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전략

달러의 타락과 투자의 미래 feat. EM과 가상화폐

나그네_즈브즈 2021. 4. 18. 20:02

미국이 달러를 계속해서 풀고 있다. 일단 기준금리가 '0'에 착 달라붙어 있다. 이건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돈 벌게 해줄게. 사람들 돈 쓰드록 대출상품 실컷 팔아" 그걸로도 모자라 재정정책 지출에 쓰라고 국채도 계속해서 사들인다. 이런 구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 뒤에는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연준도 이게 비정상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팬데믹으로 촉발된 이 상황을 '정상화'하려면 두 가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양적완화의 축소와 중단. 그리고 기준금리 인상.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 갈 길이 아득하다. 무턱대고 긴축을 진행하면 시장은 아사리판이 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빼도박도 못할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인플레이션이 걱정되는 상황이라야 한다. 계속해서 오르는 물가는 투자자들에게나 시민들에게나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살림살이가 꽤 반질반질해 져야 연준으로서도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염치가 생긴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그게 전제되지 않으면 연준은 완화적 입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달러는 점점 더 많이 유통될 것이고, 그러면 재미를 보는 쪽이 어디일까를 고민하는 중이다. 뒤죽박죽 떠다니는 머리 속의 것들을 활자로 가지런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지금 물론 미국 국채금리가 가파르게 올라온 상태라, 시장에는 '이러다 인플레이션 온다', '기준금리 인상이 앞당겨질 것이다' 등의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의 PPI 인플레이션은 기계적이고 반사적인 현상이다. 수입품의 가격은 변덕이 심해서, 정책금리를 움직일 근거로 충분하지 않다. 코로나19에 스프링처럼 억눌린 소비자들의 수요도 한번 튀어오르면 '다음'을 장담할 수 없는 일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과 유동성이 앞당겨 온 4차 산업혁명은 소비자 물가 상승을 점점 더 멀리 밀어낸다. 좀비 기업과 혁신 기업의 가격 파괴,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 심화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때문이다. 

 

유동성 덕분에 구조조정을 피한 좀비기업들은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을 유발한다. 반대쪽에서는 유동성 덕분에 성장의 여유 시간을 확보한 테슬라, 쿠팡 등의 혁신 기업들이 가격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가격 경쟁에 밀려 도산하면 일자리는 그만큼 사라진다. 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 협공'도 매섭다. 가장 소득이 높은 분야(소프트웨어)의 일자리가 아주 약간 느는 동안 가장 소득이 낮은 직업군은 자동화에 더 빠르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AI가 보편화되면 '머리 좀 쓰는' 중하위 급여의 직군이 다음 타깃이다. 재취업을 위해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하는 노무직 실업자가 주요 10개국에서 1억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대다수는 그걸 포기할지도 모른다. 신규 취업자 사이에서도 학력에 따른 취업기회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기준 금리에 가이딩 되는 예금 금리가 바닥에 들러붙은 모습은 그나마 다행이겠다 싶었다. 예금 상품의 기대 이자수익이 낮으니, 저축의 매력도가 떨어질 것이고, 불황 국면에 저축률이 치솟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시야가 너무 좁았다. 내 스스로 기록했다시피 투자는 돈을 저장하는 일이고, 예금은 여러 투자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은행 예금도 저축이고 자산 투자도 저축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유동성 공급 이후 양극화의 골은 깊어졌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건을 앞뒤로 보면 평균 저축률의 수준이 달라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적어도 미국은, 지난 10년 간 미뤄오던 빈부격차의 해소를 마무리짓지 못한 채로 다시 떠밀리듯 유압 프레스에 펌프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불어넣은 달러는 다시금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자산과 실물 사이를, 부자와 보통 사람 사이를 벌려놓을 것이다. 미래를 약속받지 못하는 이들은 저축 규모를 이전으로 되돌리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리세션 전후 미 연준의 자산매입 규모(좌)와 저축률(우) 변화. 5%를 밑돌던 저축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평균 7%의 뉴 노멀에 안착했다. 유동성이 양극화를 심화시키면, 가난을 대물림하게 된 사람들은 저축을 늘리는가?

 

사정은 유로화나 엔화도 마찬가지다. 달릐 타락의 반사이익을 얻을 후보가 둘 정도 보인다. 위안화는 중국의 비호감도 때문에 그다지 유력해 보이지 않는다. 위안화와 비슷하게 움직이면서도 모범생 이미지를 갖고 있는 한국은 달러 침체의 수혜를 입을 이머징 마켓의 아이콘으로 적당하지 않나 싶다. 여기에 더해, 위기를 감지한 사람들이 돈을 옮겨두는 투자처가 안전자산이라고 본다면, 최근 리라화 위기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터키에서 가상화폐 가격이 튀어올랐단 소식은 흘려들을 일이 아닌 것 같다.

 

가상화폐가 화폐로서 지위를 인정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변동성이 크지 않을 것, 정부의 세금 납부의 수단으로 인정될 것 등이다. 가상화폐는 변동성이 어마무시하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그건 우리가 현실 화폐만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가상화폐가 기준인 어떤 세상에서는, 우리가 통용하는 현실 화폐의 변동성을 보며 혀를 내두를지 모른다. 가상화폐는 나름 신기술이라 관련 법제가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기는 하다. 비트코인으로 아직 세금을 납부할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얼마 전부터 범죄자의 추징 대상이 되는 재산에 가상화폐를 포함시켰다. 내가 마음먹고 탈세를 위해 전 재산을 비트코인으로 바꿔놓으면, 국세청이 세금 추징을 위해 내 비트코인을 가져갈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요약>

1. 달러 가치하락의 반사이익을 누리자.

2.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가지거나

3. 신흥국 모범생 한국도 괜찮아 보인다

4. 가상화폐는 '새로운 표준'으로 떠오를 수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