풍력의 재생에너지가 공급원이 되고, 국내에서는 수소에너지가 메인 캐리어로 선택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주장(?)의 근거를 보이려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해 소개해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만드는 전기의 유일한 단점은 간헐성이다. 수요의 타이밍에 맞춰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위험이 너무나 크다. 지금까지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발전단가가 턱없이 높게 책정됐다. 생산된 전력의 대부분을 버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이 단점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커버할 수 있게 된다. 하나는 생산된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든 전기를 가지고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다.
남아도는 전기를 배터리에 담아두면 언젠가 부족할 때 이를 가져다 사용할 수 있다. 일종의 저수지와도 같은 개념이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담아둘 때 쓰이는 배터리를 ESS(Electric Storage System)라고 구분해 부른다. 요즘은 전기차 생산이 탄력을 얻으면서 2차 전지 기술이 큰 도약을 이뤄냈다. 생산단가를 낮추고 용량을 키우면 ESS도 상용화할 수 있다.
이 방식이 가지는 문제점이 있다. ESS 자체는 이동이 불가능해서(이동하는 소형ESS가 전기차 배터리다), 여기에 담긴 전기를 사용하려면 송/배전이라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는 분산형 전력이기 때문에 ESS도 곳곳에 설치될 것이고, 이러면 기존의 집중형 송/배전 방식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우리 집에 전기가 남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다른 곳에선 만든 만큼보다 많은 전기를 사용할 때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즉, 환경과 시간에 따라 전력 수급의 불균형 상황이 계속해서 달라진다. 그런데 기존의 송/배전망은 전기가 흐르는 방향이 항상 일정했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전력 수급체계를 커버할 수가 없다. 모든 참여자의 전력 수요와 공급을 항상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는 똑똑한 전력망, 스마트 그리드 도입이 필요한 이유다.
수소를 이용하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보완한다. 잉여 전력을 저장한다는 부분은 같다. 하지만 여기서는 전기에너지를 수소분자라는 '물질' 속에 저장하기 때문에, 운반과 이동이 쉽다. 아래 그림은 전기에너지를 수소분자에 저장한다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직접 만들어 본 개념도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전기가 만들어질 때, 이 출력으로 물을 분해할 수 있다. 분해의 결과로 산소 기체와 수소 기체가 만들어진다. 에너지는 사라진 게 아니다. 만들어진 수소를 산소와 결합시키면 짜잔! 물도 생기지만 전기가 공짜로 만들어진다. 전기는 사라지지 않고 수소와 산소에 저장되는 셈이다.
다른 쉬운 비유를 생각해 봤다. 우리가 돈을 주식으로 바꾸어도 돈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돈이 사라졌지만, 주식을 팔면 다시 돈이 되기 때문이다. 계좌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주식투자는 돈을 저장하는 방법 중 하나다. 전기를 수소와 산소로 바꾸는 것도 저장하는 행위다. 보관만 잘 한다면 산소와 수소를 다시 팔고 전기를 얻는 게 가능하니까. 그런데 산소는 공기에서 구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전기를 '수소에 저장'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니 전기가 저장된 수소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다루거나 운반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화석연료라는 탄화수소에서 수소를 떼어오는 꼼수도 가능하기는 하다. 이렇게 하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만든 수소는 'gray 수소'다. 재생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만든 수소는 'green 수소'로 분류한다. 이 방식이 업계의 선택을 얻지 못하는 지점은 경제성이다. 전기로 물을 분해하는 에너지 변환과정의 효율이 100%일 수 없고, 산소와 수소에서 전기를 되돌려받는 변환과정의 효율도 역시 100%일 수 없다. 에너지 손실을 두 번이나 겪는다. 또한 수소를 압축하거나 액화시키는 과정, 그걸 운반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높은 기술력도 green 수소의 경제성을 훼손하는 데 한몫한다.
에너지 손실 부분의 문제는 실드를 칠 수 있다. 우선,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하고 송/배전하는 방식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력 손실은 발생한다. 그리고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되는 전력 규모 자체가 말도 안되게 거대하기 때문에, 손실되는 전력이 전~혀 아깝지 않게 된다. 비용은 오롯이 수소를 다루는 과정에서만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아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한 발전에 불리하다. 단일 공기업이 전력 수급을 담당하기 때문에 분산형 전력망을 도입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장막 뒤에 숨어서 그 공기업을 떠받치는 학계와 관료가 모두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 전문가로만 채워진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커다란 장벽이다. 그들의 세계관은 '에너지는 전문가가 물질을 통해 저장하고 공급해야 한다'는 도그마로 채워져 있어서, 감히 일반 시민이 아무데서나 함부로 전기를 만들고 공급하는 짓을 용납하는 게 불가능하다.
경기순환에 민감하고 대형 장치산업에 기반한 경제구조도 분산형 전력망에 우호적일 수 없다. 전력 수급의 틀을 만지는 이들에게 명분을 쥐어주어야 한다. 수소를 매개로 돌아가는 '에너지와 경제의 구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의 정유 및 화학 플랜트 대기업들이 수소산업을 책임지면 된다. 햇빛-바람과 물에서 태어난 수소는 어차피 무한정 공급될 테니 기업에게도 남는 장사다. 에너지는 전력망이 아닌 물질을 통해 소스에서 수요처로 일관되게 흐르기 때문에 관리 측면의 어려움도 적다. 태양광이나 풍력에서 한국의 글로벌 포지션은 이미 한참 뒤쳐져 있지만, 수소 기술에서는 세계 일류급이라 국가 경쟁력 면에서도 이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태양광과 풍력이 인프라라면, 수소는 트래픽이다. 70년대 석유에너지로의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됐을 때, 시가총액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은 고속도로를 만든 회사가 아니라 정유 회사였다. 인터넷이 세계에 깔리면서 우리 삶을 쥐락펴락 한 기업들은 두루넷이나 통신회사이기보다는 애플, 아마존, 구글이다. 물론 인프라도 나름의 재주는 부리겠으나, 결국 그 덕에 재미보는 왕서방은 트래픽 기업이 되리라고 본다. 이것도 수소에 투자하는 기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성장주는 원래 먼 미래를 보는 투자라고는 하지만, green 수소가 구현하는 경제체제의 성립이 워낙 요원한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차트 위에서 그 미래는 결코 멀지만은 않다. 삼성전자 차트를 보면서 '내가 IMF 때 이걸 사놨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해진 미래를 알고도 투자하지 못한다면, IMF 때로 돌려보내줘도 우리는 삼성전자에 투자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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