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투자철학 멘탈관리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와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나그네_즈브즈 2021. 8. 28. 21:55

이 두 책은 벤자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와 함께 주식 투자자의 필독서라 할 만한 고전 중의 고전이다. 유튜브에도 리뷰와 소개영상이 많이 있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이제서야 이 책들을 읽었다(현명한 투자자는 빼고). 제목이 짧은 편은 아니니까 전떠월과 위기투로 줄여서 부르는 것이 좋겠다.

 

위기투와 전떠월은 성장주 투자의 아버지 필립 피셔와 월가의 레전설 피터 린치가 각각 쓴 책이다. 위기투가 1950년대에, 전떠월이 1980년대에 출간됐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둘 모두 성장하는 소수의 기업에 집중투자하고 오래 보유하라는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필립 피셔는 '성장주', 피터 린치는 '10루타 기업'이라고 부르는 차이는 있지만, 눈치껏 알아먹도록 하자.

 

두 고전의 핵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면)하면서, 두 책의 차이점에 대해 돌이켜보려고 한다. 두괄식으로 얘기하자면 필립 피셔는 과학 분야의 우수한 연구진과 기술적 혁신성을 갖춘 대형기업을 추려내고 그 경영진의 퀄리티에 초점을 맞춰 투자를 조언하는데, 피터 린치는 유명하지 않은 소비재나 서비스 분야에서 성공할 기업을 찾는 요령을 유머러스하면서도 현실적인 감각으로 귀띔해준다. 우선, 순서 상 먼저 읽었던 책, 피터 린치의 '전떠월'부터 보도록 하자.

 

전떠월은 양장으로 둘러싸인 꽤 크고 두꺼운 책이라서 내심 놀랐다. 하지만 피터 린치의 문장이 몹시 친절하면서도 유쾌했기 때문에 금방 읽혀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됐다. 추천사는 건너뛰었지만 프롤로그와 서문은 읽을 만했다. 아니 서문부터는 꼭 읽어야 할 내용이었다. 

 

피터 린치의 사고 흐름은 대략 이렇다. ▲증권가의 전문투자자들을 닮지 않는 것만으로도 개인투자자는 유리한 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 ▲가장 잘 아는 분야에서 촌스럽고 단순하고 심지어는 하자가 있을 것만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을 찾아라. ▲직원, 배달원이나 잡역부, 고객, 경쟁업체 관계자, 전직 임직원, 경영진을 인터뷰하라. ▲보고서의 매출구성, PER, 성장률, 부채특성, 현금보유량, 무형자산 등등은 특별히 더 중요하다. ▲수집한 사실을 믿고, 확실하다면 지나치게 분산하지 않으면서 오래 보유하라.

 

이 책의 메시지는 굉장히 긍정적이면서 활기가 느껴진다. '야너두 할 수 있어!' 이런 느낌이랄까. 서울대 간 사촌형이 자기 틀린 문제들까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개해가며 '손 쉬운 성공'을 독려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아마추어 투자자의 유리함을 최대한 살리고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증권가의 손이 타지 않을 법한 기업을 찾도록 조언한다. 그게 설령 장례식 대행업체라거나 샌드위치 체인점이라도 '성장'은 거기에 있다고 얘기하면서 말이다. 그가 은퇴 직전 마젤란 펀드에서 운영하던 종목이 대략 1,400여 개였는데도 집중투자의 매력을 역설했다는 점은 뜻밖이었다. 

 

반면에 필립 피셔는 '위대한 기업'으로 보기 위해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 15가지 포인트'를 소개하면서, '너무 어려우면 나한테 맡겨'라고 하는 방식이, 꼭 요즈음 유튜브에 출연하는 유명 자산운용사의 대표들과도 닮았다. 그래서 약간은 재수가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15가지 포인트'들은 대개 경영진에게로 향하는 요구사항들이었는데, 내 식으로 정리해 표현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빨갛게 표시한 건 내가 개인적으로 경영진과 관련되었다고 생각하는 항목들이다)

1. 현재 신제품의 매출잠재력
2. 향후 신제품의 매출잠재력
3. 이걸 해내기 위한 연구개발 의지와 실력
4. (경영진이 구성한) 평균 이상의 영업조직
5. 충분한 영업이익률
6. 영업이익률을 개선하기 위한 (경영진의) 노력
7. 노사관계 - 이직률, 임금수준, 취업경쟁률
8. 협력적인 임원들
9. 의사결정 - 두터운 경영진, 권한 배분과 위임, 아이디어 수용
10. (경영진의) 정확한 원가분석, 그리고 관리와 대응 - 개인투자자 영역 밖
11. 핵심사업부, 기술력 개선하기 위한 (경영진의) 노력
12. (경영진의) 장기적 관점의 이익 추구
13. 자금 조달 계획 (증자 등)
14. 경영진의 일관된 진실성
15. 주주에 대한 (경영진의) 도덕적 책임감

 

이 밖에도 과거의 가격기록 같은 중요하지 않은 통계에 얽매이지 말라는 조언은 감명깊었다. 필립 피셔의 포트폴리오 조언은 나심 탈레브의 바벨 전략과 비슷하다. 신생 성장기업일수록 가능성 못지않게 리스크도 크기 때문에, 그는 대형 우량주 - 중견기업 - 신생 성장주로 갈수록 포트폴리오 내 비중을 20% - 8~10% - 5% 로 조절하라고 권유한다.

 

필립 피셔는 성장주라는 말과 함께 사실 수집이라는 개념도 최초로 소개한 것 같다. 역시 다양한 인터뷰들을 토대로 정보를 수집한 뒤에 최종적으로 경영진을 직접 만나 '위대한 기업'인지를 평가하라고 소개한다. 어쨌든 경영진과 기술력이 그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인 것 같으니까. 모토로라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가 그런 기업이라고 판단했는지, 필립 피셔는 투자한 주식을 50년 가까이 보유했던 장기 투자자로도 유명하다.

 

*    *    *    *    *

 

공통적으로 배울 점을 요약 해보자. ▲매출이 앞으로 성장할 기업을 발견한다면, ▲남들의 추정을 믿지 말고 자기가 직접 사실을 수집해서, ▲느긋하게 매수해 꾸준히 지켜보되 왠만하면 팔지 말아라. 여기서 내가 정말 자신없었던 건 사실수집 부분이다. 중국의 루신 커피에 대한 공매도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미국 액티비스트 헤지펀드인 '머디 워터스'의 직원들이 중국 내 매장을 한 달 간 직접 모니터링 해 매출실적이 부풀려 졌음을 고발한 사례도 사실 수집의 한 예다. 이걸 해내려면 기존 자료에 대한 의심, 진실에 대한 호기심, 교차검증을 생각해내는 창의력, 그리고 끈기와 승부욕 등등이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낯선 투자자들을 경계할 낯선 관계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이댈 수 있는 성품도 타고나야 한다. 

 

두서없이 스쳐가는 또 한 가지 생각은, 시대가 많이 바뀌긴 했다는 점이다. 필립 피셔와 피터 린치가 책을 쓰던 때에 비해 지금은 정보의 흐름과 유통이 정말 다를 것이다. 인터넷 때문에 불리해진 측면도 있을 테지만, 반대로 인터넷 세상이라 더 쉽고 유리해진 점들도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소비나 트렌드와는

 

워낙 담을 쌓고 살아왔던 캐릭터이지만, 나도 투자 아이디어를 생활 속에서 찾기 위한 노력은 시작했다. 직장 동료들의 가십에 귀를 기울이고, 네이버 모바일의 메인화면에 쇼핑/테크/비즈니스 탭을 추가했고, 인스타그램을 다시 설치해서 #내돈내산/#인싸템/#플렉스/#이건꼭사야해 등등의 태그를 팔로우하면서, 매일 사무실 바로 옆 백화점을 두세바퀴 돌아본다. 어디까지나 훈련이지만, 돈 벌려면 이 정도는 해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뭐, 이러다 정 안되겠을 땐 필립 피셔 같은 유능한 자산운용사를 찾아봐야 하겠지만.

 

슬픈 독후감은, 이것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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