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철학 멘탈관리

주식투자한 기업을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방법 (feat. PER)

나그네_즈브즈 2021. 12. 24. 14:55

주식투자는 기업의 소유권을 쪼개 그 일부를 산다는 뜻이다. 이 말처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어온 또다른 메시지는 PER이 투자원금을 순이익으로 모두 회수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라는 뜻이라는 거였다. 

 

나는 후자에 대해 줄곧 의문을 제기해 왔다. 투자금은 투자자가 냈고 순이익은 회사가 거뒀는데, 이게 어째서 '회수'냐는 항변이었다. 돈 낸 사람이 돈을 받아야 회수, '돌려 받는' 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회사가 투자한 돈을 회사가 돌려받거나 투자자가 낸 돈을 투자자가 돌려받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최근에야 PER에 대한 이런 설명에 완전히 수긍이 갔다.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회사의 일부를 소유하는 것과 같다는 명제에 비로소 가슴으로 동의가 된 덕분이다.

 

무슨 유튜브를 보다가 들은 것 같다. 주주가 회사를 소유하기는 했지만, 경영자가 주주를 대신해서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니까 굳이 출처를 찾을 필요는 없겠지만.

 

이 얘기가 막혀있던 내 생각을 뻥 뚫어줬다. 경영자가 자본을 배치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회사가 거둔 순이익도 경영자의 역량과 비전에 따라 배당과 재투자로 옮겨담아질 것이었다. 사업알못인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순이익을 모조리 배당으로 탕진하는 무모한 짓은 안했을 것 같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 누구나 본인 몫의 은행계좌와 투자용 증권계좌를 따로 갖고 있을 것이다. '기업'의 자리에 증권계좌를 대입해보자. 회사가 사업을(주식 투자사업일 테지만) 잘 해서 (투자)수익이 발생했다고 하자.

 

경영자는 앞으로도 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며 복리 효과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수익금을 개인 은행계좌로 옮겨담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필요한 만큼의 돈을 출금했다면 이런 자본 배치는 '배당'에 해당한다고 비유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순이익을 몽땅 자기 주머니로 '배당'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 대신 내년에 더 많은 이익을 얻거나 부채를 갚는 등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에 순이익을 배치하게 될 것이다.

 

이를 두고 주주가 예전의 나처럼 '돈은 내가 내고 이익은 회사가 챙기는 꼴'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건 경영을 모르고 하는 얘기가 된다. 회사가 벌어들인 순이익은 당연히 주주의 몫이다. 다만 복리 효과를 위해 증권계좌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재투자된 주식 투자 수익금처럼, 순이익도 일부만 배당되고 대부분은 회사의 더 큰 성장을 위해 배치되는 것 뿐이다.

 

이런 깨달음을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실현할 수가 있다. 엑셀을 켜고 보유하고 있는 회사 이름을 나열하자.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수량도 적어 넣는다. 회사를 인수하던 때의 주당 가격도 기록하자.

 

자신이 보유했던 시점에 각 기업들이 벌어들인 순이익을 각각 더해주자. 현대차를 2021년 5월에 사서 보유 중이라면, 2분기와 3분기 순이익을 찾아 더해주면 된다. 그리고 발행주식 수로 나눈 뒤에 보유중인 수량을 곱하면 내 몫의 순이익이 계산된다. 이렇게 해서 내 몫으로 벌어들인 모든 순이익을 더해준다. 기왕이면 배당금도 적어본다면 기분이 더 좋아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면 경영을 1도 모르는 내가 감히 '사업'이라는 걸 하는 데에 이만큼 돈을 들이고, 생각보다 훌륭한 순이익을 벌어들였음을 깨달을 수 있다. 게다가 배당도 받았고 말이다.

 

증권계좌 안에서 주가를 보며 내 수익률을 자연스럽게 계산하듯이, 이 엑셀 파일을 열면 내 경영의 수익률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수익률의 역수가 바로 PER이다. 경영 수익률이 10%라면 평균 PER이 10배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차트를 보고싶을 때마다 이 엑셀파일을 열어보자. 휴대폰에서 증권계좌 앱을 삭제하고, 대신 엑셀파일의 바로가기를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저장해두자.

 

해보면 느끼겠지만, 3개월 동안 이 파일을 죽어라 쳐다봐도 변하는 게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자. 회사인데 뭐라도 하고 있겠지. 우리가 할 일은 다음 실적발표가 마무리되면, 이 엑셀파일을 업데이트 해주는 것 뿐이다.


기업을 발견한다 / 기업을 분석한다 / 기업을 인수한다 / 기업을 보유한다 / 기업을 매각한다. 많은 투자자들은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최종 수익률이 기록되는 순간을 투자행위의 종결로 받아들인다. 성과에 대한 만족 혹은 불만족 역시 이 때에 결정된다.

 

그러나 가치투자자는 기업을 인수해서 보유하는 것까지가 투자의 종결이다. 우리의 목적은 좋은 기업을 인수해서 보유함으로써 기쁨을 얻는 것이다. 갖고 싶었던 휴대폰이나 노트북이나 자동차나 핸드백을 드디어 갖게 되는 순간,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는 순간에 우리가 기쁜 것처럼 말이다.

 

매각은,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식투자를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계속 이어갈 계획인 것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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