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작업] 사진적 소재 후보 1 : 저녁밥상

사진은 이미지로 된 언어다. 시각을 통해 뜻이 전달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차라리 보여주는 편이 효과적인 것들일수록 사진적 소재이기 쉽다. 주홍빛 보랏빛으로 노을진 저녁하늘이나 가슴 먹먹해지는 은하수, 고혹적인 모델의 아름다움! 이런 것들은 제아무리 그럴듯하게 설명하더라도 차라리 보여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고 확실한 표현의 대상이다.

 

기왕이면 누가 보더라도 주목할 만한 소재이면 좋다. 그러나 반드시 반드시! 거기에 가장 먼저 끌린 사람은 나여야 한다.  그래서 호미곶의 일출, 황령산의 은하수, 경주나 진해의 벚꽃은 모두 탈락이다. 그 소재에서 내가 먼저 시각적 매력을 발견하고, 나만의 감정과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사진으로 표현된 언어를 읽고 사람들이 '정말 그렇구나!'하며 함께 주목하고 매력을 느끼는 건 가장 나중이다. 

 

말하기보단 보여주기에 훨씬 적합하고, 내가 관심이 있고, 그러면서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 15~30 작품으로 이루어진 포트폴리오를 하나 만드려면 사진을 수 만 장은 족히 찍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나한테 있어서 영원한 주제는 우리 아내이지만, 그녀는 늘 찍히는 걸 쑥스러워 해서. 그래서 후보 첫 번째로 생각해 본 아이템은 '저녁밥상'이다. 

 

2021/01/07/ 점심밥상 - 35mm F2.8 1/80s ISO640

2021/01/07/ 저녁밥상 - 35mm F4 1/50s ISO800

 

된장찌개와 스팸구이와 참나물무침으로 된 한 끼 식사는 물론 말로도 표현이 된다. 그래도 된장찌개엔 뭘 넣었고 스팸은 몇 장을 구웠는데 윤기가 어떠며 참나물무침은 얼마나 했는지 등등은 보여주는 것으로 훨씬 잘 표현된다. 게다가 매일 내가 꿈꾸는, 가장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과 공간이면서, 쉽게 자주 접근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이 소재를 나는 광고나 기록적 음식사진처럼 찍으려는 게 아니다. 식탁의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오늘도 아내를 굶기지 않았다는 안도감이다. 

 

이런 작업을 했던 사진작가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을까? 물론 수두룩 빽빽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게 아니며, 내 저녁밥상의 분위기와 풍경에 스스로 꽂힌 것이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내 테마'인 것이다.

 

오늘은 하루 쉬었던 날이었다. 포스팅도 할 겸, 연습도 할 겸해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찍어봤다. 올해 시작할 주제작업을 모두 흑백으로 해보리라 결심을 했는데, 음식이 등장하는 사진에 흑백이 어울리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또 조리개 2.8은 쓸데없이 일부 피사체들을 관심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표현할 단계가 아니다. 일단 기백 장은 찍어보면서, 내 스스로 방향을 잡아야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슬럼프도 오겠지. 그걸 몇 번 극복하면 만 장, 이만 장도 찍고 포트폴리오도 나온다. 뚫어내지 못하면 실패하는 거고. 지금은 멀리가지 말자. 오늘 포스팅은 어디까지나 '주제 후보' 중 하나에 대해 끄적끄적 적어둘 목적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